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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수화언어)도 ‘공용어’가 되었다

by 낮달2018 2020.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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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手話)’가 청각장애인의 언어로 인정되어 ‘수화언어’가 되었다

▲ 한국수어의 지하철 광고(2016년) ⓒ 국립국어원

국립국어원에서 펴내는 웹진 <쉼표, 마침표>에서 지난해 마지막 날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수화언어법’이 통과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수화’는 알겠는데 ‘수화언어’는 낯설다. 기사를 읽고 나서야 ‘수화(手話)’를 청각장애인의 언어로 인정해 ‘수화언어’라고 쓴다는 걸 알았다. ‘수어’는 그 줄임말이다.

 

한국수화언어법 국회 통과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어를 한국어와 동등한 공용어로 인정한 법률이다. 이 법은 한국수어 사용 환경을 개선하여 한국수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언어권을 신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

▲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반가사유상의 수어 설명 동영상 갈무리 ⓒ 국립국어원

개인적으로 수화를 처음 겪은 게 중학교 때 본 영화 <만종(晩種)>에서였다. 최은희와 김진규가 청각장애인으로 등장하는 영환데 자막을 통해서 수화가 인간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우리나라에선 유별나다. 그걸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말은 넘치지만, 장애를 중립적으로 이르는 말은 드문 이유다. 고작해야 ‘귀머거리’ 대신 쓴 말이 ‘농아(聾兒)’였는데, 이 말은 아이를 이르는 말에 한정된다. 정작 어른이 된 청각장애인을 부르는 말은 없었다는 얘기다.

 

최근에야 ‘농인(聾人)’이라고 쓰기 시작한 듯한데 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혼혈아’라 불리다가 요즘에야 ‘혼혈인’이라 불리는 경우와 같다. 농인은 ‘수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들, 청각장애인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남의 염병도 내 고뿔만 못하다. 나는 농인이 말을 못 하는 이유가 청각 장애 때문이라는 걸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알았다. 내가 겪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무심해서다. 큰누나댁 아랫방에 젊은 농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우연히 거기 들렀는데 어떤 조사를 하러 나온 이에게 누나는 그 부부를 이렇게 지칭했다.

 

“아, 그 사람들은 귀가 들리지 않아요.”

 

순간 나는 머릿속이 환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저렇게 말하는 방식도 있구나. 말 못 하는 사람이라고도, ‘벙어리’나 ‘귀머거리’라는 말도 쓰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들의 장애를 단박에 알아들었고, 말 못 하는 이들을 ‘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의 ‘농인’이라고 쓰는 까닭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화언어의 특징

수화언어는 음성언어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제한된 시간 내에 한정된 표현을 통해 원하는 의미만을 전달해야 하므로, 허사(虛辭;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조사, 어미 등)를 최대한 생략하고 실사(實辭) 위주로 발달했다는 것 등이다. 또 수어는 의미만을 전달하므로 통사론에도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다고 한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대중들의 이해가 나아지면서 학교 동아리 활동 등의 방식으로 수화가 보급되긴 했지만, 여전히 비장애인에게 수화는 낯선 언어다. 그러나 청각, 언어장애인에게 수화는 제1 언어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청각장애인은 2014년 말 기준으로 25만여 명, 언어 장애인은 1만8천여 명으로 한국어를 제1 언어로 습득하기 어려운 인구는 총 27만여 명에 이른다. 한국수어를 제1 언어로 익히고 사용하는 이들은 음성언어를 통한 의사소통 및 정보 접근이 어렵다.

 

한국어를 귀로 듣고 익힌 청인(聽人, ‘농인’과 대비하여 음성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은 글 또한 쉽게 익힐 수 있다. 그러나 어휘, 문법, 표현 방식이 한국어와 전혀 다른 한국수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농인은 글을 배우고 익히는 데에도 외국어를 익히는 것 이상의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에서 청인 학생 16명과 농인 학생 33명을 대상으로 문해력 설문 조사를 시행한 결과, 청인 학생은 20점 만점에 평균 16.7점을 얻었지만, 농인 학생은 평균 10.9점을 얻었다. 같은 조사에서 성인을 포함한 농인 167명의 문해력 평균 점수는 20점 만점에 9.6점으로 나타나 농인들이 사회 전반에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화언어도 공용어다”

 

이번에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에서는 한국수어가 한국어와 구별되는 고유한 자격의 공용어임을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한국어와 대등한 언어로서의 한국수어의 연구와 조사, 보급 등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농인의 의사소통 환경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한국수어 실태 조사를 통해 농인의 실제 언어 사용 양상을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언어 현실에 기초한 정책 수립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국수어 교재 개발, 교원 양성, 한국수어교육원 지정 등도 규정되어 있어 한국수어의 보급이 촉진되고 수어 통역 지원을 통해 농인들의 사회 활동이 한층 편해질 것으로 보인다.

 

장애가 없는 청인과는 다른 언어 환경에 놓여 있는 농인이 언어생활에서 불편을 겪지 않도록, 국내외에서도 농인 대상 문해 교육을 지원하고 수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고 있다. 체코, 독일, 벨기에, 뉴질랜드, 핀란드, 헝가리 등 여러 국가에서 법령을 통해 수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유엔(UN)에서도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서 수어의 사용을 인정하고 증진하도록 하고 있다.

▲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한국수어사전' 홍보 PDF

국립국어원에서는 한국수어를 기록하고 수집하여 연구하는 한편, 한국수어 사용 환경을 개선하고 수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 한글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된 대표적 문화유산에 대한 해설을 수어 설명 영상으로 제작하여 다양한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를 수어로도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제작된 수어 설명 영상은 올해 안으로 공개하여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다양한 환경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니 농인들은 조만간 대표적 문화유산을 수어 영상으로 배우고 즐길 수 있겠다. 장애인 복지의 수준이란 장애인들이 그 장애 때문에 겪는 불편에 반비례하거나 사회적 소수에 대한 배려의 수준에 비례하는 게 아닐까 싶다.

 

 

2016. 1.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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