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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율’과 ‘치명률’

by 낮달2018 2020.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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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적 개념, 언어도 진화한다?

▲ 매체에 따라 치사율과 치명률이 쓰거나 둘을 혼용하는 경우도 있다. 〈한겨레〉는 '치명률'을 쓰고 있다. 한겨레 PDF

‘코로나19’의 습격으로 바야흐로 사람들은 생활을 빼앗겨 버린 듯하다. 나들이는커녕 이웃을 만나 안부를 나누는 단순한 일상도 삼가면서 숨죽인 시간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날마다 늘어나는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를 안타깝게 세면서 언제쯤 이 보이지 않는 적이 물러갈 것인가를 모두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대구·경북지역에서 확진자 5명이 숨지면서 국내 사망자는 91명으로 늘었다. 천 명을 넘긴 이탈리아에 비겨 다행이라고 자위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보도는 코로나19의 국내 치명률이 1%에 근접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간 듣지 못한 낯선 개념이었지만, 나는 ‘치명률(致命率)’이 ‘치사율(致死率)’을 달리 표현하는 낱말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아, 문맹률(文盲率) 대신에 문해율(文解率)을 쓰듯 치사율 대신에 치명률을 쓰는구나. 그건 일종의 완곡어법과 같은 맥락일 테지.

완곡(婉曲)어법은 “듣는 사람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말을 쓰는 표현법. ‘변소’를 ‘화장실’이라고 하거나 ‘죽다1’를 ‘돌아가다’로 표현하는 것 따위를 이른다.”(<표준국어대사전>) 직접 말하기 불편한 상황이나 사물을 에둘러 말하듯 ‘치사(致死)’라는 직접적 표현 대신 ‘치명(致命)’이라고 썼다고 말이다.

‘문맹률’은 ‘문해율’로 진화했다

한때는 단위 국가의 문화 수준이나 정도를 이해하는 지표로 “한 나라 안에서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문맹률이 쓰였다. 문맹은 말 그대로 ‘까막눈’인데, 이 직접 표현은 어느 날부터 “글을 읽고 이해하는 비율”인 문해율로 대체되었다.

오늘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해 보았는데, 어디에서도 내 짐작을 기워주는 내용은 보이지 않아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문맹률 대신에 문해율이 쓰이기는 하지만, 문해율은 단순히 문맹률의 반대 개념에 그치지 않고 훨씬 구체적인 개념이다.

‘문해’는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것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2015년 OECD가 실시한 국제 성인 문해력 조사 결과, 문해력이 최저수준인 사람의 비율이 우리나라는 38%로, 회원국 평균인 22%를 상회했다고 한다. 이럴 때 문해율은 기존의 문맹률보다 훨씬 복잡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요즘은 문맹률을 대신하는 통계는 비(非)문해율이다.

‘완곡어법’의 관습도 담겼다

▲ 일간지 가운데 '치사율'을 쓰고 있는 매체의 기사 제목들. 맨 위에서부터 조선, 중앙, 동아, 머니투데이 인터넷 기사 제목 갈무리.

코로나19 관련 일간지 보도를 검색해 보니, 치사율과 치명률이 모두 쓰이고 있었다. 둘 중 하나를 쓰거나 둘 다 쓰는 매체가 있었는데, 의학적으로 보면 둘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은 ‘치사율’을 “어떤 병에 걸린 환자에 대한 그 병으로 죽는 환자의 비율. 백분율로 나타낸다. ≒ 치명률.”로 풀이하고 있다.

어디에서도 ‘치명률’이 ‘치사율’을 대체하는 완곡어법이라고 풀이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해도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둘 다 뜻이 ‘죽음에 이른다’는 뜻이긴 하지만, ‘죽을 사’ 자를 쓴 것보다는 ‘목숨 명’ 자를 쓴 게 훨씬 부드럽지 않은가 말이다.

 

2020. 3. 18. 낮달


* 시간의 진전에 따른 언어의 변화는 결국, 그 대상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꽤 오랫동안 ‘수화(手話)’로 불리어 오다 마침내 ‘수어(手語)’가 된 것도 그래서다. 수어는 ‘수화언어(手話言語)의 줄임말이다. [관련 글 : 수어(수화언어)도 ‘공용어’가 되었다]


엄연히 농인들의 언어로서 기능해 온 수화는 2015년에 한국수화언어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한국어와 동등한 공용어로 인정받았다. 코로나19 관련 정부나 지자체의 브리핑마다 빠짐없이 수어 통역이 이루어지는 이유다. 청각장애인이 정부의 브리핑을 자신의 언어로 서비스받는 것도 기본권인 것이다.


***

아래 댓글에서 보는 '약대생' 아이디의 의견이다. 가장 믿을 만한 의견이 아닌가 싶긴 하다...

▶ 치사율 : 그 질병에 감염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즉, 전체 인구중에서 그 질병으로 발생한 사망자의 비율을 의미.
▶ 치명률 : 그 질병에 걸린 사람 중에서 발생한 사망자의 비율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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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댓글에서 확인하는 바와 같이 '약대생'의 의견은 틀린 것으로 증명되는 듯하다. 

글쎄, 개념의 정의가 다수결에 좌우될 일은 없겠지만, 사전 외엔 마땅히 사실 확인이 어려워서 좀 느슨하게 쓴 글인데, 이제야 답이 나온 것 같다. 

사전은 부실해도 믿어도 된다로 정리한다.

 

치사율과 치명률은 같은 개념을 다른 관점(삶과 죽음)에서 지시한 낱말이다. 따라서 두 낱말의 뜻은 같다.

 

  치사율=치명률

 

2021.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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