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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데기와 ‘머리 인두’

by 낮달2018 202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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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 ‘고데기’의 대체어  ‘머리 인두’?

▲ <한겨레>에서 '고데기'를 다루고 있다. ⓒ <한겨레> 3월 6일 27면 PDF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던 일본어는 꽤 많이 사라졌다. 우리 세대가 알고 있는 어떤 일본어를 아이들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어의 우리말 순화가 진행되어 온 세월에 비기면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양복저고리’와 ‘마이’

 

양복저고리를 일러 ‘마이’라고 말하는 아이와 어른들이 적지 않다. 공중파 방송에 나와서 천연덕스럽게 ‘마이’를 뇌는 여자 연예인을 바라보고 있자면 거북하기 짝이 없다. 대체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양복저고리’도 좋고, 그냥 ‘상의(上衣)’라도 괜찮고, 그것도 마땅찮으면 ‘재킷((jacket)’이라도 써도 좋을 일이다.

▲ 각종 고데기들

‘마이’는 싱글 양복을 가리키는 일본어 가타마에(かたまえ)에서 왔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선 ‘가다마이’로 쓰이다가 줄여서 ‘마이’가 된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다듬기’에서 찾아보니 ‘가타마에’의 순화어는 ‘홑여밈(옷), 홑자락’이다. ‘싱글’의 뜻을 제대로 새긴 말이긴 하지만 어째 낯설고 입에도 설다.

 

가타마에를 줄여서 ‘마이’라고 할 때는 예의 양복 ‘윗도리’를 가리키는 말로 쓸 때가 많다. 원래 ‘마에’의 뜻은 ‘옷깃’이니 ‘마에’든 ‘마이’든 알맞은 표현이라고 하기엔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이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순화어’가 언중(言衆)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주로 여성들이 사용하는 기구로 ‘고데’ 또는 ‘고데기’라 부르는 물건이 있다. ‘고데’란 “불에 달구어 머리 모양을 다듬는, 집게처럼 생긴 기구. 또는 그 기구로 머리를 다듬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어제 아침 배달되어온 <한겨레>의 ‘이에스시(ESC)’에 실린 기사에 세상에, ‘고데’와 ‘고데기’가 날것으로 쓰이고 있었다.

 

흠결을 찾아내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도 <한겨레>가 지켜온 한글 전용 원칙에 대해선 한 수 접어주어야 한다. 이 신문이 일관되게 우리말, 우리글을 제대로 쓰기 위해 애쓰는 일간지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방법이 별로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 신문에서 날 것으로 ‘고데(鏝こて)’를 쓰고 있으니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 집에도 물론 딸애가 쓰는 예의 기구가 있다. 역시 ‘고데기’라 불렀던 게 틀림없다. 그런데 <한겨레>에서 이 일본어를 의심 없이 썼다는 데 나는 흥미를 느꼈다. 수업이 비는 시간에 인터넷의 국어원 ‘우리말 다듬기’에 가서 순화어를 찾아보았다.

 

국어원에 따르면 ‘고데’의 뜻은 ① (머리)인두(질) ② 흙손 ③ 지짐머리 등이다. ② 흙손은 흙일을 할 때, 이긴 흙이나 시멘트 따위를 떠서 바르고 그 겉면을 반반하게 하는 연장을 말하는데 이를 굳이 ‘고데’라고 쓰지는 않으니 문제는 ① 과 ③ 이다.

 

‘인두(질)’은 한복을 지을 때 쓰는 기구와 작업을 이르는 표현으로는 무난하지만, 머리를 손질하는 도구나 작업을 일러 ‘머리 인두(질)’이라 하는 것은 입에 설 뿐 아니라 표현이 다소 ‘거시기’하다. 차라리 ‘머리 손질’ 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본뜻에 가깝다.

 

실패한 대체어 ‘머리 인두(질)’

 

영어로는 어떻게 쓰는가 싶어 확인해 보니 ‘tongs(부젓가락)’, 또는 ‘curling iron(인두)’ 이라고 한단다. 이 역시 우리 일상에서 쓰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래저래 이 물건을 부르는 이름을 정하는 게 마뜩찮 다.

 

순화어로 바꾸어도 여전히 원래의 일본어가 활발하게 쓰인다는 것은 결국 제시된 순화어를 언중들이 수용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말이란 언중들의 선택에 따라 힘을 얻기도 하고 사람들의 입길에서 멀어지기도 하는 것이니까.

혹시나 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고데’는 일본어라며 표제어에 올라 있다. 친절하게 그림 설명까지 곁들인 풀이 밑에는 파생동사 ‘고데하다’까지 붙여 놓았다.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우리말을 찾지 못해 나온 고육지책이었을까. ‘고데하다’는 일본어 ‘고데’에다 접미사 ‘-하다’를 붙인 일종의 이종교배다.

 

일본어와 이종교배 ‘고데하다’

 

하긴 ‘드라이(dry)하다’, ‘패스(pass)하다, ’데이트(date)하다‘ 따위의 한글과 영어가 섞인 말도 표제어에 올라 있는 상황이니까, 일본어라고 해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을 터이다. 대체 의미를 찾지 못한 결과이긴 하지만 영어와 한글을 섞는 방식에 우리 시대 언어(문자)의 위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과잉일까.

▲ 고데기는 공인된 이름이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고데기'도 올라 있다.

이들 파생동사의 중심 의미가 담긴 어근(語根)은 영어(dry, pass, date……)고 국어는 허사, 즉 접미사로만 쓰였다. 대학 강의에서 영어 어휘를 입에 달고 사는 교수들의 화법도 마찬가지다. 영어에다 붙이는 우리말이란 게 그저 조사나 접사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개화기의 이른바 국한문 혼용 문체로 서술된 ‘서유견문’이나 ‘기미독립선언서’의 형식과도 비슷하다.

 

외래어나 외국어를 우리말로 대체하려는 노력은 그것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급변하는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넘쳐나는 정보를 모두 자국어로 대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또 마땅한 대체어를 마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체어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게 언중들의 선택을 통해 공식적 언어의 지위를 얻기는 쉽지 않다. 몇 가지 대체어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말이 쓰이는 것은 대체어가 언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어 찌꺼기의 청산, 영어의 부상

 

천하의(!) <한겨레>가 ‘고데’가 일본어인 줄 모르고 지면에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걸 날것으로 쓰겠다는 결정은 충분한 협의를 거쳐서 나왔으리라. <표준국어대사전>에 파생동사로 오른 ‘고데하다’를 보면서 피치 못할 선택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느낌이 개운치 않은 것은 그게 하필이면 ‘일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식민지 역사 청산의 일부로서 일본어의 찌꺼기를 정리하는 일은 곧 광복 70년을 맞이하게 될 대한민국이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 과제다. 반세기를 넘기면서 이 작업은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까닭은 5, 60대 이후 세대들이 일상 언어 속에 녹아 있는 일본말의 찌꺼기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젊은이들과 어린 학생들은 그 언어적 잔재에서 자유롭다. 대신 이들은 영어에 깊숙이 기울어져 있다. ‘기분이 업(up) 되다’거나 ‘다운(down) 되다’고 하는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게 행하는 이 알파벳 키드의 언어 세계는 좀 혼란스럽다. 이 생경한 21세기의 언어 유통 방식이 그런 것처럼 우리 말과 글은 이들을 통해 그 정체성 앓이를 계속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2014. 3.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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