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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쑥골통신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by 낮달2018 2020.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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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다리면서 쓴 글 몇 편을 잇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ㅌ탄핵소추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탄핵 소추안을 인용함으로써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이른바 촛불혁명은 무르익기 시작한 것이다. 

 

1.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블로그에 ‘Q씨에게’라는 꼭지를 만든 건 2011년 가을입니다. 여는 글을 써 올리고 이듬해 벽두에 한 편을 더 보태고 나서는 이 꼭지를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고 5년, 고향 가까이 학교를 옮겼고 지난해엔 아이들 곁을 아주 떠나왔습니다.

 

‘퇴직일기’를 닫고 ‘Q씨에게’, ‘쑥골에서 부치는 편지’로

 

학교를 떠난 뒤엔 ‘퇴직일기’라는 이름의 꼭지에다 은퇴 이후의 이런저런 삶을 주절댔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말로 퇴직 1년을 넘겼습니다. 그것은 출근의 부담 없이 주어진 온전한 자유를 어떻게 써야 좋은지를 모색하는 시간이었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이제 ‘퇴직일기’를 닫고 대신 ‘Q씨에게’로 돌아왔습니다. 6년 전 어느 날, 소환했던 ‘Q씨’에게 보내는 편지로 퇴직 2년 차를 열어갈까 합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봉곡(蓬谷)’입니다. ‘쑥대’가 많아 ‘다붓’이라고 불렀다는 동네인데 봉곡은 한자로 풀면 ‘쑥골’입니다. 이 편지를 ‘쑥골에서 부친다’고 쓰는 까닭입니다.

 

그간 예순 넘어 마련한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이 편안했습니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머리를 텅 비우고 멍하니 시간의 흐름을 지켜보든 거리낄 게 전혀 없었으니까요. 일주일쯤 두문불출해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자신도 알지 못했던 ‘은둔형’의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런 까닭이었습니다.

 

지난 2월 말, 후배 교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면서 ‘북봉산 밑에서 은둔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 나는 우정 내 삶을 ‘은둔의 삶’으로 이름 붙였습니다. 은둔의 의미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삶도 그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 북봉산 산등성이에서 만난 봄의 전령들. 생강나무 꽃눈이 천천히 망울지고 있었습니다 .

뒤늦은 추위로 한동안 북봉산(北峰山)을 오르지 않았습니다. 어제는 보름여 만에 산을 찾았습니다. 단렌즈를 끼운 사진기를 둘러메고 오르는 산등성이에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길섶에 망울져 있는 참꽃(진달래)에도 능선에 불어오는 바람에도 봄기운이 가득했습니다.

 

봄의 순환을 경이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40대에 들어서였습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생명의 순환이 신비로 다가온 것은 더는 세상을 나의 잣대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었겠지요. 한때는 으레 그러려니 했던 계절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순환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게 나이 듦, 성장의 표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상까지 이르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숨이 턱이 닿아도 몸에 감겨오는 기운들에 휩싸이는 순간은 황홀하지요. 언젠가 산길을 걷다가 까닭 없이 터져 나오는 오열을 참을 수 없었던(그것도 십 년 전의 일이네요) 것도 이런 행복감 때문은 아니었는지요. [관련 글 : 숲을 걸으며]

 

산에서 내려와 보니 아파트 앞 화단에 산수유도 망울져 있었습니다. 수분이 빠져 쪼그라든 지난가을의 산수유 열매 사이로 노랗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산수유 꽃봉오리는 정작 피었을 때보다 더 아름답고 귀해 보였습니다.

▲ 지난가을 익었던 열매도 아직 남았는데 새 꽃눈이 망울지고 있는 산수유.
▲ 산수유는 정작 꽃이 피기 전 망울져 있는 꽃눈이 더 귀하고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절망의 겨울’에서 ‘희망의 봄’으로

 

삼일절 날 찾았던 대구 계성학교 교정에는 매화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가장 먼저 꽃소식을 전해주었던 봉곡동 산비탈에도 매화가 피어 있을지 모르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오늘 오후에 들렀더니 꽃이 피긴 피었는데 성미 급한 몇 녀석만입니다.

 

대구까지 올라온 꽃소식은 아마 다음 주쯤 되어야 우리 동네에도 닿을까 싶습니다. 찍어온 사진 속의 산수유와 매화를 들여다보며 이 봄을 설렘으로 맞습니다. 기실 설렐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화사한 봄소식만으로도 마음이 설레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 봉곡동 산비탈에서 서둘러 피어난 몇 송이 매화들. 꽃들은 어김없이 약속을 지켰지요.

시절이야 ‘하 수상(殊常)’합니다만 저만큼 오는 봄을 즐겨 맞지 못할 일은 없겠습니다. 곳곳에서 선언하는 ‘박근혜 없는 3월이라야 봄’이라는 약속을 믿습니다. 그것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허두를 빌어 새로 다가올 시대를 그려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악의 시간’에서 ‘최고의 시간’으로,
‘어리석음의 시대’에서 ‘지혜의 시대’로,
‘불신의 세기’에서 ‘믿음의 시대’로,
‘어둠의 계절’에서 ‘빛의 계절’로
‘절망의 겨울’에서 ‘희망의 봄’으로

 

2017. 3. 4. 낮달

 

 

 

숲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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