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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인사, ‘갈음’하나, ‘가름’하나?

by 낮달2018 2020.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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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하다’의 뜻은 ‘갈음하다’로 써야 한다

▲ 어떤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은 연하장. '갈음하다'를 '가름하다'로 쓰고 있다.

어떤 공공기관으로부터 전자우편 한 통을 받았다. 이 기관의 대표 명의로 보낸 신년 연하장이다. 예전처럼 종이 연하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니 거기서 절약되는 예산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편지를 열었다.

 

‘가름’이 아니라 ‘갈음’이다

 

잔뜩 맵시를 낸 ‘謹賀新年(근하신년)’ 네 글자 아래 지난 1년간 활동을 회고하고 새해에도 ‘배전(倍前)의 편달’을 부탁한다는 대표의 인사말이 실렸다. 그런데 마지막 인사말이 조금 걸린다. 틀림없다.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다.

 

“(……) 을미년 새해 인사를 가름합니다.”

 

예의 인사말의 본뜻은 “(이로써) 새해 인사를 대신한다”라고 하는 의미니 ‘갈음하다’로 써야 옳다. 그런데 여기에는 ‘가름하다’로 써 놓은 것이다. 나는 정작 당사자도 아닌데 갑자기 민망하고 난감해지기 시작한다. 어떡할까. 나는 바로 ‘간편 답장’을 썼다. ‘가름’ 대신 ‘갈음’을 써야 옳다고 말이다.

굳이 <표준국어대사전>을 들추어볼 일도 없다. ‘가름하다’는 ‘가르다’에서 온 ‘가름’에다가 다시 접미사 ‘-하다’가 붙은 낱말이다. “① 쪼개거나 나누어 따로따로 되게 하다, ② 승부나 등수 따위를 정하다.”는 뜻이니 ‘승패를 가름했다’와 같이 쓰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갈음하다’는 ‘갈다’에서 온 ‘갈음’에다 접미사 ‘-하다’가 붙은 형태다. 이는 “다른 것으로 바꾸어 대신하다”라고 하는 뜻으로 쓰인다. ‘갈음하다’는 앞에 반드시 목적어(…을)와 부사어(…으로)가 와야 제대로 쓸 수 있다.(아래 문장의 밑줄 친 진한 글씨)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치사를 갈음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연하장의 마지막 문장은 ‘가름하다’가 아니어도 온전치 않다. 목적어(‘새해 인사를’)는 있는데 부사어(‘이 연하장으로’)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맞는 문장이 되려면 부사어를 하나 더 넣어야 한다.

 

“이 연하장으로 새해 인사를 갈음합니다.”

 

‘배상(拜上)’도 ‘올림’으로


마지막 발신인 뒤에 쓴 ‘배상(拜上)’도 낡은 인사법이다. 이는 “절하며 올린다는 뜻으로, 예스러운 편지글에서 사연을 다 쓴 뒤에 자기 이름 다음에 쓰는 말.”이다. ‘올림’으로 순화해 쓰면 충분하다. 요즘 사람들이 ‘부모님 전 상서(前上書)’라 쓰지 않고 ‘부모님께 (올립니다).’ 정도로 순화해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 올림”

 

이제 ‘배상’ 따위의 낱말은 박물관으로 보낼 때가 된 듯하다. 처음 편지쓰기를 배우던 초등학교 시절처럼 ‘아무개 올림’이라고 써 보자. 낯설고 딱딱한 느낌의 ‘배상’보다는 ‘올림’이 훨씬 더 공경하고 정중한 의미가 살아 있지 않은가.

 

‘가름’이 잘못 쓰였다는 간편 답장을 보내긴 했지만, 이 기관의 연하장이 다시 올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얼핏, 어차피 말일까지는 근무가 이루어질 테니 뜻만 있으면 얼마든지 고친 연하장을 받아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말이다.

 

 

2014. 12.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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