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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잃어버린 언어, 입말과 속담

by 낮달2018 2020.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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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말’이 자꾸 ‘글말’을 닮아간다

 

입으로 하는 말을 입말[구어(口語)], 글로 쓰는 말을 글말[문어(文語)]이라 한다. 적어도 1894년 갑오개혁 때까지는 이 입말과 글말은 서로 맞지 않았다. 입말과 글말의 일치, 즉 언문일치(言文一致)는 1910년 이후 이광수·김동인 등의 작가에 의해 전개되었지만, 그 ‘이름과 실제’가 같이 완성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체로 다르지 않은 입말과 글말을 쓰며 산다. 그러나 그 쓰임의 맥락이나 상황이 분명히 다르니 둘이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입말이 가진 순간성·현재성·즉흥성에 비추면 글말이 가진 장점은 분명히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입말이 그 발화(發話) 상황에 맞추어 과감한 생략이 허용되는 데 비기면 글말은 잘 갖추어 입은 입성 같다.

 

신문학 100년, 어느덧 입말과 글말이 어긋나지 않고 제대로 겹치는 시대가 되었다. 원래 언문일치는 생경한 ‘글말’이 ‘입말’을 닮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언문일치가 엔간히 이루어지면서 요즘 같으면 어째 입말이 자꾸 글말을 닮아가는 것 같아서 어리둥절한 느낌이 있다.

 

이를테면 입말로 쓰면

 

“아이고, 속 시끄럽어라. 내가 니한테 우째야 되겠노?”

 

정도로 쓸 말이 먹물과 식자가 들면서 이런 식으로 바뀐다.

 

“참, 곤혹스럽네. 넌 내가 네게 어떻게 하길 원하니?”

 

거기엔 물론, 투박한 고장 말이 세련된 표준말로 바뀌는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꾸밈없고 정겨운 벗끼리의 대화가 마치 어느 영화에나 나오는 대사처럼 말쑥해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교육으로 인한 ‘언어 지식의 상향 평준화’쯤으로 치부해 볼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이 변화에 드러나는 건 그것이 우리 겨레의 입말과는 다른, 글말에 가깝다는 점이다. 우리말에선 사물을 주어로 하거나 수동태의 문장을 잘 쓰지 않는다. 이발사가 깎지만 우리는 ‘머리를 깎았다’고 하고, 운전사를 들여 다녀온 여행도 ‘차를 몰고’ 간다.

 

말속에 녹아 있던 ‘속담’도 사라지고 있다

▲ <토지>에는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 함경도와 평안도 등 팔도의 사투리가 쓰이고 있다. 평사리 박경리문학관에 걸린 등장인물의 그림.

또 하나, 우리가 쓰고 있는 입말 가운데 중요한 변화는 구비문학의 값진 유산인 속담과 격언 따위가 시나브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속담은 일부러 그걸 기억할 때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잊힌 말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일상 언어생활에서 쓰는 속담은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속담 열 개를 늘어놓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옛 선인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 부모 세대는 일상 언어생활 가운데 속담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느낌의 결을 제대로 살려낸 이들이다. 그들은 공유하는 속담을 말속에 녹여 씀으로써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섬세한 결들을 아주 정겹게 나눈 것이다.

 

“흥 머지않았다. 멀지 않아. 종놈이 상전 기집 뺏는 판국인데, 아 국모도 머리끄뎅이 끌고 가서 개같이 죽있다 카는데, 정승이란 높은 벼슬아치들도 서울서는 몰죽음을 당했다 안 카든가? 또 민란이 나야…….”
“부질없는 소리…….”
“부질없는 소리라니? 다 같이 세상에 나와 가지고 사대육부가 남만 못해 우리는 평생 등 빠진 적삼에 보리죽이란 말가?”
“그리 원통커든 삼신 할매 보고 물어보라모. 비렁땅에 뿌린 씨는 비렁땅에서 자라기 매련이지.”

 

    -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제1부 제1권에서 대화 일부만 발췌

 

하동 평사리의 상민 ‘이용’과 ‘칠성’의 대화다. 서부 경남 지방의 억센 고장 말에 섞여 이들의 감정의 결이 아주 섬세하게 드러난다. 대화에서 화자의 속내를 드러내는 데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 게 속담이다. 짧은 대화 속에 각각 ‘등 빠진 적삼에 보리죽’과 ‘비렁 땅에 뿌린 씨…’라는 두 개의 속담이 쓰인 것이다.

▲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호남 사투리의 보물창고다.

“미쳤간디요? 지가 진 농새 죽이 끓든 밥이 끓든 지 손으로 간수허는 맛에 살제 무신 초친 맛이라고 배급을 타다 묵어라. 동냥아치도 아니겄고, 고런 농새도 안 지어라.”
“허어, 갈수록 태산이시웨. 아, 니 것도 내 것도 아닌 논에 그눔에 농새 자알 돼야 묵겄소. 새빠지게 일헐 놈 하나또 웂을 것잉께 가실허고 나먼 쭉징이만 수북헐 농새 지나 마나 아니겄소?”
“워메 시장시런 거. 고것도 말이라고 헌당가? 그려서 다 항꾼에 잘살게 된다고 떠들어 쌓는 갑구만. 고건 공염불이여. 시상 사는 이치를 몰라서 허는 소리제. 내 터밭 배추가 쥔 밭 배추보다 속살이 더 여물게 차는 이치가 먼디.”

 

    -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 제1부 제1권에서 대화 일부만 발췌

 

호남에서도 다르지 않다. 김범우의 질문에 대한 문 서방의 반문이다. 역시 걸쭉한 호남 고장 말속에 민중의 입말이 빛난다. 여기에도 약방의 감초처럼 속담과 관용구가 맞추어 섞여 있다. 결국, 이 땅의 민초들은 속담에 실어 자신들의 마음자리를 펼쳐 왔던 셈이다.

 

보통교육, 국민교육, 의무교육의 확대가 문맹률을 낮추고 전 국민의 교양 수준을 높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신에 표준말 중심의 보통교육은 고장 말을 열등한 언어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입말보다 세련된 글말에 기울어지면서 살아 있는 입말의 유산을 잃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도 유감스럽게도 사실이 아닌가 싶다.

 

나는 지금도 돌아가신 양친께서 일상으로 쓰셨던 입말의 울림을 아련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결코 특별한 표현이나 수사가 아니라 일상의 언어였다. 일부러 말속에 끌어들이는 낯선 말마디가 아니라, 오히려 그게 그분들의 선험적 언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고놈 발 좀 봐라. 까마구(귀)가 할배요 하겠다.
· 무슨 놈의 음식이 니 맛도 내 맛도 없는지 모르겠다.
· 이 사람들이 누구 배 질(길) 들일라 카는가?
· 언 놈이 암까마군지, 언 놈이 수까마군지 알 수 없네.
· 간다 간다 카면서 아(이) 서이(셋) 낳고 간다 안 하나.
· 고뿔도 남 안 준다 카니라.
· 누구 집에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알 수가 있나 .
· 한 다리 건너면 천 리다.
· 청대콩이 여물어야 여물었나 카는 기다.
· 죽은 자식 부랄 만지기지.
· 둘을 한배 실어도 기울지도 않겠다.
· 이웃집 처자 믿다가 장개(가) 못 간다더니.
· 콧구멍이 두 개니 천만다행인 줄 알아라.

 

대부분 짐작할 만한 속담이나 관용구다. 그러나 아이들의 까매진 손발을 보고 당신들께서 주던 핀잔, ‘까마귀 할배’ 소리나 음식을 기다리다 혼잣말처럼 뇌까리는 ‘배 길들이기’는 단숨에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게 해 준다.

 

‘어느 놈이 암까마귄지, 수까마귄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 ‘한 배 실어도 기울지도 않겠다.’는 얘기는 무게가 같다는 뜻이니 둘 다 같아서 어느 누가 낫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지금도 고향마을 지키고 있는 친구가 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으로 학력을 마감한 그 친구는 제화공이 되었다가 세월에 쫓겨 지금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제대로 된 입말을 쓰는 친구다.

 

그 친구는 제 말속에 서너 개 이상의 속담을 쟁여 넣는다. 우리는 그의 말투 속에서 잃어버린 유년, 성큼 떠나와 버린 저 과거의 시간을 환기하곤 한다. 우리가 다분히 겸연쩍게 구사하는 속담과 달리 그의 말속에서 예의 속담들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뜻과 걸쭉하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가끔 나는 양친께서 즐겨 쓰시던 말씀들, 속담과 정겨운 고장 말이 함께 어우러진 그 말투를 흉내 내어 말하곤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게 신기한 듯, 마치 낯선 외계어를 듣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곤 한다. 세상의 변화가 멀쩡한 우리 입말을 마치 외계어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우리 부모님 세대의 말투, 말씀 속에 녹아 있는 속담과 관용구는 우리말에 숨어 있는 값진 유산이다. 단지 그것들은 세월에 묻혀서, 세련된 글말에 가려서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있을 뿐이다. 말하기가 쓰기나 읽기만큼 주요한 우리 국어의 한 영역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09. 2. 3. 낮달

 


내 글을 열심히 읽는 한 친구가 그랬다. 열 번 중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사진을 쓰지 않는 글’을 읽고 싶다고. 글쎄, 친구에겐 글에 끼워 넣은 사진이 글읽기를 방해하는 것일까. 그는 그렇다고 했다. 정말 그런가?

 

글에다 사진을 끼워 넣는 것은 내겐 일종의 배려다. 짧지도 않는 텍스트를 끈기 있게 읽어주는 독자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다. 지금도 <토지>나 <태백산맥>의 표지 이미지라도 쓰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그러나 친구와의 약속에 따라 ‘맨살’로 내보낸다. 이 재미없는 글을…….

 

글을 읽으면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가 계시다면 너그러이 용서를 빈다.

 

* 새로 사진 두 장을 썼다. 그게 맞을 듯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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