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

⑲ 입동(立冬), 겨울의 ‘문턱’을 넘으며

by 낮달2018 2023. 11. 7.
728x90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겨울로 들어가는 첫 절기

▲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겨울을 나면서 영양분의 소모를 최소로 줄이고자 하는 나무의 생존 전략이다. 벚나무 단풍 한 잎이 곱다.

11월 8일 입동(立冬)

 

오는 8일(2019년 기준, 2024년도는 7일)은 24절기 가운데 열아홉 번째 절기 ‘입동(立冬)’이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후 약 15일,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전 약 15일에 드는 절기다. 이제 바야흐로 겨울이 시작되려 하는 것이다.

 

입동은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지만 겨울나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겨우내 먹을 김장은 이 입동을 전후하여 담가야 제맛이 난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기온이 높은 데다 집집이 김치냉장고를 들여놓았으니 절기를 따지는 게 무색할 지경이다.

 

입동에서 대한까지가 ‘겨울철’에 해당하는 절기다. 입동, 소설, 대설(大雪), 동지, 소한(小寒), 대한(大寒) 등이 그것이다. 철마다 여섯 개씩의 절기가 나란히 이어지는 것이다. 겨울은 농한기, 힘겹게 한 해를 살아온 사람들이 쉬면서 이듬해를 준비하는 계절이다.

 

바야흐로 인공위성과 슈퍼컴퓨터의 시대인데도 여전히 24절기는 우리 생활 주변에 있다. 정작 농경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도시인들에게도 그것은 계절의 표지로 인식된다. 봄은 ‘입춘’과 함께 더디게 오고, ‘춘분’으로 그 난만(爛漫)한 시절을 미리 안다. 여름도 마찬가지다. ‘하지’로 가장 낮이 긴 날을, ‘소서’와 ‘대서’로 그 계절의 막바지를 겪는다.

▲ 추수가 시작되면서 들판에 벼를 벤 논들이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추’로 가을의 들머리를 깨닫고, ‘처서’로 끈질긴 더위가 물러났음을 안다. ‘추분’으로 이제 가을이 꺾이고 있음을, ‘한로’와 ‘상강’으로 오는 겨울을 우울하게 내다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덧 겨울, ‘입동’이 그 문턱을 넘는 일이라면 ‘소설’은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아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입동 후 닷새씩 묶어 삼후(三候)로 날씨를 내다보았다.

 

“초후(初候)에는 비로소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에는 처음으로 땅이 얼어붙으며,
말후가 되면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

 

입동 즈음에는 동면하는 짐승들이 땅속에 굴을 파고 숨으며, 산과 들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풀들은 말라간다.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겨울을 나면서 영양분의 소모를 최소로 줄이고자 하는 나무의 생존 전략이다.

 

입동 무렵, 무와 배추를 수확하여 김장을 하기 시작한다. 입동을 전후하여 5일 내외에 한 김장이 맛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온난화 현상에다 김치 냉장고를 이용하면서 김장철이 조금 늦어지고 있다. 농가에서는 수확한 무를 땅에 구덩이를 파고 갈무리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농촌에서도 이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 수확을 끝낸 들판에 곤포 사일리지(Baling silage 볏단을 말아놓은 것)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다.
▲ 압축포장(곤포) 사일리지를 제조기.
▲ 이른 아침 안개 속에 압축포장 사일리지가 이슬을 맞고 있다.

추수가 시작되면서 수확을 끝낸 들판에 곤포 사일리지(Baling silage·볏단을 말아놓은 것)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 같으면 농가에서 여물로 썰어 쇠죽을 끓여서 소에게 먹였겠지만, 쇠죽 끓이는 일은 없어졌다. 대신 곤포 사일리지로 만들어 사료용으로 판매한다.

 

예전에는 입동 무렵에 농가에서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하고, 제물을 약간 장만하여 곡물을 저장하는 곳간과 마루 그리고 외양간에 고사를 지냈다고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또, 여러 지역의 향약에 따르면 마을에서 자발적인 양로(養老) 잔치를 벌였는데, 입동과 동지, 제석 날에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雉鷄米)라고 하였다.

 

본래 치계미란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하였는데, 마치 마을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비롯한 풍속으로 보인다. 아무리 ‘없는 사람’이라도 일 년에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출연을 했다는데,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다. 도랑탕은 겨울잠을 자려고 도랑에 숨는 미꾸라지들을 잡아서 끓인 추어탕이다.

 

입동을 즈음하여 점치는 풍속도 여러 지역에서 전해 오는데 이를 ‘입동 보기’라고 한다. 입춘 때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 개이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여기는데, 입동 때는 뿌리 대신 잎을 보고 점친다. 입동 전에 보리의 잎이 가위처럼 두 개가 나야만 그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있는 것이다.

 

대개 전국적으로 입동에 날씨가 추우면 그해 겨울이 크게 추울 거로 보는데, 이는 입동 무렵에 쳐 온 ‘날씨 점’의 유습이다. 올겨울 기온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겠으나 기온변화가 크겠고,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하겠다고 한다.

▲ 마을 앞 농로에 쑥부쟁이가 시들어가고 있다.
▲ 우리 동네 어느 아파트 단지 외곽 울타리에 벚나무 단풍이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다. 2022. 11.2.

2019. 11. 7. 낮달

 

[서(序)]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겨울 절기

소설(小雪), ‘홑바지’가 ‘솜바지’로 바뀌는 ‘작은 눈’

대설(大雪), 눈이 없어도 겨울은 깊어가고

동지, 태양이 죽음에서 부활하는 날

소한(小寒), 추위보다 미세먼지가 걱정이다

‘대한’, 그해 대한은 봄을 기다리기엔 벅찼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