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霜降), 가을의 마지막 절기
24일(2019년 기준, 2024년도는 23일)은 상강(霜降)이다.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에 드는 24절기 중 열일곱 번째, 가을의 마지막 절기다. 상강은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린다’는 뜻으로 이 무렵이면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지만,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므로 수증기가 지표면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게 되는 것이다.
10월 24일 상강
중국 사람들은 상강부터 입동 사이의 기간을 닷새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승냥이가 산 짐승을 잡고,
중후(中候)에는 초목이 누렇게 떨어지며,
말후(末候)에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가 모두 땅에 숨는다.”
고 하였다. 이는 전형적인 늦가을 날씨를 이르는 것으로 특히 말후에서 ‘벌레가 겨울잠’에 들어간다고 한 것은 이 무렵부터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다가올 추위를 예고해 주는 전령사가 곧 ‘서리’다.
늦가을에 내리는 서리 가운데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를 ‘무서리’라 하고 들판을 눈처럼 하얗게 뒤덮는 서리를 ‘된서리’라 한다. 서리는 ‘싸늘하게 얼어붙는’ 성질 때문에 상징적 의미가 덧붙는 말이다. ‘서릿발’이나 ‘추상(秋霜)’ 같은 낱말의 쓰임새는 전적으로 그런 상징성에 기대고 있다. 조선시대 삼사(三司)의 하나인 사헌부의 별칭이 ‘상대(霜臺)’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옛 시인들도 상강을 노래했다.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권문해는 <초간선생문집>에서 상강 무렵의 계절적 변화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는 가운데 점점 산 모양이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 처음 놀란 기러기가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도리어 근심이 되는 것은 노포(老圃)가 가을이 다 가면, 때로 서풍을 향해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
(半夜嚴霜遍八紘 肅然天地一番淸 望中漸覺山容瘦 雲外初驚雁陳橫 殘柳溪邊凋病葉 露叢籬下燦寒英 却愁老圃秋歸盡 時向西風洗破觥).”
19세기 중엽의 시인 김형수도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서 한로와 상강에 해당하는 절기의 모습을 “초목은 잎이 지고 국화 향기 퍼지며 승냥이는 제사하고 동면할 벌레는 굽히니”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이는 중국의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 기러기 오는 상강 절기
정학유의 가사 <농가월령가>도 ‘9월령’에서 가을 추수의 이모저모, 그리고 풍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이웃 간의 온정을 노래하고 있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 기러기’가 오는 ‘한로 상강 절기’는 ‘온 산 단풍’과 ‘노란 국화’를 뽐내는 시절이다.
‘9월령’에서는 경치가 보기 좋지만 ‘추수’ 급한 시절, 타작하는 풍경과 종자를 갈무리하는 풍경도 담았다. “들에는 조, 피 더미, 집 근처 콩, 팥 가리, 벼 타작 마친 뒤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로 추수 무렵의 바쁜 농촌의 일상을 읊조리고 있다.
입동은 11월 8일
들판은 시방 누렇게 익어가고 있지만, 아직 우리 지역에서 추수한 곳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기온이 갑작스레 떨어지긴 했지만, 서리가 내린 것 같지도 않다. 기상청이 제공하는 유명 산 단풍 현황에 따르면 강원도 설악산, 치악산, 오대산이 절정이고 금오산과 팔공산에는 첫 단풍이 시작되었다. 모르긴 해도 절정이 되려면 한 열흘쯤은 더 걸릴 듯하다.
벗들과 의논하던 서해의 위도 여행은 무산되었다. 월말께는 피아골의 단풍을 보러 가면서 하동 평사리를 찾을까 생각 중이다. 새삼스레 <토지>의 무대를 새로 찾고 싶은 마음을 먹게 된 것은 평사리를 찾은 12년 전의 흔적을 죄 잃어버린 까닭이다.
2019. 10. 23. 낮달
[서(序)]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가을 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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