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세 번째 절기 대설 (大雪)
이번 주 들면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물론 아침에만 영하로 떨어지고 날이 들면 영상이 회복되긴 하지만, 사람들은 추위에 익숙하지 않거나 추위를 잘 참지 못하는 것이다. 오는 6일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 되리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7일은 대설(大雪), 추워질 때도 되었다.
대설은 24절기 가운데 스물한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소설(小雪)과 동지(冬至) 사이에 든다. 소설에 이은 대설은 ‘큰 눈’이라는 이름에서 보이듯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뜻. 원래 역법의 발상지인 중국 화북지방의 계절적 특징을 반영한 절기여서 우리나라에선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올 대설은 음력으로는 11월 11일, 양력으로는 12월 7일(2019년 기준, 2024년도 같음)로 태양의 황경(黃經)은 255도에 이른 때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음력 10월에 드는 입동과 소설, 음력 11월에 드는 대설과 동지 그리고 12월의 소한, 대한까지를 겨울이라 여기지만, 서양에서는 추분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이라 친다고 한다.
대설이 드는 음력 11월은 동지와 함께 한겨울 절기로 농부들에게 있어서 일 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농한기다. 그러나 느긋하게 쉬면서 새해를 기다리는 여유 따위야 지배층의 것이었지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민중들의 것은 아니었다.
그 자신 양반이었지만, 서민들의 삶을 살핀 정학유(1786~1855)가 노래한 <농가월령가>는 그런 저간의 사정을 빈틈없이 그리고 있다. 환곡과 세금, 제수, 소작료 따위를 제하고 나니 ‘남은 것이 거의 없’는 수확 말이다.
그러나 민중들은 그 가운데서도 여유를 찾는 낙천적 모습을 보여준다. ‘콩기름 우거지로 조석 반죽 다행이’라며 메주를 쑤고, 동지에 팥죽을 쑤어 이웃과 즐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새해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며, 길쌈을 힘써 하고, 아이들 노는 소리에 겨워하는 것이다.
십일월은 한겨울 되니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내리고 눈 오고 얼음 언다.
가을에 거둔 곡식 얼마나 하였던고.
몇 섬은 환곡 갚고 몇 섬은 세금 내고,
얼마는 제사 쌀이요 얼마는 씨앗이며,
소작료도 헤아려 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꾼 돈과 봄에 꾼 벼를 낱낱이 갚고 나니,
많은 듯하던 것이 남은 것이 거의 없다.
그러한들 어찌할꼬 양식이나 아끼리라.
콩기름 우거지로 조석 반죽 다행이다.
부녀자들아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동지는 좋은 날이라 해가 길어지는구나.
특별히 팥죽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
새 달력 널리 펴니 내년 절기 어떠한고.
해 짧아 덧이 없고 밤이 길어 지루하다.
공채 사채 다 갚으니 빚 독촉 아니 온다.
사립문 닫았으니 초가집이 한가하다.
짧은 해에 아침저녁 자연히 틈 없나니,
등잔불 긴긴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뽑고 짜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 소리,
여러 소리 재잘거리니 집안이 재미있구나.
늙은이 일 없으니 돗자리나 매어 보세.
외양간 살펴보아 여물을 가끔 주소.
짚 넣어 만든 두엄 자주 쳐야 모이나니.
- 정학유, <농가월령가> 11월령
대설에 눈이 많이 오면 다음 해에 풍년이 들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이라 하여 눈이 많이 내리면 눈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凍害)를 적게 입어 보리 풍년이 든다는 뜻이다. 실제로 대설에 눈이 많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날씨 예보를 찾아보니, 중부 지방 쪽에 강설 예보가 있긴 하지만 우리 지역은 강수확률이 10~30%에 그친다. 눈이나 비가 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긴 해도, 강추위는 아무래도 사람의 마음을 위축시킨다.
22일은 동지, 새해에 소한, 대한을 지나면 다시 새로운 봄이다. 누구나 그런 것이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며 위안하면서 그 긴 겨울을 지내는 것은.
2019. 12. 6. 낮달
[서(序)]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겨울 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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