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24절기의 마지막 절기 ‘대한(大寒)’
오는 20일(2024년도 같음)은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은 이다. 태양의 황경이 300°가 될 때로 보통 동지가 지난 한 달 후 또는 소한이 지난 반 달 후에 온다. 중국의 경우로 치면 겨울의 매듭을 짓는 절후(節侯)로 추위의 절정기지만 우리나라에선 소한에서 살펴본 것처럼 ‘소한 얼음이 녹’을 정도로 따뜻한 경우가 많다.
대한의 마지막 날이자 입춘(立春) 전날(올해는 2월 3일)이 ‘절분(節分)’인데 이는 ‘철(계절)의 마지막’이란 뜻이다. 실제 정월 초하루가 되려면 일주일이 남았지만, 입춘은 정월절(正月節)의 시작일이므로, 이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연초가 된다는 것이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의 해가 시작되는 게 입춘부터라 했으니 이 절분 날이 바로 무술년(戊戌年)의 마지막 날인 것이다.
제주도에서 이사나 집수리 따위의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간(新舊間)’에 하는 것이 관습인데, 이때의 신구간은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일주일(올해는 1.25. ~ 2.1.)이 된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졌거나 일부 지역에서 명맥을 잇고 있는 풍속이지만, 이는 24절기가 우리네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관련 속담에 “대한 끝에 양춘(陽春) 있다.”가 있는데 이는 대한(大寒)이라는 큰 추위의 고비만 넘기면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려운 현재 상황을 잘 극복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주로 쓰인다.
추위의 정도와는 무관하게 기나긴 겨울을 견뎌온 세상과 사람들은 ‘따뜻한 봄’을 기다린다. 그것은 석 달 동안 세상에 머문 추위를 몰아내는데 그치지 않고, 새해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오롯하게 품고서 다가온다. 대한 뒤에 오는 ‘양춘’에 담긴 소망과 의지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듯 대한 추위를 맞으며 따뜻한 봄을 기다려야 했던 서민들이 세입자들의 이해를 저버리고 진행되는 재개발에 저항하다 희생된 날도 대한 날이었다. 10년 전인 2009년 1월 20일에 일어난 이른바 ‘용산참사’다. 더는 무엇을 말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입을 다문다.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 앞 남일당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망루에서 강제철거 반대 시위를 하던 5명의 시민과 이를 진압하던 1명의 경찰특공대원이 사망했다. 사건 발생 직후 생존자 5인은 ‘공동정범’으로 구속된 반면, 조기 과잉진압과 여론조작으로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도 회부되었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 조문영(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용산이라는 막장”(<한겨레> 세상 읽기 2019.1.17.) 중에서
칼럼은 담담하게 사고를 전하고 있지만, 거기 담긴 슬픔과 분노는 우리의 일상의 상식을 압도한다. 농경을 위해 고안한 것이지만 절기로 한 해를 가늠해 온 사람들의 일상과 삶을 파괴한 것은 무한 증식을 위해 통제되지 못한 자본과 그걸 뒷받침한 국가 권력이었다. 2009년 대한, 불길 속에서 숨져간 이들의 겨울은 그렇게 끝났던 것이다.
2019. 1. 19. 낮달
[서(序)]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겨울 절기
입동(立冬), 겨울의 ‘문턱’을 넘으며
소설(小雪), ‘홑바지’가 ‘솜바지’로 바뀌는 ‘작은 눈’
대설(大雪), 눈이 없어도 겨울은 깊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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