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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

㉒ 동지, 태양이 죽음에서 부활하는 날

by 낮달2018 20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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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네 번째 절기 동지(冬至)

▲ 2022년 동지인 오늘 아내가 끓여준 팥죽. 새알을 듬뿍 넣었는데 맛이 입에 감겼다 .

22일(2019년 기준, 2024년도는 21일)은 24절기 가운데 스물두 번째 절기 동지(冬至)다. 일 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夏至)부터 낮이 짧아지는 대신 길어지기 시작한 밤은 동짓날에 정점을 찍는다. 다음날부터 조금씩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동지를 태양이 죽음에서 부활하는 날로 여기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중국 주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는 신라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당(唐)의 선명력을 그대로 썼으며, 충선왕 원년(1309)에 와서 원(元)의 수시력(授時曆)으로 바꿔 썼다. 따라서 충선왕 이전까지는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추정한다. 동짓날에는 천지 신과 조상에게 제사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했고, 민간에서는 흔히 ‘작은 설’이라 하였다. 이는 동짓날이 태양의 부활이라는 큰 뜻이 있어서 설 다음가는 작은 설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오늘날,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하는 것은 그 유풍으로 보인다.

 

올 동지는 ‘늦동지’

 

‘동지(冬至)’는 ‘겨울 동’ 자에 ‘이를 지’ 자를 쓴다. 음의 세력이 약해지고 양의 세력은 점점 커져 만물이 생동하는 시점이 된다고 하여 실질적으로 해가 바뀐다고 본 옛사람들은 동지를 ‘아세(亞歲)’라 했다. 올 동지는 음력으로 따져 동짓달 하순인 스무엿새니 이번 동지는 ‘늦동지’다.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中)동지’, 그믐 무렵에 들면 ‘노(老)동지’라고 한다.]

 

동짓날에 먹는 시절식(時節食), 팥죽의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전한다.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평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동짓날 팥죽을 쑤어 역귀(疫鬼)를 쫓았다는 것이다.

▲ 팥죽 ⓒ 궁중음식원

옛사람들은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고 이러한 생각은 민속에 활용되었다. 팥죽의 축사(逐邪) 기능은 동짓날에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팥죽을 뿌려 악귀를 쫓는 주술행위에서 엿볼 수 있다.

 

어릴 적에 우리 집에서도 팥죽을 대문간에 뿌렸는지 어떠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대부분의 세시풍속은 시간의 중력을 넘지 못한다. 정작 그 핵심을 잃고 형식만 남는 것이다. 시골에는 어떨지 몰라도 도회에 팥죽을 쑤는 집이 얼마나 될까. 축사의 관습도 세월의 무게에 이미 묻혀 버린 지 오래인 듯하다.

 

궁중에서는 원단(元旦)과 함께 으뜸 되는 축일로 여겨 동짓날 군신이 모여 잔치를 하는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다. 해마다 중국에 예물을 갖추어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하여 이날을 축하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나라에선 달력을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친다. 나라에서는 이 책에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달력은 황장력(黃粧曆), 청장력(靑粧曆), 백장력(白粧曆)의 구분이 있고, 관원들은 이를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것을 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다. 이조(吏曹)에서는 지방 수령들에게 표지가 파란 청장력을 선사하였다.”

 

달력의 효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농경사회였던 옛날에는 24절기 등 때에 맞추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달력이 요긴하였다. 구제금융 시기를 지나며 급감했지만, 동지 무렵 세밑이 다가오면 새해 달력을 주고받는 풍속은 이어지고 있다.

 

동지 때에는 동지하례(冬至賀禮)를 행하며 버선을 선물하는데, 이를 동지헌말(冬至獻襪 : 동지에 버선을 바친다)이라고 한다. 또 종묘에 청어(靑魚)를 천신하는데 경사대부(卿士大夫)의 집에서도 이를 행하였다고 한다.

▲ 2019년 동짓날,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주지 스님이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내로 들어서는 불자들에게 `동지헌말'을 드리고 있다.
▲ 2012년 동지엔 구미에 폭설이 내렸다. 학교 운동장에 나무와 승용차들 위로 눈이 소담스럽게 쌓였다.

별 추위 없이 동지를 맞는다. 아직 눈다운 눈도 오지 않았고, 한파라고 할 만한 추위도 없었다. 동짓날 눈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드는 것은 보리다.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면 갓 자란 보리를 덮어 주어 얼어 죽거나 말라 죽지 않게 되어 보리농사가 잘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푸짐하게 내린 눈은 목마른 대지를 흠뻑 적셔 주기도 하니 말이다.

 

이제 2019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쨌거나 곧 해가 바뀌는 것이다. 겨울 절기로 이제 남은 것은 소한(2020.1.6.)과 대한(2020.1.20.)뿐이다. 설날이 내년 1월 24일이고, 새로운 해 봄의 첫 절기인 입춘은 2월 6일이다.

 

새해에 대한 기대 따위는 그만두더라도 동짓날, 태양의 부활을 의미하는 첫눈이라도 소담스럽게 내리면 어떨까 하는 객쩍은 생각을 하면서 2019년 동지를 맞는다.

 

 

2019. 12. 21. 낮달

 

* 겨울 절기인 소한과 대한부터 시작한 24절기 이야기는 이제 끝이다. 물론 이 글과 무관하게 절기는 계속되고 또 새로운 봄의 절기가 이어질 것이다. 허술한 글이었지만, 그걸 쓰느라 나름대로 공부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서(序)]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겨울 절기

입동(立冬), 겨울의 ‘문턱’을 넘으며

소설(小雪), ‘홑바지’가 ‘솜바지’로 바뀌는 ‘작은 눈’

대설(大雪), 눈이 없어도 겨울은 깊어가고

소한(小寒), 추위보다 미세먼지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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