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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각과 삶, 혹은 추억

미나리, 미나리강회, 그리고 봄

by 낮달2018 2019.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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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봄의 향기, 미니리강회가 밥상에 올랐다

▲ 우리 집 미나리강회. 미나리만 쓴다.

공연히 어느 날, 아내에게 그랬다. 요새 시장에 미나리가 나오나? 그럼, 요즘 철이지, 아마? 왜 먹고 싶어요? 그러고는 나는 미나리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제 아침 밥상에 미나리강회가 올랐다. 서둘러 교회에 가야 하는 일요일 아침이라 좀 약식이긴 했다. 그러나 입안에서 퍼지는 그 향은 예전 그대로다.

 

아침상에 오른 미나리강회

 

인터넷에서 미나리를 검색했더니 한 지방 신문의 미나리 수확 기사가 뜬다.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이란다. 미나리꽝에서 농민들이 얼음을 깨고 미나리를 수확하고 있는데 정작 그게 미나리꽝인지 어떤지는 금방 짚이지 않는다. 얼음에 덮인 논에 비치는 것은 웬 붉은 빛이 도는 나뭇잎 같은 것일 뿐이다.

▲ 미나리꽝에서 미나리를 수확하고 있는 전남 나주시 노안면 학산리의 농민들 ⓒ 남도일보

미나리를 심는 논미나리꽝이라고 한다. 이중모음을 꺼리는 경상도식 발음으로는 미나리깡이다. 하필이면 일까. ‘땅이 걸고 물이 많이 괴는 곳이라는 입지와 ‘-이라는 이름은 어떤 관계로 맺어진 것일까.

 

미나리는 부산과 전주, 나주와 순천 등지에서 주로 재배된다. 경북에서는 청도의 한재 미나리가 유명하다. 부산에는 예부터 미나리꽝이 많았던가. 고은이 쓴 <1950년대>에 피난 시절, 어느 시인이 만취하여 귀가하다가 미나리꽝을 풀밭으로 착각해 그 얼음판 위에서 잠이 들었다는 일화가 나오니 말이다.

 

 

미나리는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하고 있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대만·일본·자바·인도 및 아시아 대륙에 걸쳐 분포되고 있고 중국에서는 기원전 하··주 시대부터 미나리가 성했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사> 열전에 근전(芹田, 미나리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 때부터 식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미나리는 독특한 풍미가 있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비타민이 풍부하고 칼슘 등 무기질이 많은 알칼리성 식품인 미나리는 주로 채소로 이용하나 해열·혈압강하 등 약용효과도 있어 민간약으로도 쓰인다. 대개 삶거나 데쳐 나물로 무쳐 먹으며, 생미나리는 김치 등에 넣어 특유의 향미와 시원한 맛을 낸다.

 

고려 때부터 식용해 온 독특한 풍미의 미나리

대체로 나는 향에 좀 민감한 편이다. 아직 가죽(가중)이나 쑥갓 향도 좀 부담스러워하는 수준이다. 후추와 계피, 초피 등을 아예 멀리한다. 당연히 향이 짙은 중국 술도 잘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미나리의 향은 은근하고 소박해서 내 비위를 건드리지 않아서 좋다.

  

미나리 생채는 미나리 향을 가장 짙게 풍기는 조리법인 듯하다. 고춧가루를 넣어서 무치니 매울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씹히는 맛과 더불어 퍼지는 신선한 향취는 특별하다. 생미나리를 넣는 것은 역시 이른 봄에 얇고 조그맣게 썬 무, 당근과 함께 담그는 물김치에서 단연 으뜸이다.

 

당근이나 무도 그 맛이 담백한 편이라 하겠다. 거기에다 시원한 국물에 연록 빛으로 뜬 생미나리는 전체의 향을 아울러주는 역할을 한다. 그뿐인가, 시각적으로도 미나리의 푸른빛은 신선한 봄을 환기해 주는 데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니 그건 이른바 화룡점정인 셈이다.

▲ 미니라는 무쳐서 먹기도 한다. 어떻게 조리하든 미나리 고유의 풍미는 남는다.

원래 술안주나 반찬으로 많이 먹는 미나리강회는 잘게 썬 편육이나 돼지고기에 실고추·지단·잣 등을 얹어서 데친 미나리 줄기로 감아서 만드는 것이다. 주재료는 미나리라기보다 고기다. 미나리는 그 음식 전체를 매듭짓는 구실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먹는 미나리강회는 주재료가 미나리다. 미나리와 초고추장만으로 충분한 요리다. 삶은 미나리를 여러 번 겹쳐서 마지막에는 흐트러지지 않게 묶어 매듭을 지은 것이다. 비록 삶기는 했지만, 미나리는 그 시원한 맛을 전혀 잃지 않는다.

▲ 논이나 개천 등의 습지에 저절로 나는 미나리인 돌미나리 맛도 좋다.

초고추장에 찍어 미나리강회를 먹는 기분을 각별하다. 나는 음식을 오래 입안에서 머금어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미나리강회는 하나를 먹어도 얼마간은 입안에서 씹어야 하니 자연 그 맛을 음미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꽈리처럼 오도독오도독 씹힌다. 그 씹히는 소리가 주는 청량감도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입안에 퍼지는 향취를 즐기는 것도 가외의 기쁨을 주는 것이다.

 

미나리강회로 맞이하는 봄

 

미나리강회를 먹으면서 문득 봄을 생각한다. 내일모레가 입춘이니 봄을 기다린다는 걸 섣부른 조바심만은 아니다. 벌써 매스컴은 슬슬 저 멀리 다가오는 봄을 앞당겨 보도하기 시작하고 있다.

 

중순께 종업식을 하면 아이들은 3학년으로 진급하니 우리는 작별이다. 시간을 기다리면서 유독 올해는 생각이 많아졌다. 갑자기, 올해는 어떻게 아이들 앞에 설까, 어떻게 아이들 앞에 자신을 매겨야 할까……. 공연히 그런 객쩍은 생각을 하면서 2월을 맞는다.

 

 

2009. 2. 2. 낮달


 

▲ 불판에 삼겹살을 굽다가 한재미나리를 넣으면 한결 향이 좋다고 한다.

 어저께 가족들과 함께 이른바 가성비가 최고인 고깃집에 들렀다. 돼지갈비를 구우면서 한재 미나리를 한 접시 시켜 쌈을 곁들여 먹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지역에서는 2월이 되면 한재 미나리를 곁들인 삼겹살이 유행이다.  

 

'한재 미나리'는 경북 청도군 초현리와 음지, 평양 1·2, 상리 일대에서 생산된 미나리를 통틀어 가리키는 이름이다. 여기서 난 미나리는 한재 미나리라는 이름으로 따로 부를 만큼 품질이 좋다. 일반 미나리보다 줄기가 꽉 차게 여물고 향도 짙어서 값도 곱절이라고 한다.

 

 이른바 음식 궁합이란 각각은 평범하지만 한데 뭉쳐 먹으면 맛·영양소가 좋아지는 음식을 이른다. 초고추장에 찍어 마늘이나 쪽파와 곁들여 생미역이나 김에 싸 먹는 경상도의 과메기, 삭힌 홍어를 삶은 돼지고기, 김치와 함께 먹는, 전라도의 삼합 요리 같은 것 말이다.

 

 대구지역에는 근년에 치맥이라 하여 통닭구이(치킨)와 맥주의 조합이 축제로까지 발전했다. 한재 미나리 삼겹살도 축제가 되어 출하 시기가 되면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미나리와 삼겹살의 음식 궁합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기에 곁들인 미나리는 새삼 잊고  있었던 봄의 미각을 되살려 주었다.

 

 

2019.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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