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 어근’에 ‘한자어’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
얼마 전 <오마이뉴스>의 서평 기사에 ‘심심파적’이란 낱말을 썼다. 송고할 때는 분명 그렇게 썼는데, 편집하면서 실수로 빠졌는가, 기사에는 ‘심심파’로 나왔다.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려다가 말았다. 아는 사람은 바르게 고쳐서 읽겠지 하고서.
‘심심파적’에서 ‘심심-’은 형용사 ‘심심하다’의 어근(語根)이다. ‘-파적(破寂)’은 말 그대로 ‘고요를 깨뜨림’이란 뜻이니 이는 곧 ‘심심풀이’란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순우리말 어근에다 한자어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인 셈이다. 언제쯤 이 말이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용례에도 김원우의 소설(1986)과 이희승의 회고록(1996)을 인용하고 있으니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하다.
기본적으로 ‘새말[신어(新語)]’은 새로운 개념과 대상의 등장에 따라 대개 합성과 파생에 따라 이루어진다. 굳이 그런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닐 터이나 대체로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우리말은 우리말끼리 서로 어울려서 새말이 만들어지는 듯하다.
그런데 가끔 이처럼 우리말과 한자어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낱말에 사자성어 형식이 더러 있다. ‘불여튼튼’도 그런 경우다. ‘-튼튼’은 볼 것 없이 형용사 ‘튼튼하다’의 어근이고, ‘불여(不如)-’는 ‘같지 않다’는 뜻이니 ‘불여튼튼’의 뜻을 새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관용구로 쓰이는 ‘도로아미타불’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민간에서는 흔히 쓰는 말이다. ‘도로’라는 부사를 ‘나무아미타불’의 ‘나무’ 대신에 써서 ‘중이 평생을 두고 아미타불을 외우지만 아무 효과도 없다는 뜻으로, 고생만 하고 아무 소득이 없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지 않은 이유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자성어 중에는 정작 사람들이 잘못 써서 우리말에 한자어가 섞인 것처럼 알고 있는 이도 있다. ‘야밤도주’나 ‘홀홀단신’이 그것이다. 이들 낱말은 본디 ‘야반도주’, ‘혈혈단신’이었는데 소리가 잘못 전해지면서 ‘야밤-’과 ‘홀홀-’로 잘못 쓰이게 된 것이다.
새말을 만들어 내는 것은 민중들의 삶에서 우러난 언어 감각일 터이다. 젊은이들이 만들어 낸 ‘새내기’라는 말은 아무런 정치적 지원도 없이 국어사전에 올라갔다. 인터체인지(interchange)를 대체하고 있는 ‘나들목’도, 오프너(opener)를 대신한 ‘따개’도 마찬가지다. 아쉬운 것은 ‘긁개’는 사전에 올랐는데, 이른바 ‘효녀(자)손’을 대체할 ‘등긁개’는 아직 오르지 못한 점이다. <국립국어원 누리집 표준국어대사전 기준>
생각만큼 왕성하지는 않지만, 새말은 언중들의 생활과 언어 감각이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이 새말들은 우리말의 목록을 두터이 하면서 낱말의 뜻을 더하고 넓히는 구실로 우리말 발전을 돕는다. 말의 주인이 민중들임을 여기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2008. 10. 1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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