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영어의 ‘이종교배’
십여 년 전 일이다. 휴대전화를 새로 바꾸었는데 이 물건이 좀 얇고 날씬한 놈이었다. 이를 본 젊은 여교사가 탄성을 질렀다. “야, 슬림(slim)하다!” 언젠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았는데 이발을 끝낸 미용사가 내게 정중하게 물었다. “샴푸(shampoo)하실래요?” 나는 접미사 ‘-하다’를 영어와 그렇게 붙여 써도 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된 느낌이었다.
우리말 ‘조어법(造語法)’(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법)의 큰 줄기는 파생법과 합성법이다. 단어를 형성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중심 부분을 ‘어근(語根)’이라 하는데 이 어근에다 접사(어근에 붙어 그 뜻을 제한하는 주변 부분)를 붙여서 만드는 게 파생어니, 파생법은 이 파생어를 만드는 방법이다. 어근에다 새로운 어근을 더해 만드는 낱말이 합성어고 이 합성어를 만드는 방법이 곧 합성법이다.
파생어를 만드는 파생법은 매우 생산적인 조어법이다. 파생법에서 쓰이는 접사는 두 종류다. 어근 앞에다 붙이는 접두사와 어근 뒤에다 붙이는 접미사가 그것이다. 표의 파생어 용례에서 ‘빨간 글씨’가 접사다. 접두사는 주로 ‘어근의 뜻을 제한’하는 구실을 하고, 접미사는 품사를 바꾸는 구실까지 수행한다.
가장 왕성한 생산성, 접미사 ‘-하다’
접미사 가운데 ‘-이’나 ‘-음’은 ‘죽음, 믿음, 길이, 먹이……’처럼 주로 명사를 만들어 주며, ‘-하다’는 ‘공부하다, 침착하다……’에서처럼 명사를 동사나 형용사로 바꾸는 구실을 한다. 접미사 가운데 가장 생산성이 높은 게 이 ‘-하다’다.
명사 가운데 접사 ‘-하다’를 붙여서 동사나 형용사로 바뀌지 않는 게 드물 정도다. ‘사랑하다, 참여하다, 기립하다, 수출하다’ 같은 동사는 물론이고, ‘명랑하다, 황홀하다, 정직하다’와 같은 형용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맨 앞에서 지적한 낱말들은 이 왕성한 생산성의 접미사 ‘-하다’가 ‘이종교배’한 사례라고 해도 좋겠다. 영자와 결합한 접미사 ‘-하다’는 나날이 늘어가는 추세다. ‘드라이(dry)하다’, ‘패스(pass)하다’, ‘데이트(date)하다’는 이미 국어사전에 올랐다. 하긴 한자어에 ‘-하다’가 붙은 낱말도 어차피 옛 시절에는 ‘이종교배’였을 터이니 그리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국어사에서 한자가 차지하는 위상과 영어의 그것을 동렬에 둘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 일상생활에서 영어가 우리말을 누르고 주류 언어로 대접받고 있는 게 현실이라 하더라도 영어가 외국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가 일상생활에서 별 저항 없이 쓰이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말속에 영어를 섞어서 쓰는 일은 이제 다반사가 되었다. 특히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이들이 그걸 선도(?)하는 듯하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학자나 전문가들이 특정 낱말을 쓸 때 영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실상은 훨씬 심각한 모양이다.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는 아이에게 들으니 전공 수업 시간에 교수들이 영어를 섞어서 강의하는 것은 아이들 말로 ‘토 나올’ 정도라 한다. 전문 영역을 다루다 보면 대체된 우리말의 뉘앙스만으론 설명이 어려운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좀 지나친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접미사 ‘-하다’의 '이종교배'
이런 상황이 악화하면 사람들은 교포 2·3세처럼 영어 단어에다 우리말 토씨를 붙이는 지경까지 이를지도 모른다. 결국, 시나브로 우리말 속에 녹아든 영어와 영어식의 낱말 개념이 접미사 ‘-하다’의 이종교배를 낳은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우리 일상생활에 들어와 자연스레 ‘-하다’와 붙은 영어는 적지 않다. 얼핏 떠오르는 것만 적어도 표와 같다. 글쎄, 대부분의 낱말은 우리말로 바꾸는 데 별 지장이 없는데 어떤 낱말은 다소 모호한 구석이 있다. 그런 낱말은 ‘고친 말’ 난을 비워 두었다.
우리말로 대체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것은 굳이 그걸 영어와 섞어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주 쉽게 영어를 섞어서 쓰는 데 어떤 자의식도 갖지 않게 된 것 같다. 요즘 ‘up시키다’, ‘down되다’ 따위의 말을 천연덕스럽게 쓰는 이들이 한둘인가 말이다.
영어와 접미사 ‘-하다’의 결합을 자연스러운 국어의 변천 과정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긍정적으로 보면 국어의 의미 범주가 확대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 측면, 영어가 우리말 낱말의 영역까지도 침범한 것으로 보는 게 훨씬 타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2010. 8.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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