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사드 철회 기지공사 중단 제10차 범국민 평화 행동
태풍 링링 탓에, 지난 9월 7일에 열리려다 연기되었던 '사드 철회 기지공사 중단 제10차 범국민 평화행동'이 10월의 첫 토요일에 열린다는 소식을 나는 퇴직 동료로부터 전해 들었다. 이어 소성리 종합상황실의 단체 카톡으로 보도 협조 요청을 받았다.
2016년 사드 문제로 첫 촛불이 켜질 때부터 나는 드문드문 집회 현장을 찾아 몇 편의 기사를 쓰고, 블로그에 그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기자로서가 아니라, 사드 문제에 관한 그들의 의견을 공감하는 시민으로서 지지와 응원을 드러낸 것이었다.
소성리와 김천 시민들의 사드 철회 운동은 경이롭다
소성리 주민은 물론이거니와 김천 시민들이 지켜온 촛불에 관해서 나는 '경이롭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제 더는 사람들은 사드 문제에 관해서 관심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언론도 큼지막한 사건·사고가 아니면 굳이 집회 현장을 찾아 상황을 살펴보지도 않는다. 그렇게 성주 소성리와 김천의 사드는 시나브로 잊히어 가고 있다.
권력 교체기였던 초기에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함께 문제는 어떻든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7년 9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ICBM 미사일 실험에 대항해 '한반도에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조치'라고 말하며 사드 추가배치를 강행하면서 기대는 잦아들었다.
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성주와 김천 시민들을 비롯하여 사드 배치를 반대한 전국의 '평화 시민'들은 사드의 추가배치가 어떤 변화도 가져온 바 없는데, 왜 그것이 '최선의 조치'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임시 배치에 그치지 않고 사드의 완전 배치를 위한 절차가 진행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사드 추가배치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은 정부를 향해 성주와 김천의 시민들은 한결같이 '사드 배치 철회'와 '기지공사 중단'을 외치며 2년이 넘게 달려왔다. 그것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MD)체제의 핵심인 사드의 완전배치를 결연히 막아온 시간이었다.
현재, 미국의 압박은 날이 갈수록 드세어지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지소미아 종료 철회, 유엔사를 통한 전작권 환수 무력화 시도 등 대한민국의 자주권을 훼손하는 일들이 거듭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무력하기만 하여, 사드를 완전히 배치하고자 10월 말에서 11월 초 공사 장비를 들여놓으려 준비 중이라는 게 소성리 종합상황실의 설명이다.
사드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여러 가지 국내외 상황과 문제에 가려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산골 마을 성주 소성리는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채 마을을 지키고 있으며 김천 시민들은 680일 동안 꺼뜨리지 않고 매일 이어온 촛불을 주 2회로 바꾸어야 했다. (관련 기사 : '사드 반대' 다 끝난 거 아니냐고요? 김천은 아직 '촛불'입니다)
잊히고 있는 ‘반 사드’의 촛불
국외자에게도 잘 보이지 않는 촛불이 당사자들에게서야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도 김천역 평화광장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촛불을 밝혀냈다. 인원이 조금 적거나 많은 차이일 뿐이지, 촛불을 밝히는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촛불 시민들은 정세를 전망하고 앞날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하며, 운동 자체에 의미를 두는 직업 운동가가 아니다. 지금껏 촛불을 지켜온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평범한 농민이고 회사원이고, 자영업자이며 주부일 뿐이다. 그들이 밝혀온 촛불이기에 나는 그것을 '경이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드 철회 기지공사 중단 제10차 범국민 평화행동'은 소성리와 김천 시민, 원불교 대책위와 지역과 전국 단위 조직 등이 구성한 '사드 철회 평화회의' 주최로 오후 3시부터 김천역 평화광장에서 열렸다. 30분쯤 일찍 도착하니 모인 사람이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는데, 집회가 시작되면서 600~700명이 광장을 가득 채웠다.
늘 그랬듯 사람 수와 관계없이 집회는 아주 낙천적으로 진행되었다. 같은 날 서울에서 열리는 사법 적폐 청산 검찰개혁 촛불문화제로 빠진 인원만큼, 인근 김천 혁신도시의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톨게이트 희망 버스' 문화제에 가기 전에 들른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자리를 빛내 주었다.
구미에서 싸우고 있는 아사히글라스 노조와 영남대병원 노조의 지역 연대 투쟁 보고로 시작된 집회는 김천 율동 맘의 율동과 지민주·연영석 가수의 공연 등을 중간에 배치하면서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민주노총 엄미경 통일위원장 등의 투쟁 발언에 이은 김천 시민들이 무대에 나아가 '우리 승리하리라'를 불렀는데, 그 울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문재인 정부는 정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이룩할 의지가 있는 것인가?"를 물으며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라는 2년 전 약속을 이행하라! 기지공사 중단과 사드 철회를 선언하라!"는 요구를 담은 결의문을 낭독했다.
집회는 참가자들이 대형 펼침막을 머리 위에 넘기며 펼치는 퍼포먼스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빨강, 파랑, 노랑 펼침막에는 3년여를 싸워온 소성리와 김천 사람들의 요구와 기원이 담겨 있었다.
“평화 정세 역행하는 불법 사드 철거하라!”
“안보 핑계 대지 말고 불법 사드 당장 빼라!”
“사드 기지공사 중단! 사드 빼! 미군 빼!”
승패와 무관하게 이어가야 할 싸움
나는 집회 중 40대 후반의 한 여성 참가자와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데 ① 언제까지 갈 거냐, ② 그러는 이유는 뭐냐고 물었는데 그는 뜻밖에 시원시원 '김천이 뒤집힐 때까지'라고 답을 해 주었다.
“글쎄요, 대학 때부터 익숙해져 있는 일이라서요. 목표는 수정할 수도 있지만, 이건 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문제고요. 또 무엇보다 옳은 일이니까, 승패와 상관없이 가야지요.”
나는 집회가 끝나고 어수선할 때, 동료에게 부탁하여 몇 사람의 의견을 더 들을 수 있었다. 마침,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70대 농소면 어머니들 네 분이 답을 해 주었다.
① 아이고 내일이라도 당장 빠지면 당장 그만둬야지. 오늘 밤이라도 빠지면 좋겠어. 너무 좋겠어. 안 빠지면 어떻게 해? 녹슬게 만들어야지.
② 평화롭기 위해서. 후손들을 위해서. 우리야 인생 다 살았지만. 사드 빼려고. (성당 나가는 70대 “난 사드랑 친해여. 여 와서 안젤라 씨를 만나고 했잖아. 그래서 와여. 난 여 와서 하느님 믿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만들려 해”)
60대 농소면 어머니는 “나는 오늘 밤이라도 빠졌으면 좋겠어. 갈 때까지 해야지”라고 답했고, 모두가 사드 뺄 때까지 가겠다고 했다. 왜냐는 물음에는 “우리의 미래가 달려서”(50대 후반 농소면 어머니)라거나 “주권자의 ‘의무’ 아닌 당연한 권리”(60대 농민)라고 답했다.
앞이 보이지 않거나 가망 없는 일에 인간은 아무것도 걸지 않는다. 그게 인간의 이성이 지닌 합리성이다. 최소한 불투명한 미래에 섣불리 노력과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소성리 주민들과 김천 시민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신념과 추구하는 가치가 그 알량한 합리성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지 논리가 정연할 뿐이지, 소성리와 김천의 촛불을 이끄는 이들의 뜻도 이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역사는, 그 진보는 불가능한 미래를 위해 현실의 고통과 핍박을 선택했던 이들 덕분에 새로 써져 온 게 아닌가.
“그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
영화 <암살>에서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이 "조선군 사령관과 강인국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나?"하고 묻자 독립군 전사 안옥윤(전지현 분)은 이렇게 대답한다.
“모르지. 그렇지만 알려주어야지.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고…….”
꺼뜨리지 않고 촛불을 이어오고, '범국민 평화 행동' 같은 집회에 힘을 모은다고 해서 당장 사드가 빠지지 않는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문제가 해결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승패와 관계 없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그들은 물론, 우리도 알고 있다.
2019년 현재, 성주 소성리 주민과 김천 시민들은 단순한 이해를 넘어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 승패와 무관하게 그들의 투쟁이 빛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2019. 10.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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