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길목에서 만난 앙리 미쇼
뜬금없이 왜 앙리 미쇼를 떠올렸을까. 십대 후반에서 20대로 넘어가는 길목이었을 것이다. 어떤 책에 실린 그의 어록을 베껴서 습작 노트에 기록한 것은.
그러나 나는 그를 알지 못했다. 이름에서 드러나는바, 그가 프랑스인일 것으로 생각한 듯한데 이도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마땅히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를 잊어버렸다.
90년대 초반까지 지니고 있었던 습작 노트를 정리하면서 나는 그 안의 내용물을 ‘옛날의 금잔디’라는 제목의 한글 문서 파일로 만들어 보관했다. 어저께 우연히 그걸 기억해내고 그 문서를 찾는데 적잖이 시간이 걸렸다. 쇠락해 가는 내 기억력은 그 문서의 제목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쎄, ‘굴복하여라, 내 가슴아’로 시작하는 예의 글귀가 어디에 어떻게 쓰인 글인지는 알 수 없다. 겉멋에 빠져 있을 때인지라 그 문구가 썩 멋있어 보였다. 나는 그걸 어딘가에 옮겨 적었다가 습작 노트에다 정서해 두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확인한 앙리 미쇼(Henri Michaux, 1899~1984)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화가다. 클럽 프랑스에 따르면 “자기의 무의식 속을 파고 들어가 존재의 실태와 존재 이유를 찾기도 하고 악의에 찬 세계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고뇌와 무력을 독특한 풍자와 유머로 나타”낸 이다.
벨기에에서 태어나 브뤼셀에서 성장하였고 1955년에 프랑스 국적을 얻은 미쇼는 1924년부터 파리에 정착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특히 시인 로트레아몽과 J.쉬페르비엘에게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27년 자아의 분열을 다룬 시집 <지난날의 나>를 발표하고 계속하여 자신에 대한 과학적·의학적 관찰 보고서인 <나의 속성>,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박해받는 인물을 풍자적으로 그린 <플륌이라는 자>, 그리고 꿈과 환각, 충동을 조사, 보고한 <밤은 움직인다> 등의 시집을 내어 시선을 끌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남프랑스로 피난해 거기서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1869~1951)를 만나게 된다. 지드는 미쇼의 내면적 시가 갖는 현대적 뜻과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앙리 미쇼를 발견하자!”라는 강연을 하여 그의 이름을 높였다.
미쇼는 30년대부터 아무에게서도 배우지 않은 자기류의 그림을 그려 발표해왔는데 이 특이한 그림들은 화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그림은 회화라기보다는 현미경 아래 보는 박테리아의 표본이나 X선 사진과 같이 기이하고 독특한 것이었다. 그러나 화가로서 그는 매년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그때마다 주목을 받으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시인으로 미쇼는 <시련, 푸닥거리>, <유령> 등의 환상적인 시집과 <다른 곳에>라는 가공적이며 상상적인 3부작 기행 문집들을 펴냈다. 한편 그는 1955년경부터는 마약 메스칼린을 먹어 그 환각과 취기를 이용하여 인간의 심층 내부를 탐색하려고 했다.
그는 약의 힘을 빌려 인간의 모든 감각, 꿈, 인상, 이미지, 무의식을 알고 느끼고 경험하려고 했다. 그리고 직접 느끼고 본 것을 시와 그림으로 옮겼다. 그만큼 인간의 내면세계를 철저하게 탐험·실험하려 한 작가는 일찍이 없었다. 약 15년에 걸친 실험에서 그는 ‘비참한 기적’, ‘소란스러운 무한’, ‘구렁에서 얻은 지식’, ‘정신의 큰 시련’ 등의 작품을 얻었다.
앙리 미쇼는 신비주의와 광기(狂氣)와의 교차점에 서는 독자적인 시적 경지를 개척하여 현대 프랑스 시의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주요 저서로 <내면의 공간:L’Espace du dedans>(1944) <시련, 악귀 쫓기>(1945) <주름 속의 삶:La Vie dans les plis>(1950) <비참한 기적>(1955) <부산한 무한(無限):L’infini turbulent>(1957) 등이 있다.
1965년에 파리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그의 총 작품 전시회를 개최하여 그의 예술에 대한 경의를 표하였다. 같은 해 국가 문학 대상 수상자로 추대되었으나 그는 이를 사절하였다. 그는 시인으로서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으며 1940년대 이후의 젊은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국내에 앙리 미쇼 관련 도서는 1985년 열음사에서 펴낸 <앙리 미쇼>가 절판되면서 더는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글에서 만난 다음 글귀는, 세계와 진실로 믿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저항을 멈추지 않았던 시인 앙리 미쇼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나는 진실이었던 것이 더는 진실이 아닌 것이 되도록 하려고 글을 쓴다.”
“시는 언어를 향한 일제사격이다.”
스무 살을 향해 달려가던 소년기에 만났던 글귀를 40년이 넉넉히 흐른 오늘, 떠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지금 내겐 굴복시켜야 할 ‘가슴’ 따윈 없다. 그러나 나머지 기술들은 어쩐지 마음에 감겨오는 내용이다.
실컷 싸웠고, 비겁하지도 않았다. 무엇을 성취했느냐고 물으면 곤혹스럽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은 된다. ‘인생이 멈췄으면 좋겠다.’도 딱히 다르지만은 않은, 요즘 내 마음의 풍경에 가깝다.
40여 년 전에 만났던 시인의 어록과 함께 내 불안했던 열정과 절망이 교차하던 젊음의 한 시절을 되돌아본다.
2015. 10.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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