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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성공은 그만두지 않음에 있다’

by 낮달2018 2018.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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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무술년 ‘올해의 사자성어’

▲ 2018년 교수신문 선정 사자성어 '임중도원(任重道遠)' 휘호. 김병기 전북대 교수

<교수신문>이 선정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 기사가 신문마다 실리는 걸 보면 세밑이 가까워졌다. 한 해의 간단하지 않은 곡절을 네 글자의 한자 말로 줄이는 이 기획의 역사는 꽤 오래된 듯하다. 복잡다단한 일 년간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네 자로 줄이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올해의 사자성어’가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 성어가 감추고 있는 함의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교수신문이 진행한 2018, 무술년 ‘올해의 사자성어’ 설문 조사 결과로 ‘임중도원(任重道遠)’이 선정됐다. 설문 조사에 참여한 전국 대학교수 878명 중 341명(38.8%)이 선택한 이 사자성어의 출전은 『논어』,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관련 기사 : 2018년 올해의 사자성어 ‘任重道遠(임중도원)’)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언뜻 들으면 매우 암담한 전망처럼 들리지만, 여기 담긴 것은 우리 사회의 여론주도층 인사라고 할 수 있는 대학교수들의 현실 인식이다. 그러나 이른바 ‘촛불 정부’ 2년째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처해 있는 현실을 바라보는 이들의 인식은 현실의 판단에만 머물지 않는 듯하다.

 

‘임중도원’을 추천한 전호근 경희대 교수(철학과)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 구상과 각종 국내정책이 뜻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이 남아 있는데, 굳센 의지로 잘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를 골랐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임중도원’은 대학교수들이 판단한 현실인 동시에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성어인 셈이다.

 

탄탄대로를 탄 듯하다가 멈추고 있는 남북문제, 대통령 국정 지지도를 이른바 ‘데드 크로스’로 접어들게 한 경제 문제, 청와대 특별감찰관 사건으로 드러난 청와대 관리 문제, 통과 전망이 멀어만 보이는 개혁 입법, 선거제 문제 등에 막힌 문재인 정부의 갈 길은 멀 수밖에 없다.

 

‘짐은 무겁고 길은 먼’ 현실 인식에도 불구하고 많은 응답자는 현 정권 개혁을 지지하는 의견을 쏟아냈다고 한다. 물론 정부 여당의 무능과 구태에 경종을 울리는 의견도 빠지지 않았다.

 

“정부의 개혁이 추진되고 있으나 국내외 반대세력이 많고 언론들은 실제의 성과조차 과소평가하며 부작용이나 미진한 점은 과대 포장하니 정부가 해결해야 될 짐이 무겁다.”

“방해하는 기득권 세력은 집요하고 조급한 다수의 몰이해도 있겠지만 개혁 외에 우리의 미래는 없다.”

“임중도원의 경구는 구태의연한 행태를 답습하는 여당과 정부 관료들에게 던지는 바이니 숙지하고 분발하기 바란다.”

 

2위는 고성빈 제주대 교수(정치외교학과)가 추천한 ‘구름만 가득 끼어 있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뜻의‘密雲不雨’(밀운불우)가 차지했다. 고 교수는 추천이유를 “남북정상회담과 적대관계 종결, 북미정상회담과 비핵화 합의, 소득주도성장 등 대단히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지만, 막상 구체적인 열매가 열리지 않고 희망적 전망에만 머물러 있는 아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밀운불우의 뜻은 임중도원과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성공은 그만두지 않음에 있다.”

 

3위는 김선택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가 뽑은‘功在不舍’(공재불사)인데, ‘성공은 그만두지 않음에 있다.’는 투철한 의지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추천이유로 “계속 개혁에 매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행여 정부가 계속 밀어붙이다 보면 효과가 날 것이란 집단 최면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 모두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공재불사는 현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어려워지는 경제의 원인으로 ‘최저임금’, ‘노동시간’ 따위를 부르대면서 소득주도성장을 저격하는 데 골몰하고 있는 보수세력에 밀려 후퇴하고 있는 개혁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 필요한 것은 정책에 대한 확신이고, 그에 따른 개혁의 지속적이고 면밀한 추진이다. 그런 점에서 ‘공재불사’는 야권의 공세에 밀려 후퇴나 거듭하다가 결과적으로 ‘게도 구럭도 잃는’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점을 환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찌 대학교수들뿐이랴. 현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대부분 촛불 시민들의 바람도 다르지 않다. 교수들이 네 번째로 꼽은 성어인 ‘운무청천(雲霧靑天)’,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다”는 그들 시민의 소망이라 해도 무방할 터이다.

 

5위에 오른 ‘좌고우면(左顧右眄)’(“왼쪽을 바라보고 오른쪽을 돌아다 보다”)은 개혁에 대한 저항 앞에 흔들리고 있는 정부 여당에 보내는 경계다. 개혁의 길을 한눈팔지 말고 뚜벅뚜벅 가라는 묵시적 경고다.

 

촛불 혁명을 통해 집권한 현 정부의 성공은 특정 정당이나 권력의 성공을 넘어 이 정권을 탄생케 한 촛불 시민의 소망과 이어져 있다. 시민들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지지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은 그래서 아닌가.

 

교수들이 ‘임중도원’을 뽑은 것은 ‘무거운 짐과 먼 길’ 앞에 지레 주눅 들라는 게 아니다. 다시 들메끈을 고쳐 매고 나아가라는 것이다. 그것이 정권의 성공을 통해서 촛불 혁명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하게 현실 정치를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 앞에 당정이 개혁으로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2018. 12.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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