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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나의 블로그 편력기

by 낮달2018 2019.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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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오블>까지, 그리고 심상한 글쓰기 

  

여성 편력기가 아니라 블로그 편력기라니 재미없는 이야기가 틀림없겠다. ‘여성 편력은 없기도 하거니와 있은들 여기서 그걸 주절대는 것은 백주대로에 길 막아놓고 고함치는 격이니 더 입에 올릴 수도 없는 일이다.

 

오마이뉴스 블로그를 기웃거린 것은 제법 오래되지 않나 싶다. <다음>의 블로그를 닫고 천리안 <애플>에 닻을 내리고 한참 지난 뒤였다. 하루에 여러 번 드나드는 데라서 그 친근감이 이웃집 같았으나 이왕 애플에 집을 지어 놓은 상태여서 시험 삼아 글 몇 개를 올렸다가 지워버렸다.

 

내 첫 블로그는 <다음(daum)>에서 문을 열었다. 약 여덟 달 동안 꾸려오던 블로그 <길위에서>를 지워 버린 것은 지난해 4월 중순께다. 모두 70여 편의 글을 썼는데, 마지막 글이 된 <문을 닫으며>에서 나는 아래와 같이 썼다.

 

무어 어쩌자고 블로그를 연 것은 물론 아니었지요. 결코, 만만할 수 없는 삶의 어떤 장면과 장면에 숨어 있는 편린에 대해서 무엇인가 말하고 싶었을 따름이었습니다. 이름하여 "자유를 위한 글쓰기"였던 셈인데,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아뿔싸, 때론 그게 내 한갓진 자유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침해하고 있더란 말씀입니다. 그게 제가 얻은 '자유의 대가'일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글쓰기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했지만, 그러한 경지에 들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쫓기듯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바보 같다고 느낀 건 최근의 일입니다. 글쓰기가 일종의 ''자기 성찰'의 시간이라면 내 성찰은 미욱한 데다 짓눌려 있었던 셈입니다. 그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낮고 겸허한 눈길'을 배울 수도 있겠지요.

 

어느 글에선가 얼핏 고백한 바 있듯, 성글게 짠 이 '띠집' 때문에 때로 본연의 삶과 그 의무를 게을리하기도 했고, 시답잖은 글 한 편에 따르는 저간의 반응에 일상의 평온과 마음의 평정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되물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위해 쓰는가, 누구에게 던지는 발언인가. 결국, 마땅한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애매하게나마, 이 요령부득의 글쓰기보단, 더 열심히 사는 게 옳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블로그를 허무는 것은 참 간단하다. <내 블로그 지우기>를 한번 클릭하는 거로 내 띠집은 인터넷의 바다에서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석 달. 나는 아주 편안했고, 아무 얽매임 없이 내게 주어진 생활에 기꺼이 복무했다.

 

이웃 블로거들의 집을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진부한 일상을 피해 숨어든 인터넷에 마련한 그 띠집에도 진부한 일상은 어김없이 찾아왔던 듯하다. 그만그만한 사람들끼리 이웃을 만들고 그들끼리 나누는 소담스러운 정리를 나누는 그 21세기형 '관계의 미학'에 심드렁해졌고, 거기 저도 몰래 중독되고 있는 스스로가 싫어졌던 것이다.

 

석 달이면 웬만한 것들은 잊기에 족한 시간이다. 나는 <다음> 시절을 잊어버렸다. 그러다 갈무리해 둔 묵은 글을 어쩌다 일별할 때마다 변명처럼 혼자 중얼대곤 하였다. "어디, 호젓한 공간이라도 있으면 쓸데없는 푸념이라도 끄적대지……."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 <애플>이었다.

 

천리안을 이용하기 시작한 건 94년께니,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다. 애플은 저잣거리처럼 붐비는 <다음>에 비하면 거의 한적한 시골 마을 같다. 초기 화면도 단정했고, 단순했다. 무엇보다도 <쓰기>에 다양한 편집의 즐거움을 주는 여러 장치가 썩 마음에 들었다. 연습 삼아 묵은 글 몇 편을 올리다가 붙박이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애플에서도 묵은 글을 포함, 약 90여 편의 글을 썼다. 그러나 글쓰기의 강박 따위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한적한 데다 드나드는 사람도 손꼽을 정도여서 의식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웠다. 이웃도 부러 만들지 않았다. 그러고 한 반년쯤 지났다.

 

이삿짐을 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어정쩡하게 시작한 ‘오마이뉴스 기사 쓰기’ 때문이었다. 아시다시피 오마이뉴스는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모토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인터넷 언론이다. ‘개나 소(특별히 폄하의 뜻을 둔 말은 아니고 평범하다는 뜻으로 썼다.)나 기자가 될 수 있다’ 보니 나도 거기 이름을 올린 것이다.

 

기사 올리기는 일정한, 그러나 만만찮은 절차를 거치는데(물론 무슨 심사 따위를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거기서 용을 쓰다가 다시 애플에 와서 같은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블로그>는 뉴스의 기사를 <내 블로그 담기>로 고스란히 옮길 수 있었다.

 

그래도 지난 인연이 아련해 얼마간 망설였다. 이삿짐을 꾸리고 작별 인사를 남긴 게 지난 1월 10일이다. 결국, 새집을 꾸민 지 반년 만에 다시 집을 허물게 된 셈이니 병이라고 하면 병이다. 애플을 닫은 건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나서다.

 

<오블>에 와서 편한 점은 민주주의와 변혁, 휴머니즘 등 삶과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엇비슷한 동류들(유유상종이라 하니 말이다.)이 많은 진보적 공간이어서 비슷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한 시대를 공유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오블>로 솔가한 지, 이제 한 달 남짓. 몇 편의 새 글을 써 가며, 짬짬이 <애플>을 채웠던 글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묵은 글이라도 나는 그것에 대한 애착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애심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러 번 우려먹을 만큼 좋은 글은 못 되는데도 그렇다. 때 묻은 딱지를 곱게 펴서 두꺼운 전과책에다 갈무리하던 유년의 버릇인지 모른다.

 

초록 동색의 동류들, 몇과도 사귀었다. 이 부지런하고 명쾌한 감성의 이웃들은 무한대의 에너지를 자랑하며 종횡무진으로 다니는데 정작 나는 그들이 지나간 흔적을 따르며 그 길을 잃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다.

 

오마이뉴스에 내가 올린 기사는 주로 안동 주변의 절집이나 명승을 찾아다닌 여행기·답사기다. 지난 1월 중순에 마친 아내와의 은혼 기념 여행의 이삭들, 오늘 오후 늦게 두 번째 이야기 선암사 답사기를 올렸다. 무슨 대단한 기록도 아니면서 몇 날 며칠을 끙끙대며 글을 짜내는 나는 어쩌면 이 전광석화 인터넷 시대의 지체아인지도 모른다.

 

무슨 사건·사고만이 아니라 여항(閭巷) 갑남을녀의 삶과 사랑과 일도 훌륭한 기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함으로써 오마이뉴스는 새로운 온라인 언론의 모형을 만들어 냈다. 이는 단순한 뉴스 저변의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시민들이 스스로 뉴스 게릴라가 되어 자신이 겪고 느낀 이야기를 다수의 독자를 향해 던지는 것은 그것 자체로 새로운 소통의 양식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생각해. 당신은 어때? 하고 말이다.

 

속보와는 완전히 무관한 답사기 따위를 올리면서 나는 거기다 특별한 가치를 두지 않는다. 기사로의 채택 여부나 조회 수 따위에도 비교적 초연하다. 기사마다 매겨지는 소액의 원고료도 그런가 하고 지나칠 뿐이다. 단지 무언가를 쓰고 그것을 누구 앞엔가 내미는 것으로 나는 만족하고 행복하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심상한 어떤 장면들도 그것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은 듯하다. 그것은 작게는 기억과 시간의 결과물이거나 오롯한 원인이기도 하고, 때로는 시대와 상황의 연속선 위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이었다.

 

나는 내 무심한 글쓰기가 개인적으로 내 삶에 대한 소박한 성찰이면서 동시에 우리네 삶이 무심한 얼굴 뒤에 감추고 있는 진실의 편린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 글에 무어 대단한 메시지 따위가 들어 있다고 믿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한 편의 글을 맺고 났을 때의 만족감은 쉬 설명하기 어렵다. 더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쓸 적의 생생한 긴장이 되살아나는 글을 다시 만날 때의 기쁨과 즐거움은 내 글쓰기의 목적을 새삼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나의 방식으로 추스르고 갈무리하는 나만의 ‘세상 읽기’인 것이다.

 

시답잖은 이야기가 길어졌다. 별다른 곡절이 있는 것도 아닌 내 블로그 편력은 여기까지다. 한 반년쯤 후에 다시 도진 병으로 <오블>의 지게문을 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붙여서 내 한갓진 글쓰기를 거칠게 고백한 셈인데,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읽으면 얼굴을 붉히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나 까짓것, 그게 내 알량한 밑천인 걸 어떡하겠는가.

 

 

2007. 2. 2. 낮달


<오마이뉴스블로그(오블) ‘이 풍진 세상에를 연 게 2006년 12월이다그리고 두 달이웃이 하나둘 늘어날 즈음에 쓴 글이다반년쯤 뒤에 지게문을 닫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저어했지만용하게도 2018년에 <오마이뉴스>에서 블로그 서비스를 종료할 때까지 그 띠집을 건사했다.

 

꽉 찬 11년 동안 운영한 블로그에 쓴 글은 모두 1745편, 조회 수는 천삼백만을 넘겼다. 1745편을 햇수로 나누면 매년 평균 158편, 사실상 이삼일 만에 한 편씩 글을 쓴 셈이다. 그 가운데 200편은 정식 기사로, 800여 편은 블로그 기사로 <오마이뉴스>에 실렸다.

 

오블에선 지난해 11월부터 글쓰기가 종료되었다. 어딘가 이사를 하긴 해야 해서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열고, 첫 글을 쓴 게 10월 23일이었다. 티스토리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에는 그간 새로 쓴 글에 더해 오블에 쓴 글을 다시 실어 모두 74편의 글을 쟁였다.

 

오블에 올린 글 전편은 <오마이뉴스>에서 백업해 주었다. 손쉽게 그 전편을 그대로 가져올 방법은 없거니와 또 그걸 죄다 가져올 까닭도 없다. 그러나 가끔 그 목록을 살펴보다가 새 블로그에 실어도 좋겠다 싶은 글이 있다.

 

그중 시의적절하거나 새로 읽어도 부끄럽지 않은 글은 무시로 올리고 있다. 읽은 이들께는 꼼짝없는 ‘재탕’이지만 글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하는 가욋일이다. ‘다시 읽는 옛글들’이 그렇고 ‘24절기 이야기’와 여러 꼭지가 그렇다. 특별히 ‘역사 공부 오늘’은 ‘재수록’ 꼭지를 붙이고 있다.

 

오블에서 블로그를 시작할 무렵만 해도 겸손한 척했지만, 내 의욕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10년을 넘기면서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아졌다. 하나둘 이웃을 늘리고, 교유하는 일은 언감생심, 조회 수를 확인하는 일조차 좀 심드렁해졌다. (최근에 스킨을 바꾸었더니 굳이 방문통계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조회 수도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까짓것, 상관없다.)

 

옛글을 읽으며 잠깐씩 상념에 잠기는 이유는 그 글이 주는 느낌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자꾸만 과거로 되돌아보게 되는 ‘노화’의 한 ‘증상’일 가능성이 크다. 글을 읽으며 그걸 쓸 때의 상황과 맥락, 감정 따위를 복기하게 되면서 나는 시간과 기억의 갈피들을 살펴보곤 한다.

 

시간은 일상의 집적이되 그 흐름이 일정한 매듭이 지어지면 역사로 이어진다. 우리 세대가 지나온 몇십 년의 시간 가운데 얼마쯤이 내가 끄적인 글 속에 녹아 있을까. 옛글을 새로 읽으면서 나는 우정 이 ‘다시 읽기’가 내 한갓진 개인사를 성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019.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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