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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과 나무 이야기

둘 다 씨를 맺지 못하는 ‘무성화’,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남다르다

by 낮달2018 2024.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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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水菊)과 불두화(佛頭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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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카멜리아 힐의 수국. 제주에는 수국 명소가 여럿이다. ⓒ 비짓제주 (제주관광정보센터)
▲ 절집의 전각을 배경으로 흐드러지게 핀 불두화. 이 꽃은 절집과 잘 어울리는 꽃이다. ⓒ 상주 대원정사

요즘은 흔한 게 장미지만, 우리 세대가 자라던 1960년대에만 해도 장미는 매우 귀한 꽃이었었다. 내가 사진이 아닌 장미꽃을 처음 만난 게 적어도 대처의 중학교에 진학한 다음이었으니 더 말할 게 없다.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힘겹고 고달팠으니 화초 따위에 눈을 돌릴 여유마저도 없는 게 그 시절의 삶이었을 터였다. [관련 글 : 202211, 만추의 장미]

 

해마다 만나는 ‘꽃의 목록’은 두꺼워진다

 

봄이 오면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피는 꽃을 맞이하는데, 해마다 새로 만나는 꽃의 목록이 두꺼워지는 걸 확인하면서 나는 놀라워하곤 한다. 장미는 말할 것도 없고, 모란이나 작약 같은 꽃에 산당화(명자꽃) 같은 꽃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오륙 년 전만 해도 드물게 보이던 분홍낮달맞이꽃은 요즘 곳곳에 군락을 이루며 흐드러졌기 때문이다. [관련 글 : 산당화에서 할미꽃까지, 나의 꽃 삼월]

▲ 수국과 불두화는 서로 비슷하게 닮은 점이 많지만, 분류 등 다른 점도 많다.

올해 유난히 눈에 띈 게 동네 두 군데서 만난 수국이다. 한 어린이집 모퉁이와 원룸 건물 앞 화단에 수국이 피어 있었다. 딸애가 요즘 부쩍 신경 써서 기르는 베란다 화초 가운데도 수국이 두 그루나 있다. 수국은 청보라색, 자색, 분홍색, 흰색, 빨간색 등 여러 빛깔의 꽃을 피우는 데다가 음지에서도 잘 자라고 병충해에도 강해 정원이나 공원에서도 많이 심는 수종이다.

▲ 딸애는 가꾸는 우리 집 베란다의 수국. 잎은 들깨를 닮았고, 꽃이 우아하다.
▲ 우리 동네의 원룸 건물 앞 좁은 화단에 핀 수국. 물을 좋아하는데, 가물어서일까, 꽃이 좀 졸아붙은 느낌이 있다.

수국도 예전에는 흔하지 않은 꽃이었다

 

▲ 들깨 잎을 닮은 수국의 잎사귀

수국은 범의귓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우리 옛 문헌에는 ‘자양화(紫陽花)’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꽃이다. 자양화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어떤 절간에서 수국을 처음 보고 쓴 시에서 붙여준 이름으로 ‘보랏빛 태양의 꽃’이란 뜻이다. 중국에선 수구화(繡毬花)라고 부르는데, 시기는 잘 알 수 없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꽃임은 틀림없다.

 

수국은 물을 좋아하여, 수국의 ‘수’는 ‘물 수(水)’ 자다. 6~7월 무렵 가지 끝에서 청보라, 자주, 분홍, 하양, 빨강의 꽃을 피운다. 꽃은 처음에 흰색으로 피기 시작하지만, 점차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 색을 더하여 나중에 보라색으로 변한다.


이는 토양에 따른 것으로 알칼리 성분이 강하면 분홍빛이 강하고, 산성이 강하면 남색이 되는데, 이는 수국에 있는 안토시아닌 성분과 토양 속의 알루미늄 이온이 조화를 부린 것이다. 그러므로 꽃의 색깔을 바꾸려면 땅의 성질을 바꾸어야 한다. 빛깔이 다양하여 조경식물로 선호되지만, 수국은 꽃의 암술과 수술이 퇴화하였거나 불완전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고 생식능력이 없는 꽃, 즉 무성화(無性花 중성화)다.

▲ 제주 김녕리 수국길의 수국과 풍력 발전기. ⓒ 비짓 제주 (제주관광정보센터)
▲ 제주도 브롬왈의 수국길. 연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비짓 제주(제주관광정보센터)

그러나 수국은 씨를 맺지 못하는 무성화다

 

수국의 향기를 모티브로 한 방향제와 향수 등 다양한 아이템이 판매되지만, 실제로 일반적인 수국은 무성화(無性花)여서 향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수국은 암술이 없는 무성화이자 헛꽃이므로 당연히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산수국과 탐라수국은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6월이면 전국의 수국 명소에서 수국축제가 베풀어지는데, 육지에서는 공주 유구색동수국정원, 진주 월아산 숲속의 진주, 해남 포레스트 수목원, 거제 저구마을 등이 유명하다. 제주도에서는 카멜리아힐과 한림공원, 산방산과 김녕리의 수국길 등 수국 명소가 여러 군데다.

 

딸애가 가꾸는 베란다의 수국을 보면서 수국의 생김새가 꽤 정교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동네의 수국은 가물어서 그런지, 좀 풍성하다는 느낌보다는 졸아붙은 느낌을 주었다. 역시 수국은 드넓은 지역에 군락을 이루어 흐드러진 꽃 으로 풍성할 때 진가를 드러내는 것 같다.

▲ 우리 동네 이면 도로변 어떤 집 대문간에 피어난 불두화.
▲ 지난해 경복궁에 갔을 때 국립민속박물관 앞에서 만난 불두화. 만개한 꽃송이들이 풍성하다.

수국과 닮은 불두화도 무성화다

 

▲ 불두화의 세 갈래로 나눠지는 잎사귀

운동 가는 길목에 있는 목조 카페의 담장에 핀 꽃도 수국이라고 생각하고 무심히 지났었는데, 나중에 그게 불두화임을 알았다. 분류는 다르지만, 일단 외형에서 두 꽃은 꽤 많이 닮았다. 두 꽃을 가르는 가장 확실한 차이는 잎의 모양이다. 수국의 잎은 깻잎과 닮았고, 불두화는 세 갈래로 나눠지는 잎이다.

 

불두화(佛頭花)는 꽃 모양이 곱슬곱슬한 부처의 머리를 닮은 데다 부처님 오신 날 무렵에 꽃이 피어 불두화(佛頭花)라고 불린다. 불두화는 원예용으로 육성된 백당나무의 변종인데, 식물학적으로 분류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연복초과’로 서술되지만, 국립생물자원관의 국가 생물다양성 정보 공유체계에서는 ‘산분꽃나무과’로 설명하며, 두산백과에서는 ‘인동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두화도 꽃잎만 있고 수술과 암술이 없는 무성화로 피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백당나무를 개량하면서 꽃의 아름다움을 위해 생식기능을 없앴기 때문이다. 스스로 번식할 수 없기에 꺾꽂이, 포기나누기, 휘묻이(취목) 등으로 번식할 수 있다. 처음 꽃이 필 때는 연초록색이지만, 활짝 피면 흰색이 되고 질 무렵이면 노란색으로 변한다.

 

불두화는 연꽃과 함께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꽃의 생김새가 부처님의 머리 형상과 닮았고 사월 초파일날 온몸이 꽃이 되어 꽃공양을 올리니 신심 깊은 불제자의 모습이다. 꽃 한 송이의 지름이 10cm가 넘는 공 모양의 꽃이 한그루에 수백 덩이씩 탐스럽게 피어나 꽃의 무게에 줄기가 휘어져 머리 숙여 예배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 현장 스님 칼럼 부처님의 머리를 닮은 불두화 이야기 중에서

 

불두화가 보여주는 ‘제행무상(諸行無常)’

 

결국 꽃은 탐스러우나 무성화여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불두화는 독신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과 닮았다고 이를 만하다. 세 갈래로 갈라진 잎은 불(佛)·법(法)·승(僧), 불교의 삼보를 상징한다고도 한다. 꽃 빛깔이 피어서 질 때까지 시나브로 변하는 모습은 “우주 만물은 항상 유전(流轉)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라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보여 주는 것으로 새기기도 한다.

 

어느덧 7월에 들었고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베란다의 수국은 보랏빛으로 그윽하고, 불두화는 거의 졌다. 제주도의 수국 사진과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 앞에서 만난 불두화를 들여다보며, 무더위와 함께 깊어 가는 여름을 건강하게 나야겠다고 생각한다.

 

 

20274. 7.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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