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서 만난 분홍찔레, 10월까지 핀단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몇 해 전 한창 동네 뒷산인 북봉산을 오르내릴 때다. 날마다 눈에 띄는 풀꽃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그 이름을 하나씩 찾아내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나는 ‘관계의 확장’이라며 좀 주접을 떤 거 같다. 대상의 이름을 아는 게 ‘관계의 출발’이고, 그런 관계를 통하여 내 삶이 얼마간 확장되는 듯한 느낌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관련 글 : 꽃과 나무 알기- 관계의 출발, 혹은 삶의 확장]
꽃과 나무를 새로 알게 되면서 삶은 좀 넉넉해진다
산을 오르며 하나씩 아는 꽃이나 나무를 더하게 되면서 내 삶이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관계를 ‘축복’이라고 여긴 것이다.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식물과의 관계를 의식하는 것부터가 퇴직 이후의 인간관계 쇠퇴기여서인지 모른다. 인간관계가 왕성하던 시기엔 무심히 보아 넘기던 주변 사물을 눈여겨보게 되면서 삶이 다른 의미에서 풍성해진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올해, 거의 매일 이웃 동네로 산책하면서 알게 된 풀꽃이 적지 않다. 어쩌다 한 번 보는 게 아니라 날마다 만나게 되니, 자연 그 성장 과정도 일부 눈에 들어오고, 특징도 명확해져서 긴가민가하던 데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지만, 나는 그걸 편안히 받아들이려 한다. 내 기억력과 관심이 감당할 만큼만 알아도 족한 일 아닌가.
봉곡동 끄트머리에서 부곡동으로 넘어가는 새로 낸 포장도로 옆에 철제 울타리를 친 밭 한 뙈기가 있다. 그 울타리를 돌아가면서 분홍빛 꽃이 썩 청초하게 핀 걸 본 건 일주일 전쯤이다. 마침 밭 임자가 있어서 물었더니, “글쎄요, 찔레장미라고 하던데요?”하고 되묻는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분홍찔레다.
우연히 만난 길가 분홍찔레
찔레꽃은 드물게 연분홍색을 띠는 것도 있지만, 흰색이다. 백난아가 부른 대중가요 ‘찔레꽃’은 ‘찔레꽃 붉게 피는’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그 꽃은 찔레꽃이 아니라 같은 장미과의 해당화(학명 Rosa rugosa)로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남쪽 나라 내 고향’에서 붉게 피는 꽃은 해당화일 개연성이 크다. 가수 백난아의 고향이 또한 제주다.
5월 초순에 가족들과 경복궁에 갔다가 자경전 뒤에서 해당화를 만났다. 해당화는 내 머릿속에 있던 꽃보다 훨씬 짙은 진홍빛이었다. 그러나 분홍찔레는 말 그대로 분홍빛 꽃이 핀다. 노란 꽃술 주위는 하얗고, 꽃잎의 가장자리는 옅거나 짙은 분홍빛이다.
이튿날 사진기를 가지고 가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봉곡동 산 밑을 걷고 있는데, 골목 안쪽에 분홍빛 화사한 꽃 무더기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보니 세상에, 분홍찔레였다. 아까 본 분홍찔레가 올해 처음 심은 것이라면 이건 좀 묵은 꽃이었다. 꽃이 더 진하고 줄기도 우거졌다.
사진을 잔뜩 찍어서 돌아오면서 혼자 헛웃음을 날렸다. 다니는 길 주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자라는 꽃들을 만난 경험이 적지 않다. 올해도 산책길 주변 골목에 피어 있는 작약과 분홍낮달맞이꽃 등을 반가이 만났었다.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새로운 풀꽃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걸 까맣게 모르고 지나온 셈 아닌가.
일상을 조금만 벗어나면 또 새로운 풀꽃을 만난다
분홍찔레는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 활엽관목으로 학명은 Rosa rubiginosa L, 영문 이름으로는 스위트 브라이어(Sweet Briar)다. 높이는 2~3m 정도 자라며 줄기에는 선모(glandular hair)가 있고 훅(hook)형 가시가 많이 나며 분지르면 사과 향이 난다.
5~10월까지 가지 끝에서 2~7개가 분홍색으로 피는 꽃은 지름 2~3cm 정도이고 5장의 꽃잎으로 구성되고 수술은 노란색이다. 꽃은 색감이 부드러우면서 기품이 있으며 우아하다. 열매는 장타원형으로 지름 1~2cm 정도이고 주황색으로 익는다.
유럽 서아시아 원산으로 배수가 잘되면서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한다. 관상용으로 정원, 공원, 옥상 조경, 계단, 가로변 소공원 등에 군락으로 심는데, 추위에 잘 견뎌 전국적으로 노지 재배가 가능하다.
우리 국립수목원에서 ‘핑크 드림(Pink Dream)’이라는 분홍찔레를 출원했는데, 이는 2002년도에 자생종인 찔레 종자에서 꽃에 자연변이가 일어난 개체를 선발하여 집중해 육성한 품종이다. 국립수목원은 분홍찔레의 잎은 어긋나고 작은 잎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양은 좁은 타원형이고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 특히 연분홍색으로 꽃이 피는 것이 특징인데 꽃잎이 두껍고, 모양은 역심장형이며 향기가 나고 개화기간이 길다고 안내한다.
5월이 아직 한 주쯤 남았는데도 이미 산책길 주변의 찔레는 거의 졌거나 시들고 있다. 그런데 분홍찔레가 5~10월까지 꽃이 핀다니 장미와 함께 사람들의 눈 호사를 시키겠다. 감꽃도 피는가 하더니 지고 있다. 시간은 여름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2023. 5. 26.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풀꽃과 나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둘 다 씨를 맺지 못하는 ‘무성화’,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남다르다 (4) | 2024.07.11 |
---|---|
‘이화(梨花)’로 불리는 배꽃, 그 청초(淸楚)한 애상(哀傷)의 심상 (34) | 2024.04.15 |
지산동 샛강의 수련(睡蓮) (11) | 2023.05.21 |
5월, ‘장미와 찔레의 계절’(2) (9) | 2023.05.14 |
5월, ‘장미와 찔레의 계절’ (7) | 2023.05.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