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새로 발행한 일본 엔화 지폐의 주인공 ‘논란’
지난 3일, 일본 엔화 지폐가 20년 만에 새로 발행돼 시중에 나왔다.[관련 기사 : 새 1만 엔권에 일제 강점기 수탈 주도한 인물 들어간다] 새 1만 엔권 주인공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의 경제침탈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 1840~1931)이다. 2015년, 새 지폐 도안 인물로 선정된 지 9년 만이다. 현행 1만 엔권의 주인공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였다. [관련 글 : 일본의 ‘과거’ ‘소환’-새 지폐 도안인물로 시부사와 에이이치 선정]
그는 제일국립은행(국립의 의미는 국법에 따라 설립되었다는 것으로 실제 민간은행)과 도쿄증권거래소 등 500여 개 기업을 설립한,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1878년에 부산에 제일국립은행(현 미즈호은행) 지점을 설립하고 이후 금융과 화폐 분야에서 일본 정부를 대리해 조선에서 여러 가지 특권을 확보했다.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을 여러 번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절친한 사이였던 그는 사업가였지만, 기실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에 이바지한, 정치적 인물이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 제국주의 확장에 기여한 정치적 인물
2015년, 일본 정부는 과거 한반도 침략의 역사를 대변하는 인물인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새 1만 엔권 지폐 도안 인물로 선정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당시 과거사를 부정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많았다.
광복회가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일제 침탈 장본인의 화폐 인물 결정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기만적 행위”라며 즉각 철회를 촉구한 이유도 같다.
2015년, 일본이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정한론(征韓論)’ 산실도 세계유산에 끼워 넣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관련 글 : 아베 신조의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 일본’, 그리고 요시다 쇼인/ 조선인 강제노동에 대한 대법원 배상 판결과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현재 유네스코가 등재를 보류하고 있는 사도 금광(佐渡金山 사도 킨잔) 문제도 여전히 한일 간 현안이다. 에도시대 초기에 도쿠가와(徳川) 막부에 의해 개발된 금광인 사도 금광은 니가타현 사도시의 사도가 섬에 있다.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국영이 된 사도 금광은 1989년에 조업을 중지하였다.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덜어낸 일본의 사도 광산 세계유산 등재 신청
일본 정부는 2022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사무국에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해달라는 추천서를 보냈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 1500여 명을 강제동원(1939~ )한 이 광산의 온전한 역사를 보여주지 않고 시기를 에도 막부 시대(1603~1867)로만 한정해 놓은 것 때문에 등재를 보류하고 있다. [관련 글 : 사도 광산 ‘세계유산’ 등재…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 ‘왕도는 없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였을 때도 한국인 강제동원 관련 시설도 설립하겠다고 될 것이라 약속했지만, 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하시마 등 일부 산업 시설에서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했던 일이 있었다.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정보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하겠다”라고 약속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관련 글 : 다시 불려 나온 군함도, 강제동원 역사 왜곡하는 일본]
이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는 조선인 강제동원을 비롯한 전체 역사가 설명돼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일본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굴종적인 대일 외교를 비판해 온 사람들은 우려를 쉽게 지우지 못한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일본 정부의 사도 광산 세계유산 등재 시도에 대한 성명”도 이를 지적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성명에서 한일 양국 정부에 각각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숨기지 말고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라.” “한국 정부는 대일 굴종 외교를 버리고 일본 정부에 강력히 대응하라.”고 촉구한다. 연구소는 사도 광산 문제에 관해서 “1,519명의 조선인 동원이 기록되어 있는 ‘사도광산사’ 원본도 확인”했고, “니가타 현립문서관에 있는 1414번 자료, ‘반도 노무자 명부’는 이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라고 제시하면서 한양 양국에 거듭 촉구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한일 관계 개선을 자신들의 외교적 성과로 자랑하고 있지만, 강제동원 피해자를 무시하고 역사 정의를 봉인한 허울뿐인 관계 개선은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사도 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비로소 진정한 한일 관계 개선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시다 총리가 어설픈 눈가림으로 강제노동의 역사를 지우려 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굴종 외교를 고집하며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 사도 광산은 하시마(일명 군함도)에 이어 역사를 왜곡하는 또 하나의 환영받지 못하는 유산으로 기록될 것이다.”
- 위 성명 중에서 (원문 PDF 보기)
식민지 지배와 피지배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한일 관계는 해방 80년을 앞둔 현재에도 여전히 미완의 질곡에 머물러 있다. 현재 일본이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하는 건 식민지 지배 사실뿐일지도 모른다.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전쟁범죄,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문제가 늘 원점에서 맴도는 까닭이 거기 있다. 그것은 새삼스럽지만, 독일의 역사 청산 방식과 일본의 그것을 견주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관련 글 : 아우슈비츠 해방, 독일과 일본의 역사 성찰의 방식]
사도 광산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굴종적이라고 강력히 비판받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의 현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듯하다. 표면적으로는 반대를 천명하고 있지만, 일본발 관련 기사나 우리 정부의 미온적 대응 등에서 미묘한 기류가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2024. 7.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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