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 입문 초보자의 푸념
나는 D-SLR 입문을 ‘캔디’로 하겠다고 오랫동안 별러왔다. 삼성의 GX-10이 캔디와 똑같은 물건이라 하더라도 굳이 캔디를 사겠다고 한 것은 20년 전부터 써 온 필름 카메라(펜탁스 ME-super)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어느 때인가부터 더 이상 삼성의 물건을 사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혔기 때문이다.
*캔디 : 일본 펜탁스에서 출시한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 ‘K-10D’의 발음 ‘케이텐디’를 줄여서 부르는 펜탁스 사용자들의 애칭
캔디 대신 삼성 GX-10을 ‘지르다’
그러나 나는 지난 주말에 인터파크에서 삼성 GX-10을 ‘질러 버렸다.’ 매우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용자(‘유저’라는 말 대신 내가 쓰는 말이다.)들의 정겨운 얘기가 넘쳐나는 펜탁스 포럼이 캔디 시연회 이후 펜탁스의 수입·유통회사인 동원의 성토장으로 변하면서 사후관리(a/s)를 중심으로 한 회원들의 의견이 백가쟁명으로 분출하는 걸 ‘눈팅’으로 지켜보면서 얻은 결론 때문이다.
삼성의 제품을 사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도덕적인 부자’는 간혹 있을 수 있겠지만 ‘도덕적인 재벌’은 이 땅에 있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지 오십보백보일 뿐, 천문학적 부를 이룬 기업집단에 도덕과 윤리를 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나는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집단이 그간 행해 온 오너 중심의 전근대적 지배구조나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불법 경영권 상속 등의 문제보다는 이른바 ‘휴먼테크’를 지향한다는 삼성의 노무관리 방식에 분노하는 편이다.
이미 정평이 나 있는 그들의 ‘노무관리’ 방식은 철저하게 전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이다. 회사 안에 ‘노동자’나 ‘노동조합’ 따위의 형식이나 내용이 존재하지 않게 하는 데 기울이는 그들의 노력은 일류기업으로서 손색이 없다. 불온한 노동자 감시를 위해 휴대폰 불법복제와 위치 추적 같은 탈법 행위를 기꺼이 저지르는 그들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의심할 나위 없이 ’무노조 경영'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고, ‘사법적 정의’는 여전히 법전 속에나 존재한다.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해 노조설립 노동자를 감시했다며 삼성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소한 삼성 일반노조 위원장은 지금 감옥에 있다. 검찰이 삼성 관계자를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한 6일 후, 법원이 김 위원장에게 명예훼손죄로 실형 10개월을 선고한 까닭이다.
전근대적 ·비인간적 노무관리의 삼성에 대한 분노
노동자로서의 계급적 각성에 이른 한 무력한 노동자 개인의 삶과 생활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 버리려는 집요한 그들의 노무관리 방식은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무관하게 '야만적'일 뿐이다. 자신의 삶을 옥죄어 온 추적과 미행과 감시의 거미줄 앞에 맨몸으로 선 그 노동자들의 얼굴에 드러난 절망과 분노의 표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더 이상 삼성의 상품을 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부도덕한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훨씬 더 정치적인 행위다. 그것은 소비자로서의 자기 소비에 대한 윤리적 선택일 뿐 아니라, 나아가 엄청난 힘을 소유한 생산자에게 저항하는 정치적 발언이다. 그런 행위가 그 거대 공룡에게 털끝만 한 상처조차 입히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기실 삼성의 영향을 벗어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문어발 기업집단은 우리의 일상적 삶과 직간접적으로 이어져 있으며, 마침내 권력의 반열에 성큼 올라 있다. 대통령이 고백했듯 이미 권력은 ‘시장’에게로 넘어갔고 삼성은 그 ‘시장 권력’의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른바 ‘삼성공화국’과 그 정점에 있는 이 아무개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는 대통령의 그것을 상회한다.
그럼에도 세계적 기업으로서의 삼성의 브랜드 가치에 대한 평가를 듣는 일은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조그마한 분단국이라는 존재 조건을 극복하고 이룬 이 나라의 발전상과 함께, 썩 개운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그나마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여기는 데 이 나라 사람들의 소박한 애국주의와 민족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삼성이 이룬 성취는 그것대로 인정해야
국경 없는 자본은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절묘한 상호출자의 방식을 통해 단지 몇 퍼센트의 지분만으로도 그룹 전체를 지배하긴 하지만, 이미 대부분 거대 기업에는 국제자본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대놓고 ‘우리 기업’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그 자본의 구성 자체가 글로벌(!)해져 버렸다. 그러므로 한 기업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국수적일 이유는 없다.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것처럼 주워섬긴 이유는 이미 짐작하셨겠다. 펜포(펜탁스 포럼)에서였는지, 에스엘아르(slr)클럽에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른바 삼성과 펜탁스 지지자 사이의 ‘캔디와 GX-10’ 을 둘러싼 승강이를 지켜보면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다툼은 ‘똑같은 제품이 이미 삼성에서 나오는데 굳이 일본 제품을 써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삼성 지지자들의 다소 민족적(?)인 지적에 펜탁스 지지자들이 반론을 펴는 데서 비롯되었던 듯하다.
나는 삼성 지지자들의 소박한 애국주의와 민족의식을 이해하지만, 그것이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타와 거부라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구분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없거나 부족한 일본에 대한 비판과 선량하고 양심적인 일본인에 관한 호의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일본의 공산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너그럽다는 건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
쪽팔려서(!) 삼성 로고를 가리고 싶다는 펜탁스 지지자의 정서도 정반대의 이유로 삼성 지지자의 논리를 닮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본에 대한 맹목적 거부 정서나 일본 제품에 대한 전폭적 신뢰(바꾸어 말하면 자국산에 대한 불신)는 그것이 외곬의 감정과 태도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설사 우리의 기술과 일본의 그것이 일정한 격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격차가 자국산에 대한 비아냥이나 폄하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나는 후발주자로서, 그러나 IT 쪽에 괄목할 만한 기술을 가진 삼성이 선발 전문 광학 기업으로서 명성을 갖고 있는 펜탁스와 일종의 상호보완적 협업을 펴가는 것은 LG가 IBM이나 필립스와 맺는 관계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이 방식은 원천기술을 가진 일본 기업과 구걸하듯 제휴를 맺고 매출의 상당 부분을 로열티로 지급하는 저 6, 70년대의 다분히 불평등한 협력 관계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2006년은 일제 라디오를 수없이 분해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최초의 국산 라디오를 베껴 냈다는 60년대의 삽화는 이미 전설이 된 시대이다.
결국 ‘캔디’ 대신 삼성을 선택한 이유, ‘합리적 소비의식’
소비자로서의 삼성에 대한 내 관점과는 무관하게 나는 삼성이라는 기업이 이룬 성취를 인정하고 그 성취가 일정하게 민족적 긍지를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동시에 나는 최근 군국주의적 퇴행을 일삼고 있는 아베 내각에 대한 민족적 우려와는 상관없이 광학 기업으로서의 펜탁스의 권위와 기술력을 인정할 수 있으며, 펜탁스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은 애니콜을 쓰는 소비자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펜탁스를 사든, 삼성을 사든 그것은 기술력이나 민족 의식 따위가 개재된 소비행위가 아니라 다만 한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개인적 선호일 뿐이다. 출시 발표 이후, 날짜를 꼽아가며 기다리던 캔디를 포기하고 내가 GX-10을 지른 이유는 아주 단순 소박하다.
펜탁스의 기술력, 명성과는 상관없이, 캔디의 수입·판매업체인 동원시스템의 사후관리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부실한 런칭쇼 운영을 계기로 분출되면서 많은 소비자의 선택은 달라지고 말았는데, 나도 숱한 ‘변심자’에 끼고 말았다. 나는 여러 변수를 두고 오래 저울질해 보았다.
SLR에 대해서 백지에 가까운 초보이지만 나는 정밀기계인 카메라는 사후관리가 중요하리라고 생각했다. 또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에 어느 쪽도 서비스 센터가 없었던 점을 고려했고 전자 쪽의 강점 있는 서비스의 경험을 가진 삼성의 사후관리를 훨씬 미덥게 여겼다. 결국 내 선택을 결정한 것은 펜탁스의 명성도 삼성의 가능성도 아닌, ‘합리적 소비의식’이었던 것이다.
남은 것은 하나. 앞서 밝힌 ‘삼성 제품 불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었다. 그것을 바꾸기는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흔쾌히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누구와 약속이 아니라 자신에게 한 다짐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은 자신의 세계관을 가르는 일인 까닭이다. 나는 삼성이 드리운 그늘이 우리 일상의 여기저기를 뒤덮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했고, 이해(利害)가 윤리적 판단보다 더 힘이 세다는 걸 인정했다.
똑딱이를 졸업하고 조만간 내 손에 들어올 GX-10을 통해 나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나는 펜포와 slr클럽 등에서 만나게 될 펜탁스 사용자들을 아주 다정한 이웃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고 그들도 나를 그렇게 이해해 주기를 희망한다. 어쩌면 캔디와 GX-10은 따로 자라게 된 형제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2006. 10. 4. 낮달
** 난삽하고 시건방진 글로 읽힐까 봐 두렵습니다. 입문 예비자일 뿐이고, 비록 GX-10을 쓰게 되겠지만 저는 그래도 여전히 펜포의 가족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유머러스하지만 예의 바른 펜포의 동지들에게 경의를 전합니다.
18년 전에 펜탁스 사용자 커뮤니티에 쓴 글이다. 이 글을 꽤 오래 찾았으나 어디에 보관했는지를 알 수 없었고, 예의 커뮤니티도 없어져서였다. 오늘 우연히 묵은 노트를 뒤적이다가 이 글의 인쇄본을 발견했고, 그 제목으로 데스크탑을 검색했더니 금방 떠올라 주었다.
디지털 카메라에 입문하던 시절의 글이지만, 기본적으로 사진이나 사진기를 바라보는 내 시각을 거의 바뀌지 않았다. 한때의 감정에 휩쓸려 쓴 글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게 되면서 잠깐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기도 했다. 위에 쓴 삼성 일반노조 위원장이 바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성환 위원장이다. 거듭 그의 영면을 빈다. [관련 글 : 한국 노동자 최초 앰네스티 ‘양심수’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떠나다]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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