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별’ 이야기 (3) 채 해병 특검 관련 국회 입법청문회
채 해병 사고 관련 청문회의 장군들
굳이 ‘똥별’의 정의를 꺼내지 않아도 될 만큼, 이 땅에서 이른바 ‘장군’들의 권위가 무너진 지도 한참 되었다. 오랜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그들은 국민이 아니라, 자신에게 별을 달아준 최고 권력자에 무한 충성을 다하면서 과실을 챙겼다. 전역 후에도 공기업 사장이나, 각종 이권이 걸린 이런저런 자리를 받아 더 ‘꿀을 빨다가’ 야인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아무도 그런 부귀영화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국민을 위한 헌신으로 받을 명예를 좇기보다는 권력의 입맛을 살펴 자신의 입지를 챙기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의 손발이 되어, 그 상급(賞給)으로 권력을 누리는 걸 회의하지도 않았기에 올바른 군인의 길을 따르는 것보다 하나회 같은 ‘사조직의 구성원’이 되는 게 더 중요했다. 물론, 이는 늘 권력 주변을 얼쩡대는 정치군인들 얘기다.
최근, 해병대원의 희생을 밝힐 특검법 제정을 위한 국회 청문회에서 줄줄이 불려 나온 ‘장군’들의 모습도 거기서 다르지 않았다. 이미 국민은 전후 맥락을 다 꿰어맞추어 책임 소재를 확인해 버린 상황인데도 여전히 증언을 거부하고, 제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궤변을 서슴지 않는 장군들의 모습에서 ‘똥별’을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기는 장군이 되자 가장 신분이 낮은 사졸들과 같은 옷을 입고 식사를 함께하였다. 잠을 잘 때에는 자리를 깔지 않았으며 행군할 때에는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식량을 친히 가지고 다니는 등 사졸들과 수고로움을 함께 나누었다.
언제인가 사졸 중에 독창(毒瘡)이 난 자가 있었는데 오기가 그것을 빨아주었다. 사졸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대의 아들은 일개 사졸인데 장군이 친히 그 독창을 빨아주었거늘, 어찌하여 통곡하는 것이오?”라고 하자, 그 어머니는 “그렇지 않소. 예전에 오공(吳公), 즉 오기가 그 애 아버지의 독창을 빨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이는 (감격한 나머지 전쟁터에서) 물러설 줄 모르고 용감히 싸우다가 적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공이 지금 또 내 자식의 독창을 빨아주었다니 난 이제 그 애가 어디서 죽게 될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통곡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 사마천, <사기 열전> ‘손자 오기 열전’ 중에서
사마천의 <사기(史記) 열전(列傳)>에 나오는 장수 오기(吳起)의 이야기는 매우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장수가 병사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의 충성을 끌어내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얘기임은 확실하다.
‘공(功)은 병사에게 돌리고 과(過)는 기꺼이 자신이 짐’은 장수의 기본
이 일화는 군의 최상급자로서 장수가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하급자에게는 관대하여야 하는 이유를 압축적으로 시사해 준다. 지휘관이, ‘공(功)은 병사에게 돌리고 과(過)는 기꺼이 자신이 짐’으로써 자신의 권한을 엄정히 행사해야 하는 이유는, 그 독점적 ‘지위와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문회에 불려 나와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미루거나 침묵으로 진실을 은폐하는 장군들의 모습은 기시감이 있다. 그렇다, 그들은 마치 1989년 5공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던 비열한 정치군인들을 닮아 있었다. 사복을 입은 전 국방부 장관은 물론이고, 해병대 사령관과 전 해병 1사단장, 전 대통령실 국방비서관 등의 어깨에는 별이 빛났지만, 궁색한 답변과 궤변으로 일관하면서 그들의 계급장은 물 먹은 듯 무겁게만 보였다.
책임을 미루거나 침묵으로 진실을 가리는 장군들의 ‘물 먹은 계급장’
해병대원 순직 사건은 결국 ‘이런 일을 갖고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나’라고 한 ‘누군가’의 한 마디로 꼬여버렸다. 정석대로 수사해서 이를 경찰에 넘긴 박정훈 수사단장은 항명죄로 기소되고, 당일 수중 수색을 직접 지시한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한 임성근 1사단장은 꼬리 자르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 별 두 개짜리 장군은 채 해병의 죽음에 직접적 책임을 지는 대신 대대장이 자의적으로 작전을 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 한 편의 소극은 정작 피의자로 기소되어야 할 사단장이 기소된 대대장들이 선처받기를 희망한다는 탄원서까지 제출하면서 그야말로 화룡점정을 이루었다.
그에게는 해병대원 희생의 책임보다는 자기 지위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한 일이었다. 나머지 장군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임기훈 전 대통령실 국방비서관 등은 사고를 꼬이게 한 자기 상관을 지키는 데 급급하면서 상황은 이중 삼중으로 꼬여버렸다.
이 상황은 ‘사단장 하나 지키겠다고 정권이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탄식으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여당 안에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비판한 이는 사실상 아웃사이더인 유승민 전 의원뿐이다. 현직의 여당 의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 이유는 이 건이 가진 폭발력 때문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야당의 특검법 주장에 반대해서는 안 될 여당이 반대를 거듭하고, 대통령의 거부권을 독촉하는 소극이 되풀이되는 이유다. 온 국민이 문제의 핵심을 알아 버렸는데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대통령실도, 국민의힘도 딱하고, 뻔한 거짓말을 되풀이하거나, 모르쇠로 뭉개고 있는 장군들도 딱하긴 매일반이다.
지휘관들의 ‘신뢰와 지휘력의 위기’
유승민 전 의원은 “자기 혼자 살겠다고 채 상병 죽음을 부하 탓으로 돌렸다”며 “국군의 수치이고 해병의 수치”라고 꾸짖은 것이다. 야당의 특검에 나름대로 동의의 뜻을 밝힌 안철수와 한동훈도 정작 이 문제의 핵심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유승민 “졸렬한 임성근…대통령, 왜 저런 자 감싸나”]
전 해병 1사단장의 문제는 단순히 지휘관 1인의 일탈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군 지휘관이 자기가 살기 위해 책임을 부하들에게 미루는 ‘신뢰의 위기, 지휘력의 위기’를 포함하고 있다. 나머지 장군들도 도긴개긴이다. <민중의 소리> 이완배 기자가 관련 기사를 쓴 이유다. [관련 기사 : 저런 자들이 국방 책임자? 전쟁 안 난 게 천운이었다]
책임을 부하에게 미루고 있는 사단장의 반대편에는 “지휘관으로서 제가 받아야 할 모든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는 정작 피의자로 적시된 해병 포병 대대장이 있다. 그는 채 해병이 묻힌 대전현충원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사령관과 사단장의 차별과 학대를 해병대 사령부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장군들이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관을 지켜야 한다고 포장하지만, 사실은 자기 지위와 미래를 지키고 싶어서다. 그래서 진상이 하나둘 양파 껍질 벗겨지듯 드러나는데도 여전히 아귀가 맞지 않은 진술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분노한 건 국민만이 아니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구호는 해병의 자부심이고, 자랑이다. 그런데 이번 사고로 이들의 자부심과 명예가 상처를 입었다. 박정훈 대령과 해병대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수십 년 전에 전역한 선배 해병대원까지 대열에 서기에 이른 이유다. 이들은 24일 오전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서울 영등포구 관사 근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 전 사단장을 엄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관련 기사 : “국군 교도소에 있어야”…임성근 엄벌 촉구하는 해병대 예비역 연대]
한 차례 대통령으로 거부권으로 폐기된 해병 특검법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의결될 것이다. 여당은 다시 대통령의 거부권을 건의하고, 대통령은 다시 재의를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국회로 환송된 법은 재의결에 들어갈 것이다. 재의결 과정에서 폐기될지, 아니면 법안으로 확정될지는 쉽게 점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진실은 드러나고야 만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훈련병을 죽게 한 “중대장 구속, 훈련 없어지고 국군은 패망한다”고?
지난달 발생한 ‘훈련병 얼차려 사망사건’을 두고 “얼차려를 시킨 중대장과 부중대장을 형사처벌 하면 안 된다. 유가족은 운명이라 생각하라”고 하는 주장이 알려지면서 다시 논란이다. 이 ‘대단한 주장’을 꺼낸 이는 하나회 출신이라는 한 예비역 장군이다. [관련 기사 : 얼차려 사망 유족에 “운명이라 생각하라”…하나회 출신 막말]
이 별자리는 육군사관학교 14기로 전두환과 함께 군사 반란을 일으켰던 육군 내 사조직 ‘하나회’에 이름을 올란 바 있는 문영일 예비역 육군 중장이다. 그는 퇴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 누리집에 ‘중대장을 구속하지 말라! 구속하면 군대훈련 없어지고 국군은 패망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경험에 의해 추정컨대, 중대장과 부중대장은 6명에게 제한적인 완전군장 훈련을 포함한 몇 가지 얼차려 훈련을 시켰고, 한 명이 실신해 넘어지자 위급함을 즉감하고 현장 지휘관으로서 응급조처를 다 했다.”라며 “자기 조처를 다 한 중대장에게 무고한 책임을 지울 수 없다.”라고 주장했는데, 이어지는 주장은 더 기가 막힌다.
“강한 부대는 얼차려(가) 규정에 없다고 하여 훈련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개인은 모든 면에서 단체의 일원으로 힘이 돼야 하고 때로는 단체 속에서 희생되기도 한다는 각오로 훈련해야 한다.”
“희생자 가족들은 개인적으로는 운명이라 생각하라.”
“부대와 국군, 국가의 위로를 받고 한동안의 실망을 극복하라.”
“(군인권센터를 ‘국군을 손보겠다고 설치된 이상한 조직’이라고 주장하며) 군인권센터의 소원에 따라 이번 사건이 수습된다면 국군 간부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국군의 훈련 정도도 타락해 유사시 국군을 패망하게 할 것”
그의 이 용감 무식한 주장은 현재 삭제되었다고 하는데, 이 주장에 달린 답글 가운데 압권은 “이런 사람이 장군이었으니 병사들이 죽는 것”이었다. 더는 논평할 것도 없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진작에 얼차려의 범위를 정해 놓고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미군을 비롯한 군대는 패망하고 없어야 한다.
‘민주 군대’가 ‘강한 부대’다
그의 주장에 담긴 군을 바라보는 관점이 제발, 이른바 성우회 소속 회원들의 일반적인 경향이 아니길 바란다. 도대체 별을 3개씩이나 달았던 자들이 퇴직해서 이런 망발을 서슴지 않는다면 그런 단체는 해산하는 게 국익과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실로 ‘강한 부대’란 그의 말대로 ‘개인’이 단체의 일원으로 희생되기도 하는 부대일 수 없다. 오히려 개별 병사들의 인권이 존중받는 ‘민주 군대’일 때 비로소 강한 부대가 될 수 있다. 육군 병영생활 규정을 위반한 얼차려를 강행하여 갓 입대한 병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교는 마땅히 엄하게 벌함으로써 국군은 패망하는 게 아니라, 더 강한 군으로 발전할 수 있다.
2024년의 한국 군대에는 이런 평범한 진실조차 이해하지 못한 형편 없는 지휘관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똥별’ 이야기]
· ‘똥별’과 그 추종자들, ‘역사의 교훈’도 걷어찼다
2024. 9.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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