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피동 오류] 스포츠 중계와 시사 유튜브 채널에서 여전하다
“휘영청 달이 떠오르는 밤, 진남문이 가진 기억이 달빛을 받아 보여지다!”
지난해 칠곡문화관광재단이 칠곡 가산산성 진남문 일원에서 개최한 행사 ‘2023 가산산성 야행’(6.9.~6.11.)의 구호(슬로건)다. 다행히 포스터에 쓰인 글귀는 아니지만, ‘보여지다’를 보면서 입맛이 썼다.
‘보다’의 피동사는 피동 접미사 ‘이’를 쓴 ‘보이다’다. 그런데 ‘보이다’ 대신 연결어미 ‘-어’에 피동의 뜻을 지난 보조동사 ‘지다’를 붙인 형태인 ‘보여지다’를 쓴 것이다. 피동사를 만들면서 ‘피동 접미사’(이, 히, 리, 기)에다 ‘-어지다’를 붙이는 이른바 ‘이중피동’은 우리 언어생활에서 자주 지적되는 오류다. [관련 글 : ‘잊혀진 계절’은 없다]
이 이중피동이 끊임없이 지적되는 데가 프로야구 중계다. 원조 해설가들이 길을 낸 것인가, 선수 출신의 해설가가 충실히 그 어법을 따르면서 이제 ‘보여지다’는 해설에서 지겹도록 듣게 되었다. [관련 글 : 제발 ‘보여지는’ 야구 중계는 그만!]
‘보여지다’는 최근, 늘어난 시사 관련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는 ‘시사(정치) 평론가’들이 즐겨 쓰면서 야구 중계에 이어서 새롭게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방송과 유튜브 등에 겹치기 출연하고 있는 한 평론가가 가장 이를 많이 쓰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쪽지라도 보내고 싶어질 때가 많다.
‘길들다’로 써도 충분한 자리에 ‘길들여지다’가 쓰이기도 한다. ‘길들다’에 이미 피동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타동사(목적어가 필요한 동사) ‘길들이다’의 어간 ‘길들이-’에 ‘-어지다’를 붙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되다’를 ‘되어지다’로 쓰는 사례도 있다. [관련 글 : ‘길들여지다’는 ‘길들다’로, ‘잊혀진’도 이제 그만]
드물게 ‘보이다’로 쓰는 이를 보면 없던 호감도 생길 지경이다. 4·10 총선 무렵에 뉴스와 유튜브에서는 ‘풀려지다’와 ‘열려지다’까지 나왔다. ‘풀리다’, ‘열리다’로 쓰면 될 자리에 어김없이 ‘-어지다’를 붙인 것이다. 기사에서가 아니라, 출연자들의 발언 가운데 나온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잘못된 어법은 확인하는 즉시 고치는 게 좋다. 그런데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방송 출연자들이 쓰는 말을 시청자들도 따라 쓰면서 더 나빠질 수도 있다. ‘한가위 되세요’ 만큼이나 쉽지 않은 문제다.
2024. 4.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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