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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덫’은 어떻게 ‘덧’이 됐나?

by 낮달2018 202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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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음법칙에 어긋난 ‘덫이·덫을’의 발음 [더시]와 [더슬]

▲ 우리나라의 전통 덫들. 새와 사냥, 그리고 쥐덫이다. 2024년 한국에선 디오르 백도 덫의 일부가 될 수 있다.

4년 전에 ‘받침의 연음’에 관한 글을 쓴 것은 한 보도전문채널에서 출연자가 ‘텃밭이’를 발음하면서 [터빠시]라고 발음해서였다. 요즘 이렇게 발음하는 이들이 점점 느는 추세인 듯하지만, 이는 명백히 ‘표준발음법’에 어긋난 발음이다. 제대로 모국어 쓰는 이는 굳이 문법을 의식하지 않고도 그게 틀렸음을 곧바로 알아챌 것이다.

 

연음법칙과 음절의 끝소리 규칙

 

‘텃밭이’는 구개음화 현상에 따라, ‘굳이’나 ‘같이’를 각각 [구지], [가치]로 발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빠치]로 발음해야 한다. 따라서 ‘밭’의 받침 ‘ㅌ’을 ‘ㅅ’으로 바꾸어 발음하면서 [터빠시]로 읽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관련 글 : 꽃이’· ‘밭이[꼬시]·[바시]로 읽는다?]

 

며칠 전 라디오 방송을 유튜브로 시청하는데 대통령 부인의 명품 가방 수수 관련해 ‘덫’이란 낱말이 나왔다. “짐승을 꾀어 잡는 기구”인 바로 그 ‘덫’이다. 그런데 진행자가 이를 발음하는데 위의 예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덫’을 단독으로 발음하면 [덛]이니 달리 문제가 생길 일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 조사가 붙으면서 발음이 꼬였다. ‘덫이·덫을’은 당연히 받침 ‘ㅊ’이 연음이 되어 [더치]·[더츨]이라 읽어야 하는데, 진행자는 이를 각각 [더시]와 [더슬]로 발음한 것이다. 받침 ‘ㅊ’을 ‘ㅅ’으로 읽은 것은 ‘꽃이·밭이’의 예와 같은 잘못이다. 우리말 받침은 어떤 경우에도 ‘ㅅ’으로 읽히지 않는다.

▲ 연음법칙과 절음법칙은 우리말 표준발음법의 가장 중요한 대원칙이다.

여기 적용된 음운법칙은 앞 음절의 받침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형식형태소’가 이어지면, 앞의 받침이 뒤 음절의 첫소리로 발음되는 연음(連音)법칙이다. 형식형태소란 조사, 접사, 어미 등과 같이 문장 안에서 각 단어의 관계를 나타내주고 있을 뿐, 독립된 뜻이 없는 허사(虛辭)를 말한다.

 

‘표준어 규정’ 중 표준발음법의 관련 규정 제8항은 “받침소리로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ㅇ’의 7개 자음만 발음한다.”이다. 이는 음절 끝(종성, 받침)에서 실현되는 자음으로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ㅇ’의 7개가 있음을 규정한 것이다. 이 규칙을 ‘음절의 끝소리 규칙’이라고 한다.

 

‘훈민정음’에서는 ‘ㅅ’이 하나 더 있어서 8종성(終聲)이었는데, 그 뒤에 ‘ㅅ’이 ‘ㄷ’으로 실현됨으로써 현대 국어에서는 7개가 되었다. 물론, 이는 받침 뒤에 모음이 붙지 않은 경우일 때만 적용되며, 뒤에 모음이 오면 받침이 뒤로 연음되어 제 음가대로 발음된다. ‘꽃’의 단독 발음은 [꼳]이지만, ‘꽃이’는 [꼬치]로 발음되는 것처럼 말이다.

한글에서 종성으로 쓰일 수 있는 받침은 단자음 14개(ㄱ~ㅎ), 복자음(複子音) ㄲ, ㅆ, ㄳ, ㄵ, ㄶ, ㄺ, ㄻ, ㄼ,ㄽ, ㄾ, ㄿ, ㅀ, ㅄ 등 13개를 합하여 27개다. 그러나 이 자음들은 받침에 쓰일 수 있을 뿐이지, 그게 모두 발음되는 게 아니라, 앞서 든 7개의 자음으로만 발음되는 것이다. [관련 글 : 한글 ‘11,172’ ]

 

이 7개의 자음으로 음절 말 위치에서 실현되는 구체적인 경우는 제9항 이하에서 규정하고 있다. 제9항은 “받침 ‘ㄲ, ㅋ’, ‘ㅅ, ㅆ, ㅈ, ㅊ, ㅌ’, ‘ㅍ’은 어말 또는 자음 앞에서 각각 대표음 ‘ㄱ, ㄷ, ㅂ’으로 발음한다.”라는 규정이다. 실제로 이들 받침은 해당 환경에서 정확히 그렇게 발음된다.

 

절음법칙과 7대표음

▲ '낫, 낟, 낮, 낯, 낱'은 모두 [낟]으로 발음된다.
▲ 위 사례는 'ㄷ, ㅌ, ㅅ, ㅆ, ㅈ, ㅊ, ㅎ' 받침이 대표음 'ㄷ'으로 발음됨을 보여준다.

이중 ‘ㅅ, ㅆ, ㅈ, ㅊ, ㅌ’이 어말에서 ‘ㄷ’으로 발음되는 것을 살펴본다. 이들 받침이 모음으로 시작되는 실질형태소, (구체적인 대상이나 동작, 또는 상태를 나타내는 가장 작은 단위의 말)와 결합하면 소리를 잇지 않고 일단 끊어서 발음하여 뒤에 나오는 실사의 뜻을 살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음운현상을 절음(絶音)법칙이라고 한다.

 

예컨대 실사인 ‘옷’과 ‘안’이 만나면 [오산]이 아니라 [오단]이 되는 형식이다. 실사인 ‘꽃’과 ‘잎’이 만나도 마찬가지다. 먼저 꽃이 [꼳]으로 발음되고, 사잇소리 현상에 따라 ‘잎’은 ‘ㄴ’이 첨가되어 [닙]으로 발음된다. 그다음 단계로 두 실사가 이어지면 자음동화 현상으로 ‘ㄷ’이 뒤의 ‘ㄴ’을 닮아 [꼰닙]으로 발음되는 형식이다.

 

어쩌다가 연음법칙마저 무시되기에 이르렀지만, 이게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보긴 어렵다. 방송 등 미디어에서 바른 말글 쓰기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설사 이러한 현상이 보편적으로 바뀐다고 해서 ‘꽃이’, ‘덫을’을 [꼬시], [더시]로 발음하는 걸 용인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우리말 발음법의 근간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4. 2. 1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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