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명사 ‘체’와 ‘채’, 그리고 접미사 ‘째’
언젠가부터 사과를 잘 씻어서 껍질째 먹는 버릇을 들이고 있다. 사과를 깎는 게 성가시기도 하지만, 아마도 사과 껍질을 깎아내고 먹는 데는 우리나라뿐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면서다. 물론 농약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우리 영농 관행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기는 하다.
사과 껍질에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데다 껍질째 먹으면 항산화 효과 8배라고 하니 잔류 농약만 잘 씻어내면 깎지 않고 먹는 건 괜찮은 선택이다. 과일은 대부분 껍질을 벗기고 먹지만, 껍질은 과육을 보호하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어서 거기에도 영양소가 적지 않은 것이다.
접미사 ‘-째’
‘껍질째’에 쓴 ‘-째’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대로’ 또는 ‘전부’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그러므로 항상 앞말에 붙여서 써야 한다. ‘껍질째’, ‘뿌리째’, ‘그릇째’, ‘냄비째’, ‘씨째’, ‘통째’ 등이 그것이다.
한편 접미사 ‘-째’는 ‘수량, 기간을 나타내는 명사 또는 명사구 뒤와 수사 뒤에 붙어’ ① ‘차례’나 ‘등급’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와 ② ‘동안’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도 쓰인다. ① 의 예로 ‘몇째, 두 잔째, 여덟 바퀴째’가 있고, ② 의 예로는 ‘사흘째, 며칠째, 다섯 달째’ 등이 있다.
의존명사 ‘채’와 ‘채’
접미사 ‘-째’와 헛갈려 쓰이는 것으로 ‘채’와 ‘채’가 있다. 이 ‘채’와 ‘체’는 앞말과 띄어 쓰는 의존명사다. 의존명사므로 당연히 앞말은 관형사형 어미가 붙은 형태가 되어야 한다.
(1) 그는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2) 괜히 잘난 체하다 망신만 당했다.
문장 (1)에서 의존명사 ‘채’의 앞말은 ‘않은’인데, 보조동사 어간 ‘아니하(않)-’에 관형사형 어미 ‘-은’이 붙은 것이다. 문장 (2)에서는 의존명사 ‘체’ 앞에 동사 어간 ‘잘나-’에 관형사형 어미 ‘-ㄴ’이 붙었다. 혼자 쓰일 수 없는 의존명사 ‘채’와 ‘체’는 앞의 관형어에 기댄 것이다.
둘 다 의존명사지만, ‘채’와 ‘체’는 성격이 좀 다르다. ‘채’는 ‘채’는 ‘이미 있는 상태 그대로’라는 뜻으로 쓰이는 의존명사다. 주로 ‘~하는 채’, ‘~하는 채로’의 형태로 많이 쓰이는데, 문장 (1)에서 보는 것처럼 “입지 않은 채(로)”로 와 같이 쓰인다.
‘체’는 ‘거짓으로 꾸미는 태도나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주로 ‘~하는 체하다’와 같은 ‘보조동사’의 형태로 많이 쓰인다. 문장 (2)의 ‘체하다’처럼 보조동사 ‘척하다’로 바꿔 쓸 수도 있는 것은 그래서다. “알고도 모르는 체했다.”, “애써 태연한 체했다.”, “못 이기는 체하며 선물을 받았다.” 등도 마찬가지다.
동사 ‘체(滯)하다’는 다른 낱말
한편, ‘체하다’와 같은 형태로 쓰이는 동사로 ‘체(滯)하다’가 있다. 이는 한자어 ‘체(滯)’에 접미사 ‘하다’가 붙어 만들어진 파생 동사다. “먹은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아니하고 배 속에 답답하게 처져 있다.”라는 뜻으로 ‘얹히다’와 동의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접미사 ‘-째’와 의존명사 ‘채’, ‘체’에 관련한 의미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잘난 체’하며 낙지를 ‘통째로’ 삼키더니 그는 ‘앉은 채’로 기절해 버렸다.”
2024. 3. 1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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