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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들다’?, ‘생각하다’가 훨씬 간단명료하다!

by 낮달2018 2024.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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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말에서 흔히 쓰이는  ‘생각이 들다’를 생각한다

▲ 시사 프로그램의 출연자들도 흔히 '생각이 들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지난 3월 11일에 방송된 이 프로에서도 '생각이 들다'는 쓰였다.

요즘 방송에 나오는 출연자들의 발언 가운데서 유독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낱말이 ‘생각이 들다’다. ‘생각하다’로 써도 될 자리에 꼭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생각이 든다’라는 표현을 다투어 쓰는 것이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생각이 들다’로 무작위 검색한 결과다.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절대 고의로 그런 거 아니니까 너무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180 이하면 기장이 많이 길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우리가 전략공천의 참뜻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서로 엄청난 공방전이 치열할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관심도가 높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위 사례는 모두 인터뷰 등에서 출연자가 한 말[구어(입말)]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로 ‘생각이 들다’라는 표현은 구어(입말)에서 주로 쓰일 뿐, 문어(글말)에서는 그만큼 쓰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위 예문의 ‘생각이 들다’를 ‘생각하다’로 바꾸면 뜻이 훨씬 간단명료해진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그렇게 쓰기를 좋아할까. 이는 단순한 말투의 경향성, 유행을 따른 거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10여 년 전부터 유행처럼 쓰이는 말에 ‘~랄지’가 있다. “요즘에 코로나 팬데믹이랄지 기후변화 문제랄지 여러 가지 민주주의의 위기랄지 이런 상황에서……”처럼 쓰인다. 의미상 ‘~랄지’는 ‘나열’의 의미를 띠니 ‘팬데믹이나 기후변화 문제나 민주주의 위기나’로 써도 충분한 내용인데도 그렇다. [관련 글 : 뜻을 비트는 ‘~랄지에 대하여]

 

‘생각’을 어근으로 한 단어들

 

‘생각’이 어근(語根, 단어를 분석할 때, 실질적 의미를 나타내는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한 동사 가운데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등재된 것은 ‘생각하다’, ‘생각되다’, ‘생각나다’ 정도다. 이 가운데 ‘생각들다’는 물론 사전에 없다. 굳어진 말로 보지 않기에 ‘생각이 들다’의 형식으로만 쓰이기 때문이다.

 

모두 ‘생각’을 어근으로 삼지만, 이들 동사의 의미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개인적으로 나는 ‘생각하다’를 선호한다. ‘생각하다’는 접미사 ‘하다’가 붙어 만들어진 파생 동사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동사다. ‘생각하다’는 기본 의미인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다” 외에도 ‘기억하다’, ‘관심을 가지다’, ‘마음을 먹다’, ‘상상해 보다’, ‘정성을 기울이다’ 등 모두 7가지 뜻으로 풀이한다.

 

1. 생각하다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다”라는 기본 의미는 어떤 문제에 대한 사고와 판단을 가장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낱말이다. 이는 피동형을 잘 쓰지 않는 능동형 위주의 우리말 특성에 부합하기도 한다. 특히 어떤 문제를 판단할 때 ‘~라고 생각하다’의 방식으로 쓰임으로써 그 판단의 주관성과 함께 책임성을 일정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화자나 필자의 태도를 명확하게 해 준다.

 

2. 생각되다


‘생각되다’는 어근 ‘생각’에다 ‘피동 접미사’ ‘되다’가 붙어서 굳어진 말이다. 주로 영어 번역 형식의 문장에서 자주 쓰이면서 결국 사전에까지 등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논문이나 주장을 펴는 글에서 자주 쓰이는 이 표현은 은근히 ‘객관적’이라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문제에 대한 화자나 필자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피동형으로 쓴다고 해서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표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관성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책임성을 담보하고 있는 ‘생각하다’에 비기면 다소 비겁하고, 객관성 뒤에 자신을 숨기는 느낌을 떨치지 못하는 느낌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학자들이 이런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3. 생각나다

 

생각은 머릿속이든 가슴속이든 간에 ‘나고 든다’. ‘나다’는 “생각, 기억 따위가 일다”라는 뜻이고, ‘들다’는 “밖에서 속이나 안으로 향해 가거나 오거나 하다”거나 “의식이 회복되거나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일다”라는 뜻이다. 나는 애당초 ‘나다’는 ‘내부에서 외부로’ 움직이는 모습으로, ‘들다’는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의미라 여겼는데, ‘나다’에는 방향을 직접 가리키는 뜻은 없는 모양이다.

 

‘생각나다’는 낱말 풀이에서 보듯 ‘떠오르다’, ‘생기다’는 뜻이 중심인 낱말이다. ‘생각’은 애써 노력한 결과로도 떠오르고 생기겠지만, 대체로 무심히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마음이 생기는 걸 이르는 표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1970년대에 유행한 ‘생각난~다 그 오솔길’로 시작하는 대중가요(‘꽃반지 끼고’)가 있었는데, 이 역시 문득 떠오른 생각의 표현으로 봐도 좋겠다.

 

4. 생각이 들다

 

아직 ‘생각’에 ‘들다’가 붙어서 굳어진 동사가 되기 전이니, ‘생각’에 주격 조사 ‘이’가 붙고 띄어서 동사 ‘들다’를 붙이는 형식으로만 쓰인다. 생각의 뜻이 ‘헤아리고 판단하다’이니, ‘생각이 들다’는 “헤아림과 판단이 일다” 정도로 새길 수 있겠다.

 

주로 대화 중에 쓰이는 구어인데, 맨 앞에 붙인 예문에서 보는 것처럼 ‘생각하다’로 바꾸면 뜻이 훨씬 간단명료해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굳이 ‘생각이 든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 그렇다’라는 뜻으로 여겨진다. 즉, 자기 생각을 명확히 하는 표현으로서는 별로 알맞지 않다는 느낌이 강한 것이다.

 

발언의 주체로서 문제에 대한 자기 의견과 판단을 명확히 드러내는 표현으로 ‘생각이 들다’는 효과적이지 않다. 또 발언 당사자로서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는 표현이라는 느낌도 대화 상대에게 줄 수 있다. 자기 생각이나 태도를 드러내는 표지로서 말이 명확성과 책임성을 지니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우리말 속담은 우리말의 뉘앙스가 매우 풍부해서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서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기분이 다르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의견과 판단을 말할 때, ‘생각이 들다’라고 쓰기보다는 ‘생각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되는 까닭이다.

 

 

2024. 3.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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