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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왜 그들은 일터 ‘KBS’를 떠나고자 하는가

by 낮달2018 202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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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베테랑 언론인들 ‘줄 퇴사’

▲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의 유튜브 꼭지 '언론어때'는 KBS 언론인 줄퇴사를 다루었다. (2024.3.1.)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의 유튜브 꼭지인 ‘언론어때’(2024.3.1.)는 최근 한국방송(KBS)에서 시행하는 특별명예퇴직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직원이 퇴직을 신청하여 지난 29일 자로 면직되었다고 전했다. 모두 87명의 희망자 중 52명의 기자와 PD 등 방송직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가운데에는 시청자들과 익숙한 얼굴도 많다고 했다. [관련 방송 : KBS 명예퇴직에서 정세진 아나운서, 박종훈 기자 등 베테랑 언론인들 퇴사……]

 

KBS 기자 아나운서들 줄 퇴사


‘9시 뉴스’ 앵커와 ‘저널리즘 토크쇼 제이(J)’를 진행하면서 27년간 KBS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정세진 아나운서를 비롯하여, 기자 중에는 유튜브 채널 ‘경제 한방’을 진행했던 박종은 기자, ‘사사건건’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김원장 기자, 그리고 통합 뉴스룸 국장을 지냈던 임장원 기자 등이 그들이다.

 

사장이 바뀌면서 재정 위기를 이유로 시행한 이번 명퇴에선 애초 편성한 명예퇴직금 예산(98억)에서 92억 원이 초과할 만큼의 신청자가 몰렸다고 한다. 위 프로그램에선 명퇴금이 퇴직을 유인할 만큼이었기도 했지만, 대규모 퇴직에 대한 해석이 넘칠 만한 ‘맥락’이 있다는 사실도 지나칠 수 없다고 짚었다.

 

이들이 밝힌 퇴직의 변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설 자리가 없다”라는 것이다. 박민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속전속결로 주요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을 교체하는 등 여러 논란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직업적 정체성’을 잃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이번 퇴직자 중에는 특정 진영에 속하지 않았다고 평가받는 이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 KBS에서 재정 위기를 이유로 시행한 특별명예퇴직에서 모두 52명의 방송직군, 기자, 아나운서 등이 퇴사했다.

KBS가 워낙에 진영 논리에 따라서 좌우되는 문제가 많았지만, 그래도 일 좀 할 만한 사람한테 일을 맡기는 그런 관행은 있었는데, 그게 다 무너져 버린 것 같다는 반응도 있다고 했다. 특히 일을 너무 하고 싶은데 정말 연봉만 많이 받는 사람처럼 일할 수밖에 없게 되어서 내가 남아있는 게 조직의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자조적인 반응도 있었다고.

 

어쨌든 간판급의 아나운서나 기자는 그 나름의 맨파워로 화면 경쟁력을 좌우하기도 하는데, 이들이 회사를 떠나는 건 결국 인적 자원의 유출인바, KBS 경쟁력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새 경영진이 멀쩡한 KBS를 공영방송 정체성을 재확립하겠다면 마구 인사를 하면서 결과적으로 공영방송의 정체성이 실종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이들은 내모는 친정부 경영과 뒤집힌 정체성

 

직군이 기자나 피디든, 아나운서든 기술직이든 기십년의 연차를 쌓으면서 근무해 온 방송사를 떠나겠다고 마음먹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명퇴금에 혹해서 그런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더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없다고 여기면서 쓸쓸한 퇴장을 결정하고 만 이들의 심정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박민 사장이 오기 전에 퇴사한 최경영 기자나 홍사훈 기자도 그런 경우였다고 할 수 있다. 최경영 기자는 떠나면서

“그들이 정한 스케줄에 따라서 독립적인 공영방송 언론인 삶의 시간표가 결정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사회적으로 공분할 사안에 제대로 공분하지 못하는 퇴행적 언론 상황에도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었다.

▲ 아침 시사 프로그램 '최강시사'를 진행하던 최경영 기자는 앞서 회사를 떠났다. 그가 떠난 후 이 프로는 이름을 바꾸었다.
▲ 오후의 라디오 경제 프로그램 '경제쇼'를 진행하던 홍사훈 기자도 회사를 떠났다.

그가 떠난 뒤, 나는 더는 그 프로그램을 듣지 않는다. ‘최강 시사’는 ‘전격 시사’라는 프로그램으로 대체된 모양인데 나는 그걸 한 번도 듣지 않았다. 낮 12시 대의 시사 프로그램 ‘시사 본부’도 평일에는 없어졌고, 주말에만 남았다. 달리 KBS를 볼 일이 없어진 것이다.

 

홍사훈 기자는 “의혹이 있으면 취재하고 확인이 되면 보도하라 저는 그렇게 배웠다. KBS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인이 한국 사회 한국경제를 위해서 더 큰 용기를 가져주길 희망하겠다. 경제와 정의를 다 잡아보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지금 와서 보면 잡지 못하고 저는 내려간다”라면서 한국방송을 떠났다.

 

그런데 여기에 정세진 아나운서도 떠난다. 나는 꼭 12년 전, MB정부의 ‘편파 방송에 맞선 공정 보도를 위한 파업 투쟁’으로 그를 기억한다. 그는 징계의 위험을 무릅쓰고 파업 채널(파업 당시 노조에서 운영한 채널)의 앵커를 자원했다. [관련 글 : 징계의 칼춤, KBS 정세진의 선택]

 

몇 해 걸러서 되풀이되는 퇴행, 해고와 징계는 극복돼야 한다

 

그간 이루어져 온 언론노조의 파업을 나는 “언론인의 ‘존재 증명’”이라고 말해 왔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을 목표를 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언론노조나 교원노조의 경우는 임금 인상과 같은 경제적 이익보다는 언론 자유나 교육 민주화 같은 더 본질적인 목표에 집중한다.

 

2010년에 시작된 KBS의 파업 관련 글을 쓰면서 나는 “‘국민의 방송’에서 단박에 ‘권력의 방송’으로 간단하게 탈바꿈한 조직 앞에서 느끼는 조직 구성원들의 부끄러움”을 이야기했다. 사측과 잠정 합의로 파업을 중단하면서 조합원 기자와 아나운서들이 흘린 눈물을 ‘행복한 눈물’이라고 말했다. [관련 글 : 행복한 눈물이 당신들의 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퇴행과 저항, 그리고 해고와 징계 따위로 망가지는 공영방송을 바라보면서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공정하고 자유로운 공영방송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송법이 시급하다. 몇 해 걸러서 반복되는 이 말도 되지 않는 방송 현실을 혁파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최종적인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블로그의 <이 풍진 세상에>의 카테고리 가운데 ‘미디어 리포트’를 둘러보면 이 어이없는 현실이 기막힌 데자뷔(기시감)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오는 4월 총선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첫 단추 끼우기가 되어야 한다. 더는 우리 방송이 망가지면서 언론 자유가 위협받는 걸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4. 3.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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