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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료’ 분리 징수, ‘땡윤 뉴스’를 얻는 대신 ‘공영방송’을 잃는다

by 낮달2018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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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또다른 ‘땡전 뉴스’를 원하면 국민은 ‘공영방송’을 잃는다

▲ 우리 아파트의 공고문. 나는 수신료 분리 납부 신청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TV 수신료 분리 납부 신청 접수 안내

 

아파트 1층 현관과 승강기 벽에 관리사무소의 ‘TV 수신료 분리 징수 신청서 접수 안내’ 공고가 붙었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한전에서 개별세대 TV 수신료 분리 납부 신청서가 제공되어 관리사무소에서 이 신청을 받는다는 안내다.

 

지난 7월 11일 국무회의에서 KBS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고 이에 따라 12일부터 텔레비전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분리해서 납부할 수 있게 됨에 따른 조치다. 분리 납부를 희망하는 세대는 관리사무소에 와서 자필로 신청서를 작성해 주면 관리사무소에서는 이를 취합하여 한전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지난 1994년부터 30여 년 동안 전기요금과 함께 한전이 ‘통합 징수’해온 TV 수신료가 방송법 시행령 개정과 함께 분리 징수로 바뀐 것이다. 과거에 시청료 징수원이 가정을 방문하여 징수하던 것을 전기요금과 함께 통합 징수하면서 한국방송공사(한국방송, KBS)는 ‘공영방송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 정권이 속전속결로 수신료 분리 징수를 시행하고자 하는 이유는 뻔하다. 현 정부는 전 정권 시절에 짜인 공영방송 체제가 자신들에게 비우호적(불공정한)인 방송을 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한국방송과 문화방송(MBC)을 공격해 왔다. 그러더니 마침내 여소야대의 국회 구조상 법률을 바꾸는 게 어려우니 시행령을 고쳐서 수신료 수입에 타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한국방송을 흔들려고 하는 것이다.

 

수신료 분리 징수는 ‘공영방송 길들이기’

 

“…현재 한국방송(KBS) 전체 재원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45%에 이른다는 점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는 공영방송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무책임한 발상이다. 돈줄을 죄어 공영방송을 길들이려는 의도라면, 언론 자유 훼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 한겨레 사설 텔레비전 수신료 분리 징수, 공영방송 길들이기 아닌가(2023.6.6.)

 

친정부 쪽의 시민들로선 이에 동조하여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도 상정할 수 있으나 1980년대의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과는 여러 가지로 여건과 상황이 다르다. 1980년대는 수신료가 아니라 ‘시청료’였고, 이는 KBS를 시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납부를 거부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1988년인가 나도 이 운동에 동참할 수 있었다.

▲ 1980년대 전국민운동으로 발전해간 KBS 시청료 납부 거부 스티커.

1980년대의 시청료 납부거부운동

 

1984년 4월 28일 전북 완주의 가톨릭농민회와 천주교회에서 시작된 KBS 시청료 거부 선언은 이듬해 8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시국대책위원회의 주도로 기독교계는 물론 전 국민이 참여하는 범국민운동으로 확산했다. 신군부 독재정권의 집요한 방해와 위협을 뚫고 참여 시민들이 늘면서 1984년에 1천1백48억 원이나 되던 시청료 징수액은 88년에는 7백85억 원으로 뚝 떨어지는 성과를 올렸다.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은 애초부터 KBS와의 싸움이 아니라 그 관리자인 전두환 정권과의 투쟁이었다. 시민들이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소극적인 거부권 행사이며 불복종운동이었다. 당시 범국민운동본부의 집계에 따르면 TV 수상기 보유 가구의 52%가 이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목표인 방송의 공영성 확립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개돼 시민들의 저항 의식과 참여 정신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됐다.”

   - 실록 민주화 운동 66. KBS 시청료 납부거부운동(경향신문)

▲ YMCA가 주도한 KBS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 안내서.

결국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부터 현행 제도가 시행되면서 수신료 납부를 티브이 수상기 소지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한국방송이 지정하는 대상에게 수신료 징수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를 그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애초 수신료 통합 징수 제도가 도입된 것은 공영방송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법적 의무인 수신료 납부의 공평성과 효율성을 기하려는 목적이 컸다. 수신료 분리 징수가 현실화하면 납부 회피가 늘어 수신료 수입이 크게 줄고, 징수 관련 비용은 대폭 늘 수밖에 없다.

 

한국방송의 자료를 보면, 한전 위탁 이전에는 수신료 수입액의 33%가량을 징수 관련 비용으로 지출했는데, 위탁 이후 그 비율이 10% 수준으로 낮아졌다. 수신료 수입이 줄면 한국방송은 자구책으로 상업광고 의존도를 높이거나 장애인 방송 등 공익성 높은 프로그램을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여러 차례 통합 징수가 부당하다는 취지의 소송이 제기됐지만,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 등을 이유로 한국방송 쪽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정부가 수신료 제도 개편에 발 벗고 나선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수신료를 볼모로 한국방송을 압박해 정권에 순치시키겠다는 속내를 모르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반민주적이고 치졸한 행태를 당장 그만두라.”

     - 위 <한겨레신문> 사설 중에서

▲ 정권의 압박 앞에 한국방송(KBS)에 일대 위기가 닥쳐왔다.
▲ 아파트에 사는 내가 매월 내고 받은 관리비 영수증. 전기요금 밑에 'TV수신료' 항목이 들어 있다.

수신료 분리 징수로 정부가 얻는 것은 ‘땡전 뉴스’의 재현일까

 

수신료를 명분으로 한국방송을 압박하겠다는 정부 의도는 일정하게 관철될 듯하다. TV가 없는 국민은 수신료를 안 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분리 고지·징수 도입으로 수신료가 부과되고 있는지를 바로 알고 대처할 수도 있다. 또 수신료를 안 내도 한국전력이 전기요금 미납으로 보지 않으므로 단전 등의 우려도 없다.

 

그러나 분리 납부를 신청하면 수신료를 안 내도 되나? 그건 물론 아니다. 왜냐하면 시행령의 상위법인 방송법은 TV 수신료에 대해 ‘TV를 가진 전기 사용자가 내야 할 의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료’가 아닌 ‘수신료’는 KBS나 ·EBS 시청 여부와 무관하다. 현행법상 수신료 납부 의무는 분리 징수 후에도 유지된다.

 

단전되는 등의 불이익은 없으나, TV를 가지고 있는데 수신료를 내지 않으면 방송법에 따라 미납 수신료의 3%만큼 가산금(월 수신료 2500원 기준 70원)이 부과된다. 또 KBS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승인을 얻어 국세 체납에 준해 강제 집행할 수 있다. 물론, 위원장을 면직하고 이사들을 해임하기 시작해 정부의 의도대로 재편하려는 방통위가 강제 집행을 얼마나 승인할지는 알 수 없다.

 

현재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에 대한 정부의 조치는 속전속결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방송의 공정성을 문제 삼고 있지만, 정부는 사장을 바꾸는 등의 압박을 통해 이명박 정부 때처럼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제 편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정권에 따라, 방통위와 방송사 사장을 바꾸어 친정부적으로 운영하려는 후진적 체제의 폐해는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다. 민주당 정권이 집권 전에 마련한 방송법을 개정하지 않아서 생긴 업보다. 이제 다시 민주당이 방송법 체제를 바꾸려는 개정안을 마련해서 입법에 나서는데, 집권 여당이 이에 응할 뜻이 없어 보이니, 다시 방송계는 수렁에 빠질 듯하다.

 

나는 ‘수신료 분리 납부를 신청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수신료 분리 납부를 신청하지 않을 생각이니, 기존대로 전기요금에 합산 고지된 수신료를 매월 납부하게 될 것이다. 이유는 다르지만, 나 역시 KBS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KBS가 불공정하다거나 수신료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방송법의 관련 조항. 국가법령센터에서 전문을 확인할 수 있다.

수신료 분리 징수로 ‘국민이 잃게 되는 것’

 

나는 수신료가 현행 방송법의 ‘제44조(공사의 공적 책임)’를 실현할 수 있는 재원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방만한 경영이나 국가기간방송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용인할 수 없지만, 한국방송이 그 공적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 언론 자유와 공영방송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TV 수신료 분리 징수가 현실이 되면 재난방송 등 공공서비스가 대폭 줄어들고, 재원 구조도 광고에 의존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이 신료 수입의 격감으로 광고 확보와 시청률 경쟁에 내몰리게 되는 것은 상업방송과 차별화된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수신료는 공영방송 KBS가 시청률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적 약자 배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무료 다채널 방송 같은 사업을 펴나갈 수 있는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궁금한 점은 정부가 수신료 분리 납부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빚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것이 담보하는 공영방송과 언론 자유의 발전을 어떻게 기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 정부의 조처들은 방송이야 망가지든 말든,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 추구하는 무책임하고 무도한 행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걸핏하면 ‘무도한 정권’이라면서 전 정권을 규탄한 바 있다. ‘무도(無道)함’이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나서 막되다”라는 뜻인데, 나는 그걸 들을 때마다 머리를 갸웃했었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권이 벌이는 ‘거대한 퇴행’,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방송의 공공성을 망가뜨리려는 짓이야말로 ‘무도하다’라고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2023. 8. 10. 낮달


상황은 ‘반전’되었다

 

위의 글은 지난 8월 초순에 쓴 글이다. 현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이 예견되긴 했어도 아직 구체적인 조치가 이루어지기 이전이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마치 전투를 치르듯이 KBS 이사회를 장악한 현 정부는 문화일보 출신의 박민 사장을 선임했고, 그는 취임과 동시에 ‘공정방송’을 위한다며 프로그램 진행자인 주진우 기자(주진우 라이브)와 이소정 기자(9시 뉴스)를 시청자에게 인사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교체했으며, 심야 시사 프로그램 ‘더 라이브’는 결방시키다가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가히 ‘점령군’다운 품새다.

 

박민 사장은 취임하면서 공영방송의 핵심 재정 기반인 수신료를 낭비하는 모든 적폐를 일소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공영방송 KBS를 현 정부의 이해를 대변하는 쪽으로 바꾸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언론노조 KBS 본부는 프로그램 폐지와 진행자 교체가 편성 규약 및 단체협약 위반 행위라고 보고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미 ‘땡윤 뉴스’는 시작되었다. MBC·SBS·TV조선·JTBC·MBN·채널A는 17일 자 메인뉴스에서 ‘초유의 행정 시스템 마비’를 첫 번째 리포트로 다루며 시민들의 불편을 전하고 정부 대응을 비판했다. 오직 공영방송 KBS만 APEC 정상회담을 첫 번째 리포트로 다루며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외교’를 홍보했다. [관련 기사 : TV조선도 행정시스템 마비톱인데KBS땡윤뉴스]

 

대통령의 장모 징역형 확정 소식은 다른 뉴스와 달리 맨 끝에 배치했다. MBC만 유일하게 첫 번째 리포트 배치하며 강조했고, KBS는 TV조선·MBN과 같이 17번째 배치했고, 채널A는 18번째였다. 적어도 한국의 언론 상황에서 뉴스 배치는 그 언론의 해당 사안에 대한 공정과 균형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윤석열 장모 징역1년 확정제일 앞에 배치한 메인뉴스는]

 

박민 사장이 KBS 2TV ‘더라이브’를 폐지하고, 뉴스 앵커를 일방적으로 교체하면서, 시청자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제 땡뉴스 안 볼 거고 KBS에 수신료를 부담할 이유가 없다”면서 집단적인 수신료 납부 거부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위기를 해소하겠다며 온 박 사장이 KBS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도 힘을 얻고 있다. [관련 기사 : 땡윤뉴스 싫다시청자 반발, KBS 수신료 급감 현실화]

 

상황은 위의 글에서 예측한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8월까지만 해도 수신료 분리 징수를 반대하는 것이 언론 자유와 공영방송을 지키는 방도였지만, 급속하게 관영 방송으로 퇴행하는 KBS에 굳이 수신료를 낼 이유가 없어졌다는 시청자들의 항의를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책임은 현 정부뿐 아니라, 공영방송 체제를 개편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방기한 민주당에게도 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뒤늦게 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킨 방송3법은 이변이 없는 한,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를 만나 좌초할 것이다. 결국은 피해는 국민에게 귀결될 뿐이다.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은 어디로 갈까.

 

 

2023.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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