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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甲辰) 새해, 다시 ‘청룡(靑龍)’의 해에

by 낮달2018 2024.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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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갑진(甲辰)년 새해를 맞으며

▲ 2000 년 경진년에 내 친구가 보내준 판화 연하장 속의 청룡 . ⓒ 박용진

더는 해의 ‘간지’를 달력에서 찾기는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1970년대가 그 상한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 시절에 시골에 가면 집집이 간지를 이마에다 커다랗게 써 붙인 한 장짜리 농협 달력이 붙어 있곤 했었다. 지금도 농촌에 가면 그림 없이 커다랗게 날짜를 박고 아래에도 일진까지 인쇄한 달력을 볼 수 있는 이유는 그게 농사를 짓거나 세시를 아는데 쓸모가 있어서다.

 

간지가 더는 쓰이지 않는 시절에 맞는 갑진년

 

그런데 요즘 나오는 달력은 탁상형이든, 벽걸이형이든 해의 간지 따위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신식’ 물건이다. 이제 시골에도 굳이 일진 따위가 인쇄한 달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일까. 하긴 해마다 책력(冊曆)을 사서 보곤 했던 토정비결을 보지 않은 지가 벌써 몇십 년이 흘렀다.

 

간지(干支)가 10 천간(天干)과 12 지지(地支)로 이루어지고, 그게 한 바퀴 도는 데 60년이 걸리는 것쯤은 모두가 안다. 갑자(甲子)년에 태어난 이가 다시 갑자년을 맞는 데 꼭 60년이 걸리는 것, 그래서 우리 나이로 예순하나에 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을 맞이하는 것이다. [관련 글 : 갑을병정, 자축인묘, 간지는 과학이다]

 

그런데 띠가 열두 해마다 반복되는 것은 12 지지에 열두 동물 대응시켜 놓아서다. 갑진(甲辰)년에서 ‘진(辰)’이 바로 다섯째 지지인 ‘용’이어서 2024년은 용띠 해가 된다. 역산해 보면 2012년(임진), 2000년(경진), 1988년(무진) 등이 용띠 해였다. 12살 차이가 띠동갑(同甲)이 되는 것도 이러한 이치다.

 

12년 전인 2012년에 새해를 맞는 소회를 쓴 글에서 나는 그해가 ‘흑룡’의 해임을 밝혔었다. 올해는 청룡(靑龍)의 해인데 이는 간지의 방위(方位)와 오행(五行)에 따른 것이다. 천간 가운데 갑을(甲乙)과, 지지 중 인(寅)과 묘(卯)가 오방색(五方色) 가운데 ‘청(靑)’이어서 올해가 ‘청룡의 해’가 된 것이다. [관련 글 : 용의 해’, 혹은 역사에 대한 희망]

▲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에 위치하는 대묘의 널방에 표현된 사신도 중 일부인 청룡모사도. ⓒ국립중앙박물관

갑진년의 청룡은 흔히 ‘좌청룡’으로 알려졌듯, 사신(四神) 또는 사수(四獸)의 하나다. 12지 가운데 유일하게 상상의 동물이 용인데, 오행 사상에서 청색은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동쪽을 상징하기 때문에, 청룡은 ‘동방을 수호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다.

 

갑진년에는 역사적으로 뚜렷한 사건이 없었던 듯하다. 갑진 간지가 들어가는 역사적 명칭으로는 갑진자(甲辰字, 1484), 갑진만필(甲辰漫筆, 1604), 갑진북정록(甲辰北征錄, 1664), 갑진혁신운동(1904) 등이 있다.

▲ 왼쪽부터 갑진자 인본 동국통감(1484), <대동야승>에 실린 갑진만필(1604), 갑진북정록(1715)

갑진년 관련 역사 - 갑진자, 갑진만필, 갑진북정록, 갑진혁신운동

 

갑진자는 1484년 갑진년에 왕명으로 주자소에서 만든 동 활자로 전해지고 있는 인본(印本:인쇄한 책)으로는 <왕형공시집(王荊公詩集)>·<동국통감(東國通鑑)>·<신편고금사문유취(新編古今事文類聚)> 등이 있다. 이 활자는 갑인자·을해자 다음으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갑진만필>은 1604, 갑진년부터 쓰기 시작한, 조선시대 문신 윤국형이 임진왜란 전후의 시사에 관하여 견문한 내용을 기록한 필사본 실기(實記)다. 선조 초(1573∼1582)의 시사(時事)에 관한 견문들을 수필체로 기술한 <문소만록(聞韶漫錄)>에 덧붙인 책으로 임진왜란 전후 약 20년간에 일어난 시사에 관한 견문, 특히 명나라 원군의 처리 문제와 임진왜란 이후의 명나라 사신의 동태 및 과거, 동서분당(東西分黨) 등의 문제에 관한 기사를 단편적으로 기술한 수필집이다.

 

<갑진북정록>은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곡 김수항(1629∼1689)이 지은 글을, 숙종 41년(1715)에 그의 맏아들 김창집(1648∼1722)이 편찬한 시첩(詩帖)이다. 대전광역시의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이 책은 대전시립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갑진혁신운동은 1904년 손병희 등 동학교도들이 일본과의 협력으로 개화를 추진한 운동이다. 수만 도인(道人: 천도교를 믿는 사람)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단발흑의(斷髮黑衣)로 혁신시위를 벌여 민족의 자각과 생활의 개화·혁신의 획기적인 기원을 이루었다.

 

이 운동의 머리를 깎아 봉건 정신을 없애고 물들인 옷을 입어 사람들을 비생산적인 데서 생산적인 데로 이끌어 세계 신문화에 적극 참여하여 민권 신장을 위한 조직을 만들고자 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단체가 진보회인데, 이 운동에 참여한 인원이 100만 명이 넘자, 당황한 정부는 동학당의 부활이라고 보고 이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에 일진회가 도움을 주면서 조직 자체도 일진회로 통합되는데 일진회는 하여 을사늑약(1905)에도 지지 성명을 내는 등 친일 부역 단체가 되어 버렸다. 조직이 친일성을 드러내자, 손병희는 1906년에 귀국하여 동학을 ‘천도교’라고 이름을 고치고, 1906년 9월에 일진회에 계속 가담하는 모든 신도를 몰아냈다.

 

‘정치의 해’ 4월 총선의 선택은?

▲ 경주 김유신 묘 호석 가운데 십이지신상 진상. 오른쪽은 탁본이다.

2024년은 윤석열 정부 3년 차, 4월 22대 총선(4.20.)이 있는 해다. 100일을 앞두고 벌써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듯하다. 정권심판론과 국정안정론이 부딪히게 될 이 총선의 결과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역대 정권이 이룩한 정치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다시 발전할 수 있을지 어떨지를 가늠할 수 있는 선거다. 

 

지난 2년여 동안 국정과 국운은 곤두박질치면서 그간 쌓아온 나라의 위상을 잃고, 정치·경제·안보·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정체와 퇴행을 거듭해 왔다. 22대 총선은 폭주만 거듭해 온 국정 운영을 멈추게 하거나 쇄신하는 데 필요한 선택의 공간이 될 거라는 얘기다.

 

주권자는 정권이든, 야당이든 심판하기 위해서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유일하게 주권자로 대접받는 때가 바로 선거 아닌가. 무지렁이 국민으로 홀대받던 주권자들이 벼르고 벼른 한 표를 행사하는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는 짧게는 남은 정부의 임기 동안, 길게는 이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일정하게 규정하는 의미 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친구가 2000년에 보내준 판화 연하장의 청룡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새해엔 무엇을 바라고 빌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복권 당첨의 대박’이야 늘 사람들의 행복한 상상으로 끝나는 것, 그저 자신과 가족이 건강하게 또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이상의 기원이 어디 있겠는가.

 

 

2024. 1.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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