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용의 해’, 혹은 역사에 대한 희망

by 낮달2018 2022. 1. 24.
728x90

2012년, 임진년 새해를 맞으며

▲ 2000 년 경진년에 내 친구가 보내준 판화 연하장 속의 청룡 . ⓒ 박용진

진짜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해에다 간지(干支)를 붙이는 것은 오랜 태음력의 관습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는 태양력에 이 태음력의 간지를 미리 써 버린다. 양력 새해를 맞으면서 앞당겨 음력 간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엮는 것이다.
 
올해는 임진(壬辰)년, 용의 핸데 아홉 번째 천간(天干)에 해당하는 ‘임(壬)’의 색이 ‘흑’이어서 ‘흑룡’의 해란다. 흑룡은 비바람의 조화를 부리는 상서로운 짐승, 나라의 극성스러운 어머니들은 이왕 낳는 아이를 흑룡의 해에 맞추어 나으려고 온갖 꾀를 부리기도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1948년 단독정부 수립 이래 이 나라는 수천 년 동안 지내온 ‘설날’을 공식 명절에서 제외해 버렸다.

 

이른바 ‘왜놈 설’이 공식적인 신년으로 정해지면서 설날은 ‘구정(舊正)’이란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이중과세(二重過歲)’의 주범으로 욕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초중학교는 물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우리가 쇤 명절은 여전히 ‘구정’이었다. 당연히 공휴일이 아니었으나 서슬 푸른 군부독재 시절도 민간에 연면히 이어져 온 저 민족 최대의 명절을 힘으로만 억누를 수는 없었다. 설날이 개학 중이었을 때도 섣달그믐날은 단축수업으로 일찍 마쳤고 설날 당일은 10시까지 등교를 늦춰주는 방식으로 설날을 ‘비공식적’으로 용인했기 때문이다.
 
설날이 ‘민속의 날’이라는 묘한 이름으로나마 ‘복권’된 것은 전두환 독재 시기였던 1985년이다. 그러나 당일만 쉬었고 사흘간의 신정 연휴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민속의 날’이 ‘설날’로 이름이 바뀌면서 본래의 명절로 완전히 복권된 것은 그로부터 4년 뒤다. 설날 전후의 사흘을 연휴로 쉬게 되면서 누천년에 걸친 민족의 명절은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올 설은 공교롭게도 섣달그믐날이 일요일이어서 하루를 빼앗겼다. 공휴일이 휴일과 겹치면 다음 날을 쉬게 한다는 이야기는 정치권에서 가물에 콩 나듯 하다가는 끝내 오리무중이니 사람들은 이 날짜의 ‘불운’을 원망하는 수밖에 없다.
 
이사를 하고 책상을 정리하다가 예천에서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내 친구 박용진이 보내주었던 연하장을 발견했다. 2000년 벽두에 그가 보내준 이 판화 연하장은 ‘청룡’을 그린 것이다. 2000년은 경진(庚辰)년, 따지면 ‘백룡’의 해다. 그러나 그는 청룡을 그렸다. 청룡은 그보다 12년 전인 1988년 무진(戊辰)년이다.
 
그러나 흑룡이든 청룡이든 그게 뭐 대수인가. 올해는 두 차례의 선거,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 지난 4년간 이래저래 치이고 몰렸던 유권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참이다. 글쎄, 정치는 생물이라니 그게 어떤 모양으로 자라나 움직일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지난 몇 해 동안 ‘퇴행’을 거듭해 온 우리네 삶과 사회가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변화의 실마리를 마련할 것이라는 점이다.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정국의 풍향은 구경꾼으로서가 아니라 주체적 시민으로, 각성한 개인의 의지만이 바꾸어낼 수 있으리라는 것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12. 1. 24.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