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아이들과 나는 서로에게 ‘적응’하고 있다
느지막하게 찾아온 봄, 꽃샘추위가 계속 중이어서. 세탁소에 보내려던 겨울 양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다음 주면 3월도 끝. 내일 수학여행을 떠난다. 세 해째 맞는 제주도 여행이다. 아이들은 벌써 설레고 있는 눈치다. 아이들 탓인지, 공연히 나도 마음이 좀 달라지는 것 같다.
편안한 봄, 아이들도 수업도…
예년과 다르지 않은 봄이고 3월이다. 그러나 올봄이 나는 무척 편안하다. 올해를 마지막 해로 삼았음인가, 나는 마치 티끌처럼 가볍다. 새로 만난 우리 반 서른세 명의 아이를 포함한 이백여 명의 큰아기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들과 함께하는 수업도 편안하다.
2월에 담임이 확정되었을 때부터 마음이 예년 같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일지, 처음 교단에 섰을 때와는 또 다른 긴장과 조바심을 느끼기도 했다. 아이들은 참 사랑스럽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교사들의 눈빛과 말투에는 귀애(貴愛)의 빛이 역력하다. 모두 마흔이 넘은 중견 교사들이어서 아이들을 자기 아이 바라보듯 한다. 오히려 귀애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쪽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지난해 애들과는 다르다. 기가 세다고 할 수도 있고 자기표현이 발랄하다고 할 수도 있다. 넘치는 에너지와 재기가 아이들을 들뜨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곧 새 환경에, 교사들에게 익숙해질 것이다. 영리한 아이들은 이내 ‘관계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올핸 주말에 넉넉하게 쉬지도 못했는데도 월요일이 다가오는 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왜요? 아이들이 묻는다. 네 녀석들이 보고 싶어서지. 그렇게 말하고 나면 정말이라는 생각이 아주 분명하게 든다. 아이들은 탄성과 비명을 동시에 질러댄다. 긴가민가하면서도 아이들에게 교사의 마음이 전해졌던가, 아이들은 수줍은 듯 환한 미소를 짓는다.
한 달이 덜 되었지만, 아이들은 내게 잘 ‘길들고’ 있다. 어린 왕자가 말했던 것처럼 ‘길들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동시에 나도 아이들에게 잘 길드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를 길들이면서 ‘서로가 필요한 관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되는’ 사이가 되고 있는 것일까.
우린 서로에게 잘 '길들고' 있다
아이들은 내가 지시하거나 부탁한 대로 아주 잘 움직인다. 사물함 위나 창턱에 책이나 체육복 따위를 얹지 말자고 했더니 비교적 잘 지키고 있고, 주번은 성실하게 자기 활동을 하고 있다. 청소도 아주 열심히 잘한다. 격려와 믿음이 아이들을 움직이는 것이다.
교무실 바로 옆이 우리 교실이다. 교사의 끝에 있는 교실을 드나들어야 하는 동료들에게 비기면 나는 ‘그저’인 셈이다. 짬이 나면 한 번씩 교실로 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우스개를 하곤 한다. ‘더는 좋을 수 없는’ 상태다. 내 만족감과 흐뭇한 기분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염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담임이 자기들을 애틋하고 여기고 있다는 걸 깨우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음악실이나 과학실로 가면서 교실의 전등을 끄는 게 익숙하지 않다. 지나가다 빈 교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끄곤 했는데,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교실을 비울 때는 전등을 끄자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우리 반 복도를 지나다 보니 교실은 비었는데 전등이 아주 얌전히 꺼져 있었다.
아, 녀석들이 유념해 두고 있었구나. 나는 머릿속이 무언가로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다음 날이었다. 무심코 지나가는데 우리 교실이 어둑했다. 이틀째, 아이들은 전등을 끄고 교실을 비웠던 것이다. 나는 머릿속이 다시 무언가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차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 깨끗하게 지워진 칠판에 커다랗게 썼다.
“교실을 비우면서 전등을 끄고 가는 내 자랑스러운 딸들아!”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은 칠판에 쓰인 담임의 찬사를 읽었으리라. 그다음 빈 시간에 뒷문으로 들어서서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가면서도 교실 전등을 끄고 가면 분명 더 자랑스러운 딸들이 되겠지? 아이 하나가 내 흉내를 냈다. 사랑하는 딸들아! 우리는 함께 유쾌하게 웃었다.
자랑스러운 딸들아!
고작 한 달쯤 지났는데 나는 아이들과 오래전부터 익숙한 사이가 된 듯하다. 아이들도 그런 느낌이 있을까. 나는 목이나 어깨에 들어 있던 힘을 빼고 아이들을 만난다. 나는 마치 저희 아버지처럼 정겨운 눈길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건 전적으로, 자칫하면 아이들에게 주책을 부릴 수도 있는 ‘연륜’, 아무짝에도 쓸데없을 것 같던 ‘나이’의 힘이다.
밤 10시까지 야간 자습은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고단한 일이다. 특별히 움직일 일은 없지만, 4시간쯤 학교에 더 머무른다는 사실 자체가 힘든 것이다. 마침 종이 울리면 아이들에게 수고했다고, 가서 쉬라고 하면 아이들도 아주 상냥하게 인사를 하곤 한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아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계단을 내려가고 아이들과 다시 작별인사를 한다. 피로가 몰려오는데도 기분은 ‘은화처럼 맑다.’
마치 맛있게 담배를 한 대 피운 것처럼 목까지 차오르는 만족감이 있다. 나는 아주 희미하게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게 조금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는 건 왜 그런 걸까……. 나는 잠깐 1년 후를 성급하게 상상해 본다.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는 내년 2월 어느 날,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인사말을 할 수 있을까.
“너희들과 함께한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아주 행복했단다. 고맙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이 마지막 담임 노릇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회한 없이 가벼이 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겠다.
제주도에 가면 아이들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사진 찍는 걸 매우 예민하게 여기는 열여덟 사춘기 여학생들이어서 사진기를 들이대면 기겁을 하고 도망가면서도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배낭에다 짐을 싸면서 나는 이번 제주 여행을 통해 아이들과 아주 무관한 관계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다.
2009. 3.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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