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하지 않게 마무리한 고추 농사, 마음이 ‘헛헛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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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비롯하여 가지, 토마토, 호박, 박 등 함께 시작한 텃밭 농사, 마무리가 가까워졌다고 쓴 게 8월 23일이다. 고춧가루 세 근과 올해 유난히 부지런히 열려서 쏠쏠하게 따먹은 호박과 박, 그리고 늘 왕성한 생산력을 자랑해 온 가지까지 한목에 정리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본 것이다. [관련 글 : 텃밭 농사, 마무리할 때가 가까워진다]
8월 25일에 가서 고추를 한 차례 더 땄다. 남은 건 거의 병든 놈이었고 병은 푸른 고추에까지 이미 번졌다. 언짢은 마음을 달래준 건 그것도 마지막 수확일 듯한 호박과 박 여러 덩이였다. 9월 1일에 마지막 고추를 따고, 성한 데가 없는 고추 몇 포기를 뽑아냈다. 그리고 한번 흘겨본 고추밭이 2023년에 내가 본 고추밭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9월 11일, 다른 일로 바쁜 나 대신 혼자서 텃밭에 간 아내가 고추와 가지, 토마토, 호박, 박을 모두 뽑아냈기 때문이다. 아내는 고추를 뽑은 자리에다 시장에서 사 간 배추 모종을 심었다. 마지막으로 딴 고추는 따로 말리지 않고, 다듬어서 홍고추로 쓴다고 갈무리했다.
늦장마가 이어진 탓도 있지만, 고추밭 농사를 엎고 나니 어쩐지 기분이 심드렁해서 우리는 텃밭에 곁을 두고 지냈다. 9월 18일에 들렀을 때, 텃밭 주위는 마구 자란 풀로 무성했고, 마당에도 아내가 일부러 놔둔 고들빼기가 키만 하게 자라 마치 폐가를 방불하게 했다.
처서도 지난지라, 더는 풀도 자라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그래도 정리를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마침 전날 벌초하고 차에 실어둔 예초기로 마당과 밭 주변의 풀을 좀 깎았다. 그나마 덜 흉하긴 했지만, 어쩐지 기분이 스산해졌다.
그리고 27일에 다시 텃밭에 들렀을 때, 배추 고랑 사이에 여전히 자라고 있는 풀을 좀 매었다. 아내는 묵은 밭 주변도 정리했다. 심고 며칠 동안 돌보지 못했던 배추는 반이 죽어버려서 아내의 상심이 컸는데. 다행히 비가 잦아서 산 놈들은 제법 이파리를 키웠다.
그동안 여러 차례 배추를 심었지만, 병충해의 습격에 잎은 모두 놈들에게 적선하고 말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만두라고 했지만, 아내는 일단 반이라도 건지면 그게 어디냐고, 진딧물을 막는 친환경 약을 뿌리고, 내가 간단하게 약을 쳐 주었다.
묵은 밭에는 두 무더기의 들깨가 익고 있고, 대파가 먹을 만큼 자랐는데, 여기도 병충해가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만큼은 심하지 않아서 거기도 약을 좀 쳤다. 뒤늦게 심은 쪽파도 가지런히 나고, 아내 고추밭 한쪽에 뿌린 씨앗에서도 싹이 텄다.
그러나 나는 말은 안 했지만, 올 농사를 사실상 마음속으로 접어두고 있었다. 배추를 못 잊어 아내가 사흘돌이로 텃밭 타령을 해도 심드렁하게 받고 마는 이유다. 명절 전에 이미 배춧값은 천정부지로 올라서 한 단(2포기)에 만 오천 원이 넘는다. 그나저나 아내의 배추는 얼마나 제대로 자라 수확할 수 있을지.
2023. 9. 3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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