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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3 텃밭 농사] ⑮ 첫 홍고추를 따다

by 낮달2018 2023.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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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고추, 비록 한 줌이지만 첫 수확을 하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30포기를 심은 고추밭. 우리는 여기서 기대하는 수확을 10근에서 3근까지로 낮추었다.

고추가 익어가면서 병충해로 떨어지고 벌레 먹은 고추가 늘어나자, 방제에 대한 아내의 조바심도 커졌다. 일주일에 한 번쯤의 방제가 사나흘 간격으로 줄어든 건 그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가 먹을 고추고, 비가 워낙 잦으니 일정한 시간만 지나면 약제는 씻기니까 괜찮다고는 하지만, 사흘돌이로 약을 치면서 기분은 썩 개운하지 않다.

 

그간 텃밭에 들를 때마다 한 바가지씩 벌레 먹은 고추를 따내면서 속상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약이 병충해에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도 그걸 멈추지 못하니 개운한 마음은 한층 더 멀어진다. 지난 금요일에 이어 오늘도 밭에 들러 약을 쳤다. 그나마 지난번 방제가 효과가 있는 듯해 한결 마음은 누구러졌다.

▲ 뜰 위에 펼쳐놓은 오늘(7.26.)의 수확. 호박은 물론이고 숨어 있던 커다란 박까지 한 개 땄다.
▲ 장독대 옆으로 벋어간 박. 박 하나가 여물어가고 있다.
▲ 지금 익어가는 밭의 작물들. 맨 왼쪽부터 박, 오이, 방울토마토, 호박이다.

닷새 만인데 오늘도 적잖이 수확했다. 호박이 5덩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어른 머리만 한 박도 한 개 땄다. 오이는 잎이 말라 죽고 있는데도 못난이 2개를 딸 수 있었다. 생산성의 가지는 무려 12개나 된다. 그리고 탄저가 온 것 같다면서 아내는 홍고추도 스무 개 남짓 땄다.

 

토마토도 1개 체면치레를 했다. 방울토마토와 함께 심었는데, 우리가 제대로 비료나 영양제를 주지 않아서일까, 토마토가 굵어지긴 하는데, 잘 익지 않는 것 같고, 먹어보니 단맛이 떨어졌다. 방울토마토도 마찬가지다. 몇 포기 되지 않으니, 달리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만이라고 여겨서일까.

 

이래저래 시원찮은 농사꾼이 타박해댔지만, 그간 우리가 텃밭에서 수확한 것은 만만찮다. 고작 두세 포기씩 심어서 오이도 열몇 개, 호박도 얼추 스무 덩이, 박도 두 덩이를 따먹었다. 거기다 생산성 최고의 가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워낙 가지 반찬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그간 가지 반찬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굳이 ‘재미’라고 한다면 그걸 못 본 게 토마토 정돈데, 사실 거기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그걸로 손익계산을 할 일은 없다. 물론 아내의 푸념대로 ‘기름값’도 안 나오는 농사라는 건 사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십몇 년을 타고 있는 내 승용차는 보통 한 번에 4만 원쯤 주유하는데, 텃밭까지의 거리가 왕복 60km이니 사실상 한번 오가는데 만 원 가까이 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늘 하는 얘기로, 농사를 기름값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관련 글 : 텃밭 농사, 그걸 기름값으로 환산할 순 없다]

▲ 오늘 따낸 홍고추. 며칠 동안 말려서 냉장고로 들어갈 것이다.

사실은 홍고추는 지난번에 와서 대여섯 개를 땄다. 베란다에서 며칠 말리더니 아내는 바로 가정용 소형 건조기를 꺼내 한 사흘쯤 돌려서 바짝 말리더니 비닐봉지에 밀봉해 냉장고에다 넣었다. 고추 30포기를 심으면서 우리는 처음엔 고추 열 근을 기대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희망은 짜부라들기 시작했다. 다섯 근으로 줄어든 기대는 최근엔 “한 3근이라도 딸 수 있으면 좋겠다”로 바뀌었다. 스무 근 이상을 딴 2년간의 고추 농사의 기억을 잊지 못해서다. [관련 글 : 고추 농사, 스무 근 수확 이루고 접었다(2021) / 2020 텃밭 농사 시종기(3) 고추 농사 ]

▲ 묵은 밭에 심어놓은 대파도 그새 키가 쑥쑥 자랐다.

오늘 거둔 것들을 집에 가져와 식탁 위에 부어 놓으니 정말 푸짐했다. 휴가를 얻어 귀향한 아들 녀석을 위해 아내가 차린 식탁엔 가지와 고추 무름, 부추와 가지 부침, 볶은 박나물, 부추 오이무침 등이 올랐는데, 그게 다 우리 밭에서 농사지은 거라고 이르는 아내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게 비록 소꿉장난처럼 하는 농사지만, 농사의 가치고 치유인 것이다.

 

 

2023. 7.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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