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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바에즈((Joan Baez), 그 삶과 노래

by 낮달2018 2019.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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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수, 인권 운동가이며 반전 평화 운동가 조앤 바에즈

▲ 2018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공연 중인 조앤 바에즈

나는 음악과는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소싯적에 나훈아나 송창식, 양희은과 김추자 같은 대중가수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해서 그런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대중가요가 손쉬웠고 클래식 쪽에는 맹탕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 4, 5년 동안 이른바 ‘민중가요’에 한눈은 판 건 시대 탓이라고 해야 한다.

 

지금도 나는 흥이 나면 쌍팔년도의 유행가를 흥얼거리기는 한다. 박자 감각은 떨어지지만, 노래방에 가면 몇 곡의 노래는 부를 수 있을 만큼 노래 ‘흉내’는 내는 편이다. 그러나 삶 자체가 그리 건조했던가, 나는 음악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난생처음 산 카세트테이프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컴퓨터 스피커를 꺼 놓고 쓰는 데 나는 아주 익숙하다. 요즘 블로거들은 음악 곁들이기는 기본인데, 음악을 듣지 않고도 텍스트만을 읽어도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굳이 필요하면 스피커를 켜거나 헤드셋을 귀에다 거는 정도이니 그 수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이 들면서 사람은 점점 무심해지는가 보다. 생각 난 김에 차를 뒤져 보았더니 정태춘의 테이프 하나가 달랑 카세트 라디오에 물려 있을 뿐이다. 한때는 ‘카페 음악’까지 포함한 대여섯 개의 테이프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던 때가 있었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도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정 지겨우면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 거로 때운다. 어느 아이 말마따나 ‘인생을 너무 재미없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는 카세트테이프를 제외하면 한 장의 음반(LP판이든 CD든)도 산 적이 없다. LP판을 들을 수 있는 전축도 없었고, 그런 가외의 지출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도 못했던 탓이라고 변명하지만, 사실은 그에 대한 갈증 따위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는 게 정직할 듯하다. 나중에 CD연주기를 사기는 했지만 그건 아이들 차지였다. 승용차 카세트 라디오를 위해 산 몇 개의 테이프가 내가 누린 음악 취미의 전부인 것이다.

 

굳이 노래를 듣겠다고 음악을 틀고 있는 경우가 아닌 한 음악은 내게 소음으로 느껴진다. 나는 아이들처럼 음악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는 신경을 갖지 못했다. 멀쩡하게 잘 듣고 있던 음악도 무언가 다른 일을 시작하면 끄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말이다.

‘솥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듣기 

1992년 대선 때다. 나는 당시 살고 있던 고장에서 공정선거감시단을 꾸려서 선거 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선거가 임박해 모여든 자원봉사 대학생들로 늘 떠들썩했다. 청년들은 시간만 나면 누군가 가져다 둔 카세트 라디오를 틀었다.

 

사무실에 드나들 때마다 그 라디오를 끄는 이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예닐곱 살 아래의 해직 여교사였고, 나머지 하나는 물론 나였다. 나는 예의 여교사에게 물었다. 학생들 틀어놓은 음악을 왜 끄고 그래? 여교사는 매우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시끄러워서요……. 선생님은요?

 

내가 아마 최초로 돈을 주고 산 음악 테이프가 초임 시절에 산 조앤 바에즈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옆 반의 동료 여교사가 건네주는 초소형 카세트 라디오의 헤드폰을 무심코 귀에 걸었는데 순간, 갑자기 전율과 같은 울림이 뱃속을 찌르르 울렸다. 거기 흘러나온 노래가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The river in the pines)였다.

 

“이게 누구지요?”

“조앤 바에즈예요.”

 

언제 적의 모습이었는지, 테이프 집에 인쇄된 사진 속에서 조앤 바에즈는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일 듯 말 듯 매부리코가 인상적이었다. 양희은과 남궁옥분을 섞으면 이런 음색이 나올까, 하고 나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보름쯤 후에 나는 예의 테이프를 샀다. 이게 내 음반(?) 입문기다.

 

내게 조앤 바에즈를 알려준 동료는 뭔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이는 바에즈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고 말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이후 그녀의 노래를 즐겨듣긴 했지만 나는 곧 그녀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 베트남전쟁 반대 집회에서 노래하는 조앤 바에즈.

조앤 바에즈의 삶과 시대

 

최근에 우연한 기회에 그녀의 노래 ‘솔밭 사이로…’를 들으며 나는 잠깐 아련한 추억에 빠졌다. 그때 나는 서른 전후의 애송이 교사였고, 5공 치하의 어두운 시절, 우리는 주로 술을 마시며 분노와 절망을 다스리고 있었다. 어쨌든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25년, 4반세기가 지났건만, 마치 2009년은 1980년대 중반의 어떤 절망과 좌절의 분위기를 닮았다. 표현과 집회의 자유, 인권과 여러 민주주의의 가치들은 보수 정권 집권 2년 차를 맞으면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나는 조앤 바에즈의 시대와 그녀의 삶을 살펴보았다.

 

위키디피아에서는 조앤 바에즈(Joan Baez, 1941~ )를 ‘미국의 가수, 인권운동가, 반전 평화운동가’로 소개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반핵 물리학자였는데, 그녀가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반전 평화운동가로서 활동하게 된 것은 아마 그런 부친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라 한다.

▲ 밥 딜런과 함께 노래하는 조앤 바에즈

조앤 바에즈는 밥 딜런과 함께 포크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저항 정신을 실천한 운동가’로 일컬어진다. 두 사람은 ‘당시 미국 사회의 여러 모순, 이를테면 인종차별, 베트남전, 세대 간 갈등 등을 저항과 리얼리즘의 정신으로 담아냈다.’ (바람구두 연방의 문화망명지, 이하 같음.)

 

그녀는 언제나 약자 편에 서서 노래하는 가수였다. 그녀의 노래는 힘없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고, 그녀는 언제나 사회적 소수의 정서를 자신의 노래에 담았다. 그녀의 노래는 소외받는 민중들의 위안이었고 그들의 무기가 되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떤 곳에든 그녀는 갔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는 시위 현장에서 쉬지 않고 노래하고 싸웠다. ‘그녀는 베트남 하노이, 북아일랜드, 튀니지, 아르헨티나, 레바논에서 노래했고, 억울하게 구금당한 사람의 사면을 위해서 노래했다.’

 

바에즈는 1983년 유럽을 순회 공연했고,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서는 파리의 비폭력주의에 바치는 무료 콘서트를 열었다. 무려 12만 군중 앞에서 노래한 그녀는 프랑스 최고 명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우리 나이로 일흔을 바라보면서도 그녀는 이런 활동을 그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운동가의 삶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큰 성취를 이루었다.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지도, 대학을 졸업하지도 못했지만, 그녀는 8장의 골드앨범과 1장의 골드싱글을 기록하였다.

 

그래미 평생공로상과 인권과 평화운동 공로

 

그래미상 후보에 6번 선정되었으며 200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하였다. 인권과 평화운동의 공로로 2개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고 2개 주로부터 조앤 바에즈의 날(Joan Baez Day)을 지정받는 명예를 얻었다.

 

삶이 슬프다고 고달프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삶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당신은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선택할 수 없다.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다.

  - 조앤 바에즈

 

그녀의 노래 “The River in the Pines(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를 다시 듣는다. 어쩌면 감미롭게도 들리지만, 이 노래는 한 젊은 부부의 슬픈 사랑의 노래다. 갓 결혼한 연인 메리를 두고 찰리는 급류에 휩쓸려 아내 곁을 떠난다. 사람들은 솔숲 사이 강물이 흐르는 곳의 그의 무덤, 젊은 두 연인을 위하여 야생화를 심는다…….

 

슬프면서도 감미로운 조앤 바에즈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나는 때때로 20년 세월을 넘어 초임 시절의 여학교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청바지를 즐겨 입던 순박하고 아름다웠던 시골 소녀들과 함께했던 내 젊음의 한때를 아주 막연하게 다시 그려보기도 하는 것이다.

 

 

2009. 5. 9. 낮달

 

조앤 바에즈의 골드앨범 및 골드싱글

 

골드앨범

《Joan Baez》(1960) / 《Joan Baez, Volume Two》(1961)

《Joan Baez In Concert》(1962) / 《Any Day Now》(1968)

《Woodstock》 / 《Blessed Are…》(1971)

《Diamonds & Rust》(1975) / 《Live Europe '83》(1984)

 

골드싱글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1971)

 

**조앤 바에즈에 대한 정보는 <위키백과>와 <바람 구두 연방의 문화망명지>를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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