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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비목(碑木)’과 ‘잠들지 않는 남도’ 사이

by 낮달2018 2019.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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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추념식에서 부르는 ‘노래’ 시비에 부쳐

▲ 제주평화공원에서 열린 제67주기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사람들이 헌화하고 있다. ⓒ <제이누리>

참 어려운 세상이다. 국가추념일 의식에 부를 노래를 두고 해마다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으니 말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문제로 정부 여당과 5·18재단, 지역민들이 부딪치더니 이번엔 제주 4·3 추념식에서다.

 

보도에 따르면 올 4·3 추념식에서는 현지 주민들이 늘 불러왔던 잠들지 않는 남도대신 비목(碑木)’이 합창 되면서 논란이 재연되었다고 한다.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지난해에 난데없이 G20 주제가였던 아름다운 나라가 연주된 데 이어 두 번째다.

 

4·3 추념식에 웬 비목그리운 마음’?

 

그나마 지난해 논란을 불렀던 아름다운 나라가 불리는 대신 전국 공모를 통해 4·3의 노래로 선정된 빛이 되소서섬의 연가5곡이 연주된 것은 진전이긴 하다. 그러나 불릴 예정이었던 합창곡 가운데 잠들지 않는 남도’, ‘애기 동백꽃의 노래가 빠졌고 대신 가곡 비목그리운 마음’, 모차르트의 레퀴엠 라크리모사’(Requiem Lacrimosa)등이 합창된 것이다.

 

비목은 한국전쟁에서 스러져 간 젊은 병사의 넋을 기리는 내용으로 1967년 발표된 곡이다. 비무장지대 어느 병사의 무덤 옆에서 발견된 녹슨 철모와 십자가 비목을 통해 전쟁의 아픔과 애상을 노래한 이 가곡은 70년대에 국민애창곡으로 널리 사랑받았다.

 

그리운 마음은 작곡가 김동환이 만든 사랑과 그리움의 노래다. ‘레퀴엠 라크리모사는 모차르트가 숨지기 전 미완성으로 남기자 제자가 완성하여 진혼곡으로 쓰는 곡이다. 비목과 모차르트의 노래는 그나마 숨진 넋을 기리는 공통점이라도 있지만 그리운 마음은 이도 저도 아니다. 당연히 4·3과는 어떤 연관도 없다.

 

                 비목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반면 합창곡에서 제외된 잠들지 않는 남도는 안치환이 만든 민중가요다. 1980년대 4·3의 상처와 아픔을 비장하게 묘사한 이 노래는 대학가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20여 년 이상 불리면서 자연스레 4·3의 노래로 공인받았다. 한편, 제주에서 활동하는 가수 최상돈이 만들어 부른 애기 동백꽃의 노래역시 2001년 이후 제주 4·3 추모 현장에서 널리 불린 노래라고 한다.

 

             잠들지 않는 남도

 

                                                      안치환 작사·작곡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

어둠 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후렴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통곡의 세월이여

잠들지 않는 남도한라산이여

 

노을빛 젖은 물결에 일렁이는 저녁 햇살

상처 입은 섬들이 분노에 찬 눈빛이여,

갈 숲에 파고드는 저승 새의 울음소리는

아 한스러이 흐르는 한라의 눈물이어라

 

지난 3일 오전 10, 제주시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67주기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1만여 명의 유족과 도민들은 난데없이 합창단이 연주하는 비목그리운 마음을 들으면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추념식에 참석한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은 SNS를 통해 대통령의 참석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노래마저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례를 넘어 유족들을 능멸하는 짓이라고 일갈하고 있다.

▲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 고희범의 SNS

올 추념식은 제주도에서 주관했는데 제주도 측에서는 행자부의 최종결정 과정에서 이들 노래가 빠졌다고 밝히면서 국가추념식 행사로서 행자부가 사실상 행사 진행의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어 주관 측인 제주도로선 다소 한계가 있었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이어 잠들지 않는 남도까지?

 

블로그를 검색해 보니 나는 그동안 5·18임을 위한 행진곡에 관한 글을 네 번(2009년과 2010, 그리고 2013년에 두 차례)이나 썼다. 그때나 지금이나 글을 쓰게 하는 상황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 비상식과 몰상식이 되풀이되는 현실 앞에서 역사는 멈춰 서 있다.

 

2013/05/21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 노래 지정 온라인 서명운동

2013/05/17  역사를 거부하는가 - 5·18의 수난

2010/05/13   퇴출? ‘임을 위한 행진곡

2009/12/01 ‘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건 피로 얼룩진 역사와 진실이다

 

5·18 추념 행사에서 드러나 몇 해째 문제가 되고 있는 추모곡 관련 논란이 그예 4·3 추념식에서 거의 같은 형태로 재연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두 행사 모두 국가가 공식적으로 그 성격을 규정한 역사로 이는 해당 지역뿐 아니라, 온 국민이 기려야 마땅하다.

 

그 의례에서 부를 노래조차 역사의 희생자인 지역 주민들의 뜻과 다르게 집행되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서 말을 잃는 것은 그래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 회복이 이루어진 데 이어 4·3국가추념일로 지정한 게 지난해다. 그런데도 그 역사적 상징으로 널리 불리는 노래마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게 이 논란의 속내가 아닌가.

 

 역사를 받아들인 라 마르세예즈

프랑스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마르세유의 노래’)’의 노랫말을 다시 들여다본다. 프랑스는 1795년에 이 노래를 국가로 제정했지만, 제정(帝政)과 공화정을 오간 71년 동안은 이 노래는 금지되었고 다른 노래가 국가로 불리었다.

 

프랑스 혁명 때 의용군이 즐겨 부른 이 노래의 가사는 매우 직설적이고 전투적이다. ‘피의 깃발’, ‘야만적인 적군’, ‘적의 더러운 피등의 선동적인 구호가 곳곳에 번득인다. 그러나 이 노래는 1870년에 다시 국가의 지위를 회복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전투적이고 선동적인 노랫말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다시 이를 국가로 지정한 것은 거기 담긴 프랑스 혁명의 정신과 그것이 상징하는 역사성을 온전히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노래는 100년이 넘게 국가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가자이 땅의 아들딸들아,

영광의 날이 왔도다!

지성을 뒤엎는 폭압이,

피에 찌든 깃발이 있는,

피에 찌든 깃발이 있는

 

저 들판에서 나는 병사들의

흉악한 소리가 넌 들리나?

 

그들이 우리 코앞까지 왔다

우리 자식들과 아내들의 목을 찢으러!

 

후렴

시민들아무기를 들고

무리를 만들어

나가자나가자!

더러운 피를

밭고랑에 대자!

시민들아무기를 들고

무리를 만들어

나가자나가자!

더러운 피를

밭고랑에 대자!

 

     -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1

 

▲ 라 마르세예즈의 가사와 악보

하긴 행정자치부 장관까지 제주 4.3사건 희생자 재심의의사를 밝히면서 보수단체에서 주장해 온 4·3 희생자 위패 정리에 동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 한 번도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보수 정부의 4·3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주 현지의 주민들은 가해와 피해를 어우르며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넘어가고자 한다. 그런데 다시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아물어가는 상처를 헤집는 보수세력들의 발호와 이에 동조하는 듯한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의 인식을 우려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권은 짧고 노래는 길다

 

노래 몇 곡이 불리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역사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노래에 담긴 시대의 아픔과 회한의 역사를 불러내면서 사람들은 지금 여기, 극복하여야 할 고통과 통한의 과거를 직시하는 것일 뿐이다.

 

정권은 짧지만, 노래는 길다. 공식적으로 잠들지 않는 남도4.3 희생자 추념식에서 거세한다고 해도 그것은 연면히 살아남는다. 노래보다 더 긴 것은 역사다. 그것은 한때의 권력을 넘어 미래를 규정하는 과거와 현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2015. 4.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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