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한다고?
국가보훈처가 새 ‘오월의 노래’를 제정한다고 나부대다가(!)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게 지난해 12월 초순쯤이다. 당시 보도를 보고 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건 피로 얼룩진 역사와 진실이다”라는 글을 썼다.(☞ 글 바로 가기) 보훈처가 들끓는 여론 앞에 무릎을 꿇고 ‘생뚱맞은 계획’을 철회한 것은 잘 아시는 바와 같다.
5·18 민중항쟁 서른 돌을 앞두고 보훈처가 다시 슬그머니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하려 는 모양이다. 보도(☞ 기사 바로 가기)에 따르면 오는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리는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공식행사에서는 빠지고 대신 식전행사에 배치됐다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공식행사에서 빠진다?
“공식행사에서 부르려면 ‘5·18기념가’여야 하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런 공식적인 노래도 아닐뿐더러, 30주년에 맞춰 여러 행사를 준비하다 보니 시간문제도 있어서 이렇게 조치한 것이다.”
“30주년 행사다 보니 방송 3사 모두 중계방송을 하기로 하면서, 방송 시간을 염두에 둔 결정이기도 하다.”
“사실상 행사 전에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공식 행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5·18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제외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게 ‘역사’가 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행사에서 슬그머니 빼 버린 데 대한 국가보훈처의 해명이다. 해명치고는 참 궁색하다. ‘공식적인 노래’가 아니어서 문제가 된다면 지금이라도 ‘공식 노래’로 지정하면 될 일인 것이다.
이에 대해 광주 지역의 5·18 관련 단체 등에서 ‘단순한 행정상의 문제가 아닌 5·18의 가치를 축소하고 훼손하려는 정부 차원의 반 5·18 정책’이 아니냐, ‘5·18의 혼을 박제화하려는 정치적 의도’라며 반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항쟁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와 울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사족이다. 이 무겁고 웅혼한 노래가 함축하고 있는 것은 역사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희생 의지다. 가사의 단순하면서도 굳건하고 분명한 전망, 희생을 불사하는 다짐에서 드러나는 비장미, 사자(死者)의 목소리가 빚어내는 깊고 그윽한 떨림은 서른 해쯤의 시간을 무화하고도 남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난해 12월에 나는 그렇게 썼다.
“그러나 광주항쟁 30돌을 앞둔 지금은 어떤가. ‘새날’은 여전히 오지 않았고, 함성도 더는 뜨겁지 않다……. 지난 세월 내내 투쟁과 희생으로 쌓아 올린 모든 민주주의적 가치가 마치 부정적 유산처럼 치부되면서부터 바야흐로 ‘역사의 퇴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와 ‘상식’마저 실종되어 버린 ‘역사의 길목 앞에 초라하게 서 있는 사람들 앞에 한 시대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체 무엇으로 다가올까.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공식 추모곡’으로 ‘오월의 노래’를 공모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도를 나는 ‘생뚱맞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기실 그것은 이 노래에 어린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 정권은 이 한 곡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도 ‘잃어 버린 10년’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서 이 노래도 지금까지 기를 쓰고 시행해 온 ‘지난 10년 지우기’에 포함한 것일까.
그러나 설사 ‘오월의 노래’가 새로 제정된들, 그것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신하여 온 국민이 부르는 노래가 될까. 4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항쟁을 ‘사태’로 이해하고 인식한다. 거기 덧칠한 부당한 이데올로기와 뼈아픈 지역감정의 상처 때문에라도 ‘광주’에 어린, 시대와 역사의 속살은 아직 연약하다.
새 노래가 국민의 노래가 되는 것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 이유다. 노래는 마음이고 정서다.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에는 피로 얼룩진 광주의 진실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 노래를 지우는 것은 필요한 일도 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걸 거듭 확인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는다.”
건널 수 없는 ‘역사와 인식의 간극’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슬그머니 ‘임을 위한 행진곡’ 퇴출에 나선 국가보훈처를 보면서 우리가 건널 수 없는 의식과 역사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꺼리는 이유는 훨씬 복잡할 터이다. 그러나 가사가 ‘살벌한 운동권 가요’라는 게 표면적 이유다.
살벌? 나는 둔감한 탓인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이 노래에서 ‘살벌’을 찾지 못하겠다. 동지의 부재를 통해서 노래하는 죽음은 단지 비장할 뿐이다. 사자는 깨어나 외치지만 그것은 ‘자신을 따르라’는 요구일 뿐, 아무것도 압박하지 않는다. 살벌했던 것은, 오히려 항쟁 동안 벌어졌던 군인들의 무차별한 살육이 아니었던가!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마르세유의 노래’)‘는 프랑스대혁명 때 의용군이 즐겨 부른 노래였다. 라 마르세예즈의 가사는 훨씬 직설적이고 전투적이다. ‘피의 깃발’, ‘야만적인 적군’, ‘적의 더러운 피’ 등의 선동적인 구호가 선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를 자랑하는 유럽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 프랑스는 이 노래가 상징하는 ‘역사성’을 버리지 않았다. 이 노래는 혁명 뒤 1795년에 국가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제정 때와 루이 18세의 제2 왕정복고 때에는 혁명과 연관되었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고 한다.
라 마르세예즈는 1830년 7월 혁명 후에 다시 공인되었다가 나폴레옹 3세 때 다시 금지되었고 다시 국가의 지위를 회복한 것은 1879년이 되어서였다. 격렬한 감정을 담고 있는 이 노래는 프랑스대혁명으로 확인한 프랑스인들의 자유와 평등, 박애의 정신을 지키고자 하는 장렬한 다짐의 노래로 읽힌다.
지우고 싶은 ‘소요와 사태의 기억’?
나폴레옹 제정 시기와 왕정복고 시기의 황제들에게 ‘프랑스대혁명’은 ‘단두대’와 함께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을 터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소요’과 ‘사태’에서 ‘민주화 운동’과 ‘민중항쟁’으로 자리매김한 5·18의 기억을 담고 있는 노래다. 이 노래를 꺼리며, 슬그머니 공식적인 자리에서 밀어내고 싶은 이들의 마음속에 5·18은 여전히 ‘소요’와 ‘사태’를 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서울시가 서울광장에 5·18 민주화 운동 30돌 기념행사를 하도록 허가를 내주고도 갑자기 기념행사 때 추모·분향을 하지 말라고 통보해 논란이 일고 있다’는 뉴스를 확인한다. 주최 측은 ‘서울시가 5·18 추모 열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모 분위기와 이어져 지방선거에 영향을 주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전하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서른 해 전에 무명의 시민들이 외쳤던 자유와 민주주의, 그 요구에 대한 ‘총칼의 응답’으로 점화된 항쟁에 대한 기억은 시나브로 박제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른 돌, 5·18 광주민중항쟁을 맞으면서 역사와 진보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본다.
2010. 5.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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