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로자 파크스의 동상 제막
지난 27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로자 파크스(Rosa Lee Louise McCauley Parks, 1913~2005)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로써 미 민권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는 의회의 스태츄어리 홀(statuary hall)에서 다른 유명 인사들과 함께 기념되는 최초의 아프리카계 여성이 되었다. [☞관련 글 : 로자 파크스, 행동과 참여]
‘의회의 승인과 기금’으로 만든 동상
오바마 대통령이 “체구는 작았지만 용기는 대단했다”고 기린 이 흑인 여성의 동상은 ‘1870년대 이후에 최초로 의회의 승인과 기금으로 만들어진’ 동상이라고 외신은 전한다. 이 동상의 제작은 2005년 가을 로자의 추도식에서 민주당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1일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 동상의 제작을 법적으로 승인했다. 그것은 로자가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버스 탑승 금지를 거부한 날로부터 꼭 50년 만의 일이었다.
50년 전인 1955년 12월 1일, 로자 파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버스 기사의 요구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버스 기사가 신고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그렇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때, 로자 자신도 자신의 행위가 역사를 바꾸는 전기가 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거부 행위’로 그녀는 체포되었고 이는 ‘버스승차 거부 운동’이라는 새로운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은 382일 동안 계속되었고 인종 분리에 저항하는 민권운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이 운동은 1960년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주도하는 대규모의 민권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동상은 모자와 테 없는 안경을 쓰고 꼿꼿이 앞을 응시하며 가방을 움켜잡고 앉은, 그날의 그녀 모습 그대로다. “그 버스는 내게 세상이 검은 세상과 하얀 세상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던 마흔두 살 여성의 결연한 의지가 배어나는.
이 제막식은 링컨의 노예해방령(1863) 이후 150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로 마무리된 워싱턴의 유명한 행진(1963) 이후에 50년 만이다. 제막식에 참석한 정치인들은 다투어 로자 파크스와 그녀의 투쟁을 기렸다.
“투쟁은 진행 중입니다. 목표를 향한 추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 Jim Clyburn(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
“우리는 여전히 노예제도의 불쾌한 유산을 근절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 Harry Reid(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우리는 너무 자주, 마치 몰랐던 것처럼 불의를 당연시하며 인생을 보냅니다. 로자 파크스는 항상 우리에게 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도 발행
로자는 몽고메리를 떠난 후 1965년에 아프리카계 미국 하원의원인 존 콘이어(ohn Conyers, 미시간)의 비서로 디트로이트의 사무실에서 일했다. 그녀는 1988년에 은퇴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했고 2005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로자는 1913년 2월 4일 앨라배마주 터스키지에서 목수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올해는 그녀가 태어난 지 100돌이 되는 해다. 미연방 우정국은 지난 2월, 그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기념우표 속의, 짙은 민트 빛의 재킷과 같은 색의 모자를 쓴 로자의 모습은 마치 조신한 주부 같아 보인다. 그러나 불의 앞에서 단호히 행동하고 참여함으로써 세상과 역사를 바꾼 이 조그만 여성 덕분에 세계는 좀 더 나아졌다. 기념우표와 동상은 역사를 바꾸어낸 그 여자에게 바치는 감사와 경의의 일부인 셈이다.
2013. 3. 2.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길 위에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목(碑木)’과 ‘잠들지 않는 남도’ 사이 (0) | 2019.03.25 |
---|---|
딱 하나 남은 성냥공장, 이대로 보내야 할까요 (6) | 2019.03.17 |
‘경축 현수막 사회’를 생각한다 (2) | 2019.02.20 |
‘돛과닻’, 혹은 ‘낮달’을 위한 변명 (2) | 2019.02.17 |
이효리와 ‘궁둥이 의자’, 혹은 ‘작업 방석’ (0) | 2019.02.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