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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2022년 가을, 코스모스

by 낮달2018 202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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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가을, 산책길의 코스모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10월 2일, 부곡동 골목길에 핀 코스모스

산책길(아침마다 이웃 동네로 한 시간쯤 걸어갔다 오는 아침 운동)마다 습관적으로 사진기를 들고 집을 나선다. 매일 만나는 뻔한 풍경이지만, 그걸 렌즈에 담으면서 미묘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곤 한다. 맨눈에 담긴 풍경은 순식간에 스러져 잔상만 남지만, 렌즈를 통해 기록된 풍경은 그 정지된 순간에 명멸한 정서를 인화해 주는 것이다.

 

1984년 초임 학교에서 할부로 펜탁스 수동 카메라를 장만한 이래, 2004년에 처음으로 똑딱이 디지털카메라에 입문했고, 2006년에는 마침내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를 손에 넣었다. 이 카메라는 이후 몇 차례 상급 기종을 거쳐 지금은 펜탁스 K-1Ⅱ가 되었다. 아마, 이 기종이 내 사진 이력의 마지막을 함께할 것이다. [관련 글 : 카메라, 카메라 / 카메라, 카메라(2)]

 

20년 넘게 사진을 찍었지만, 나는 여느 생활 사진가들이 보통 걷는 길을 걷지 않았다. 나는 사진 동호회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고, 사진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다. 나는 멋진 사진을 찍으려고 심야나 새벽의, 이른바 ‘출사(出寫)’도 경험하지 않았다.

 

해돋이나 해넘이, 또는 야경을 찍으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기회가 있으면 찍기는 했지만, 누구에게 보일 만큼 좋은 사진을 생산하지도 못했다. 나는 렌즈에 담을 만한 어떤 장면을 포착하는 센스나 안목 등, 사진가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사진기를 가까이 두고 일상과 일정을 기록하였을 뿐이다.

 

그래도 처음 디에스엘아르 카메라를 장만했을 때는 삼각대를 이용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때 안동 교외의 들에서 망원렌즈로 찍은 코스모스가 내게는 가장 공들여 찍은 사진이다. 그 이후에 가끔 그렇게 공들인 사진을 찍고 싶기는 하였으나 그걸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그건 사진가로서 내 자질이 부족함을 증빙하고도 남는다. [관련 글 : 가을, 코스모스, 들판]

 

우리 동네를 벗어나 이웃 가마골(부곡 釜谷)로 돌아드는 곧은 길 양옆에 해마다 코스모스가 핀다. 군락이라고 하기엔 모자라지만, 듬성듬성 피어나는 코스모스 꽃잎의 행렬은 이 가을을 확인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길 양쪽으로 볏논인데, 코스모스가 핀 왼쪽 길 아래는 땅이 급격히 낮아지며 볏논이 펼쳐지는데, 그 풍경의 끄트머리는 금오산이다.

▲ 2022년 9월 18일. 아직 들은 푸른색이 짙다.
▲ 2022년 9월 25일. 여전히 들빛은 푸르다.
▲ 2022년 10월 2일. 배경의 볏논 빛깔이 노래지고 있다. 멀리 실루엣으로 보이는 산이 금오산이다.
▲ 2022년 10월 6일. 볏논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 2022년 10월 13일
▲ 2022년 10월 15일.볏논의 노란빛이 조금씩 엷어지고 있다.
▲ 2022년 10월 22일. 이제 바야흐로 꽃은 쇠락기로 접어들었다. 배경의 볏논 빛깔도 노란색이 엷어졌다.

한동안은 들쑥날쑥하다가 10월 2일부터는 매일 그 코스모스를 촬영했다. 한동안은 줌 렌즈를 쓰다가 요즘은 가벼운 단렌즈를 즐겨 쓴다. 표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대상을 과장하지도 줄이지도 않고 가장 가깝게 재현해 주기 때문이다. 먼 데 풍경을 단번에 눈앞으로 끌어당기는 망원렌즈가 아니어도 좋은 이유다.

 

처음에는 거의 군락에 가깝게 무리 지어 피었던 코스모스는 불과 보름여 만에 쇠잔해졌다. 꽃의 배경이 된 볏논의 빛깔이 푸른색에서 노랗게 바뀌는 동안 벼는 익어가고, 코스모스는 시들어갔던 것이다.

 

강변의 체육공원에 가면 1천여 평에 걸친 코스모스밭이 마련되어 있다. 일전에 들렀더니 바람이 세게 불어서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시 찾을까 하다가, 주저앉은 것은 굳이 거기 있는 코스모스를 찍지 않아도 이 가을은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다. [관련 글 : 억새와 코스모스-구미 낙동강 체육공원]

▲ 익어서 고개를 숙인 벼가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2022년 10월 22일.
▲ 어느새 추수를 끝낸 논을 볏짚의 압축포장 사일리지가 지키고 있다. 2022년 10월 22일.
▲ 논길의 끝에 이제 시들어가는 강아지풀이 아침 햇볕에 반짝이고 있다. 2022년 10월 22일.

오늘은 날이 채 밝기 전에 집을 나서 산책길을 돌고 왔다. 못 본 새에 수확을 끝낸 논이 더러 눈에 띄었다. 여전히 무거워진 이삭을 드리운 볏논이 이어지는데, 드문드문 선 볏짚의 압축포장 사일리지가 벼를 베어낸 논을 지키고 있었다.

 

논길의 끝에 이제 시들어가는 강아지풀이 아침 햇볕에 반짝였다. 아직은 10월 중순에 그치지만, 가을은 시방 만추로 줄달음치고 있다.

 

 

2022. 10. 2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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