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베란다에서도 ‘곶감’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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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따온 감을 깎아서 베란다 건조대에 건 게 10월 5일이다. 그리고 옹근 3주가 지났다. 4주에서 한 달 정도면 곶감이 완성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어떤 것은 지나치게 말랐고, 어떤 건 아직이다. 어차피 상품 만드는 게 아니니 적당한 때에 따서 먹으라고 아내는 이야기한다. [관련 글 : 감 이야기(2) - 이른 곶감을 깎아 베란다에 걸다]
껍질을 벗겨 말린 감으로 ‘건시(乾枾)’라고 하는 곶감은 제사의 제물로 올리는 세 가지 과일인 ‘삼실과(三實果)’의 하나다. 전통적으로 제사에 올리는 삼실과는 대추와 밤, 그리고 감인데 감은 보통 홍시 또는 곶감으로 올린다. 여기에 배를 더하여 감과 배의 진설(陳設:제사나 잔치 때, 상 위에 음식을 법식에 따라 차림) 순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조율시이(棗栗柿梨)’, 또는 ‘조율이시(棗栗梨柿)’가 된다.
이 진설 방법을 두고 예법을 다투기도 했지만, 기실 이러한 차례상 예법을 다루고 있는 문헌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공연히 호사가들의 논쟁이 이어졌으나 ‘제례는 간소함이 본래 모습’이라는 대명제 앞에 꼬리를 내렸다. 골치 아픈 진설법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는 것이다.
국어사 자료에 나오는 ‘곶감’은 17세기 문헌에 나타난 ‘곳감’으로 처음 나타난다. 이는 ‘꽂다’라는 고어인 ‘곶-’에 ‘감(柿)’이 결합한 것이다. ‘곳감’에서 ‘곳’의 받침이 ‘ㅅ’이 된 것은 당대에는 받침 위치에서 ‘ㄷ’으로 소리 나는 ‘ㅈ’을 ‘ㅅ’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감은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1236)에 기록되어 있어 고려시대부터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 곶감은 문헌에 보이지 않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비로소 나타난다. 1682년(숙종 8) 중국에 보낸 예물목록 중에 보이고 19세기 초의 문헌 <주영편(晝永編)>(정동유가 천문·역상·풍속·제도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고증·비판하여 1805년에 저술한 고증서)에는 종묘 제사 때 바치던 계절 식료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빙허각 이씨가 가정 살림에 관해 저술한 조리서인 <규합총서>(1809)와 조선시대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푸는 수작·진연·진작·진찬 등 연회의 경위를 기록한 의궤인 <진연의궤(進宴儀軌)>, 조선 후기 왕·왕비·왕대비 등에게 진찬을 기록한 의궤인 <진찬의궤((進饌儀軌)> 등에도 곶감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규합총서>는 곶감 만드는 법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8월에 잘 익은 단단한 수시(水枾; 물감)를 택하여 껍질을 벗기고 꼭지를 떼어 큰 목판에 펴놓아 비를 맞지 않도록 말린다. 위가 검어지고 물기가 없어지면 뒤집어놓고, 마르면 또 뒤집어 말린다.
감이 다 말라서 납작해지면 모양을 잘 만들어 물기 없는 큰 항아리에 켜켜이 넣는다. 감 껍질을 같이 말려 켜켜로 격지를 두고 위를 덮는다. 그런 다음에 좋은 짚으로 덮어 봉하여 두었다가 시설(枾雪:곶감 거죽에 돋은 흰 가루)이 앉은 뒤에 꺼내면 맛이 더욱 좋다고 한다.
감은 무게에 비하여 건조 면이 좁으므로 갑자기 말리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건조가 지나치면 과육이 굳어지고 건조가 부족하면 곰팡이가 생기기 쉽다. 언젠가 기온이 덜 떨어진 때에 베란다에 널어놓은 곶감에 곰팡이가 슬어서 버린 적도 있다.
구미와 가까운 상주는 쌀·누에고치·곶감을 많이 생산하여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리는데 전국 곶감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조선 예종 때 상주 곶감이 임금에게 진상됐다는 기록도 있으니 예부터 곶감 생산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어릴 적에 가끔 구경하게 되는 곶감은 딱딱하게 굳은 감에 하얀 가루가 묻어나는데, 10개씩 짚으로 십자 모양으로 엮은 것이었다. 아이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갈무리해 둔 곶감을 할머니는 비밀스럽게 꺼내어 칼로 잘라서 주시곤 했다.
요즘 곶감은 백과사전에 나오는 옛날 곶감과는 다르다. 과육이 딱딱해질 만큼 건조를 제대로 한 옛날 곶감과 달리 요즘은 말라서 비틀어지지 않고, 감의 원형을 지닐 뿐만 아니라, 구미를 자극하는 붉은빛을 유지한다. 그렇게 좋은 모양을 유지하면서도 과육이 말랑말랑해야 상품으로 치기 때문이다.
예전과 달리 삼실과로 반드시 제사상에 올라갈 일도 별로 없으니만큼,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모양과 빛깔을 내는 데 집중하니 자연히 값도 올라간다. 제수용보다는 요즘은 선물용으로 더 많이 팔리지 않나 싶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때문에 생략하게 된 옛 동료들 모임 대신 상주 곶감을 보내주어서 맛있게 먹었었다.
지난 8월에 들른 상조 노악산 남장사 아래 남장동 곶감 마을이 있었다. 상주 곶감의 26%를 생산하는 곶감 마을은 2005년에 곶감 생산 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쯤 거기에는 온 마을이 익은 감으로 발갛게 물들고, 감나무 단풍이 화사하겠다. 남장사 장승도 새로 만나고, 감나무 단풍도 볼 겸 나는 시방 상주행 날짜를 저울질하고 있다.
2022. 10.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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