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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베네치아, 도시 전체가 특별한 건축 걸작

by 낮달2018 2022.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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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유럽 ⑨] 오버투어리즘 이전, 물의 도시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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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광장 쪽에서 바라본 바다. 연안의 말뚝과 저 멀리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이 보인다.
▲바다 쪽에서 바라본 두칼레 궁전(종탑 오른쪽). 왼쪽 종탑은 산 마르코 대성당의 종탑으로 20세기에 건립되었다.

여행 6일 차인 4월 20일, 로마의 호텔에서 조반을 들고 버스로 베네치아로 이동했다. ‘베네치아(Venezia)’는 영어 발음인 ‘베니스(Venice)’로 더 많이 불린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베니스의 상인’이고, 거기서 치르는 영화제도 ‘베니스 영화제다.

 

베니스 말고 베네치아, 석호와 함께 1987년 세계유산 지정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의 주도(州都)로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도였다. 물의 도시고,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에는 하루 최대 6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드나들며, 연간 2천 2백만에서 3천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방문하는 세계적 관광지가 되었다.

 

육지로부터 약 3.7 km 떨어진 베네치아의 원도심은 5만㎡에 이르는 베네치아 석호(潟湖) 안쪽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석호는 모래가 해안을 따라 운반되다가 바다 쪽으로 계속 밀려 나가 쌓여 형성되는 둑 모양의 지형인 사취(모래톱) 등이 발달해 만(灣)의 입구가 좁혀져 형성되는 해안지형이다. 세계적으로는 바닷물로 이루어진 석호가 보편적으로 발달했는데 우리나라엔 경포(鏡浦)가 대표적인 석호다.

▲1575 ~ 76년에 맹위를 떨쳤던 페스트 유행이 치유되기를 기원하여 레덴톨레(구세주)에게 봉헌된 교회. 레덴토레 성당
▲산 조르조 마조레성당. 산 마르코 광장 남쪽 해상에 떠 있는 산 조르조 섬에 있는 교회로 1566년과 1610년 사이에 건축되었다.

인구는 2018년 기준 26만여 명이지만, 이 중 55,000명이 구시가(Centro storico)에 살고 나머지 인구는 육지의 신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의 중심지는 베네치아의 창구인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국제공항과 산타 루치아 기차역이 있는 신도시로 옮겨오고 구도심은 관광지로 기능한다.

 

구도심은 도시 전체에 수로가 뚫려 배를 타고 다니는 물의 도시로 베네치아 구도심에는 자동차 도로가 하나도 없다. 구도심 내 이동 수단은 도보와 수상택시, 수상버스(바포레토)뿐이다. 이들도 운행 시 발생하는 파도로 인한 도시 균열을 막으려고 좁은 운하에서는 7km/h, 넓은 곳에서는 11km/h 정도로 속도 제한을 두고 있다고 한다.

 

물의 도시, 도시 전체가 특별한 건축 걸작

 

베네치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물의 도시’, ‘아드리아해의 여왕’, ‘가면의 도시등 여러 별명을 가진 이 도시는 도시 전체가 특별한 건축 걸작으로, 베네치아와 석호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산마르코(San Marco) 광장, 두칼레(Ducale) 궁전, 자니폴로 스쿠올라 디 산마르코(Zanipolo and Scuola di San Marco), 크라르치 스쿠올라 디 산로코(Crarci and Scuola di San Rocco), 산 조르조 마조레(San Giorgio Maggiore) 성당 등과 같은 베네치아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뛰어나게 아름다운 기념물들이 많다.

▲ 산 마르코 광장 입구에는 베네치아의 상징인 사자와 에마뉴엘레 2세의 동상이 있는 오벨리스크 기둥이 서 있다 .
▲산 마르코 광장 남쪽의 유명한 플로리안 카페에서 광장에 내놓은 의자와 식탁에도 손님이 가득했다 . 오른쪽 건물이 산 마르코 대성당.

우리는 배편으로 베네치아에 들어가 곧바로 산마르코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곤돌라 선택 관광을 신청하지 않은 우리 내외는 일행이 곤돌라를 타는 동안 산 마르코 광장에서 자유시간을 즐겼다. 산 마르코 성당 앞 광장은 엄청 넓었으나 바글바글한 관광객들로 인파에 부딪힐 정도였다.

 

광장 정면의 입구에는 베네치아의 상징인 사자와 에마뉴엘레 2세의 동상이 있는 오벨리스크 기둥이 서 있었다. 광장 남쪽의 프로쿠라티에 누오베 (Procuratie Nuove)라 불리는 건물의 유명한 플로리안 카페에는 광장에 내놓은 의자와 식탁에도 손님이 가득했다.

 

베네치아의 수호성인 산 마르코에 봉헌된  산 마르코 대성당

 

광장 어귀에 있는 산 마르코 대성당은 비잔틴 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두칼레 궁전과 인접해 있다. 원래 두칼레 궁전에 소속된 성당이었으나, 1807년에 베네치아 대주교가 이곳으로 주교좌를 옮기며 바티칸 소유의 대성당으로 승격되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은 복음사가 마르코의 유해를 안장하려 건축된 새 성당이었다 . 중앙 아치 위에 마가의 상과 날개달린 사자상이 있다.
▲산 마르코 대성당 아치 위의 마르코(마가) 상. 아래는 복음서를 든 날개달린 사자.

대성당의 기본적인 골격은 1060년과 1100년 사이에 대부분 완성되었고, 뒷날 이루어진 공사들은 대부분 대성당을 장식하거나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서였다. 고딕 양식의 돔으로 꾸며진 성당을 덮고 있는 황금 모자이크를 만드는 데는 몇 세기나 걸렸다고 한다.

 

산마르코 대성당이 11세기에 ‘황금 교회’라고도 불린 것은 대성당의 아름다운 디자인, 황금 모자이크는 물론, 베네치아의 부와 명성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성당은 당시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독창적인 방식으로 비잔틴 양식과 이슬람 양식을 섞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 마르코(San Marco)는 기독교 최초의 복음서로 알려진 ‘마르코의 복음서(마가복음)’의 저자이자 초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는 물론 동방 정교회에서도 공경하는 성인으로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인물이다.

 

원래 베네치아는 로마 병사 출신으로 순교한 ‘아마세아의 성 테오도르’를 수호성인으로 모셨다. 테오도르에게 봉헌된 성당은 지금의 산 마르코 대성당 부근에 세워졌다. 828년 베네치아 상인들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매장되어 있던 성 마르코의 유해를 도굴하여 베네치아로 옮기면서 베네치아 도제(공화국의 지도자)는 성 마르코를 베네치아의 새로운 수호성인으로 선언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은 마르코의 유해를 안장하려 건축된 새로운 성당이었다.

▲두칼레 궁전은 1,100년 (679~1797) 동안 베네치아를 다스린 120 명에 이르는 베네치아 도제의 공식적인 주거지였다 .
▲두칼레 궁전(왼쪽)과 감옥(오른쪽)을 잇는 탄식의 다리(가운데). 카사노바도 이 다리를 건너 감옥에 갇혔다.
▲언제 결혼식을 치렀는가, 산 마르코 광장 곁 바닷가에 갓 결혼한 젊은 부부가 걸어가고 있다.

날개 달린 사자는 산마르코를 상징하고 보호하는 신물이었다. 그래서 산마르코의 유해가 베네치아로 이전되면서 날개 달린 사자도 함께 들어오게 되어 베네치아의 상징이 되었다. 베네치아 곳곳에서 날개 달린 사자를 볼 수 있는 이유다. 산타 마르코 대성당의 중앙 아치형 위에는 날개 달린 금빛 사자상이 있고, 맨 위에는 수호성인 성 마르코 상과 금빛 날개를 단 천사상이 있다.

 

베네치아 도제의 공식 주거지 두칼레 궁전과 대운하

 

산 마르코 대성당 옆 바닷가 쪽으로 있는 두칼레 궁전은 1,100년(679~1797) 동안 베네치아를 다스린 120명에 이르는 베네치아 도제의 공식적인 주거지였다.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14~1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에서 가장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두칼레 궁전에서는 산 마르코 광장은 물론, 베네치아 석호를 동시에 바라보며 즐길 수 있다.

 

궁전의 외관은 흰색과 분홍의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회랑은 36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둥 가운데 짙은 색의 기둥 2개가 있는 곳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사형집행은 궁 앞 작은 두 기둥 사이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두칼레 궁전에는 평의회, 원로원, 재판소, 무기고가 있으며, 감옥은 궁전과 다리로 이어지는데, 이 다리가 ‘탄식의 다리’다.

 

두칼레 궁전의 평의회에서 유죄판결 받은 사람은 다리를 건너 감옥으로 가게 된다. 이들은 다리를 건너면서 작은 창으로 내다보이는 베네치아 풍경을 보면서 한숨을 내쉰다고 하여 ‘탄식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유명한 바람둥이로 베네치아 출신의 카사노바도 이 다리를 건너서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곤돌라 관광이 끝난 뒤에는 수상버스로 섬의 운하를 따라 한 바퀴 돌았는데, 그리 넓지도 않은 운하 사이로 재빠르게 스쳐 가는 배들이 신기했다. 물길 좌우에 펼쳐지는 시가지는 낡고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이 도시의 역사를 짐작게 해 주었다.

▲우리는 수상버스를 타고 베네치아의 운하를 한 차례 돌았다. 버스의 승객들은 모두 우리 일행이다.
▲유명한 리알토 다리. 이 다리가 리알토라는 걸 깨닫는 데 꽤 오래 걸렸다. 광고판 때문이다. 전체 모습은 아래를 보라.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 베네치아 에 있는 카날 그란데 를 연결하는 다리 네 개중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 베네치아는 수많은 운하의 물길이 도로를 대신하는 특이한 도시구조를 갖고 있다. 주변의 건물이 오래되고 낡았다.

우리는 들어갈 때와 같은 순서로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왔다. 선착장에 줄지어 서서 장사꾼들이 우리말로 호객하는 풍경은 가관이었다. 우리가 거쳤던 유럽 곳곳에 넘치었던 한국인 관광객들은 지금 생각하면 한국의 경제력을 일정하게 드러내는 지표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밤, 우리는 신시가지의 좀 괜찮은 호텔에서 묵었다. 건물이 낡지도 않았고 조식으로 나온 메뉴도 좋았다. 단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 물으니 돈을 내야 한다고 해서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일찍 우리는 스위스의 취리히를 향해 떠났다.

 

베네치아와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이제 오버투어리즘 문제는 관광지의 심각한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사진은 베니스 두칼레 궁전 부근의 인파.

연간 2천 2백만에서 3천만에 가까운 관광객이 찾는 베네치아에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 공해 등을 심각해지자, 유네스코가 위험에 처한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베네치아를 추가하기를 검토한 것은 2017년, 우리가 다녀온 이듬해였다. 유네스코는 지속 가능한 관광 정책을 지원하고, 베네치아에서 운행하는 유람선들의 수를 제한하기로 했다.

 

관광지의 수용 한계를 초과하여 지나치게 많은 여행객이 들어오며 발생하는 문제들을 의미하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문제는 이제 골칫거리가 되었다. 넘치는 관광객으로 말미암아 통행에 지장은 물론, 물가가 오르고 소음 피해가 발생한다. 문화재 훼손과 관광객 대상의 범죄도 급증하는 추세가 되면서 원주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피해가 적지 않다.

 

베네치아는 2019년 5월부터 당일치기와 유람선 관광객에게 1인당 3유로(약 3800원)의 입장료를 부과하기로 했었다. 성수기 입장료를 8~10유로로 올리고 2020년부터는 입장료를 6유로로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했었다. 종전 선박과 호텔 투숙객에게 부과하던 입항세와 숙박세에 당일치기 관광객을 상대로 한 입장료가 더해진 것이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관광이 끊어졌다가 올해야 재개되었다. 베네치아시 당국은 관광객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2022년 여름부터 방문 예약제를 도입하고, 2023년 1월부터는 당일치기 관광객에게는 1인당 10유로, 우리 돈으로 입장료 1만3천 원을 부과한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관광객들에게도 절제가 필요한 시대가 된 셈이다.

 

 

2022. 7. 30. 낮달

 

드디어 유럽 패키지 여행을 마감할 때가 되었다. 2016년 4월 22일 돌아와 2022년 7월 23일까지 모두 2283일 만이다. 애당초 <오마이뉴스> 기사로는 5편을 썼고, 그 이후에 다시 4편을 더 쓴 것이다. 컴퓨터 ‘유럽여행’ 폴더 안에 잠자고 있던 사진들을 꺼내 그 여행을 복기한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어떤 사진은 마음에 차지 않기도 하지만, 그런 화각과 장면 하나하나도 여행의 일부라고 여기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옛 기억을 되살리고, 사진에 기록된 날짜를 역산하여 쓴 글이이서 여정의 일부는 실제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한 개인의 여행 편력의 일부일 뿐, 내 글에 지켜야 할 공식성 따위는 없으니 말이다. 

 

2022. 7.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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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유럽 ⑥] 초보 여행자 바티칸에서 길을 잃다

[처음 만난 유럽 ⑦] 스위스의 루체른, 리기산

[처음 만난 유럽 ⑧] 주마간산 스위스, 취리히에서 반나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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