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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잠깐 머물렀어도 ‘청정 스위스’의 ‘이미지’는 바뀌지 않았다

by 낮달2018 2022.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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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유럽 ] 주마간산 스위스, 취리히에서 반나절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이동하면서 차창으로 찍은 스위스의 시골 풍경. 이 풍경은 우리 마음속의 스위스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럽 패키지여행의 마지막 날(2016.4.21.), 우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출발하여 오후 4시께에 스위스의 취리히에 닿았다. 관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취리히 출발하는 KE918편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공항으로 이동할 때까지 두어 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취리히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취리히주의 주도다. 취리히호의 북쪽 끝에 있는 이 도시의 공식 언어는 독일어다. 취리히호는 기원전 8000년경 빙하기 때 알프스에서 내려온 산악빙하가 녹아 생긴 것으로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관광선 유람코스가 있다고 했다.

▲그로스 뮌스터 대성당. 뮌스터 다리(오른쪽) 이쪽에는 프라우 뮌스터 성당이 있다.
▲리마트강 이쪽에서 바라본 그로스 뮌스터 대성당.
▲리마트 강의 뱃놀이. 뒤쪽에 그라스 뮌스터 대성당이 보인다.

가이드는 우리를 프라우 뮌스터 성당과 그로스 뮌스터 대성당의 위치까지만 안내해 주었고, 이후 아내와 나는 제각각 편한 대로 호수와 이어지는 리마트강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우리가 배회한 거리는 취리히를 대표하는 번화가로 반호프 거리라고 했다.

 

‘성모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프라우 뮌스터 성당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길쭉하게 세워진 청록색 첨탑의 건물이었다. 애당초 수녀원으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12~15세기에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개조되었다. 내부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져 있는데, 특히 남쪽의 장미창과 성가대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이 노년에 제작한 작품이라고 했다.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우리는 눈요기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길쭉한 청록색 첨탑이 특징적인 프라우 뮌스터 성당. 촬영이 금지된 내부엔 스테인드글라스와 프레스코 벽화가 유명하다.
▲프라우 뮌스터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샤갈의 작품 ⓒ두피디아
▲프라우 뮌스터 성당의 프레스코 벽화

프라우 뮌스터 성당에서 뮌스터 다리를 건너면 대성당 그로스 뮌스터다. 두 성당은 리마트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그로스 뮌스터는 스위스 최대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며 16세기 초 츠빙글리가 주도한 스위스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로스 뮌스터를 먼빛으로만 보고 말았다. 탑의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취리히 시내는 물론 호수와 알프스까지 볼 수 있다는데 왜 거길 따로 가지 않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우리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강변 공원의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한 무리의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초로의 여성들이었는데 우리와는 다른 경로로 취리히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서로 여정에 관한 이야길 주고받다가 그들은 스위스가 정말 좋다고 말했고, 루체른과 리기산 등 스위스에 머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도 거기 동의했다.

▲취리히의 트램
▲취리히호 호숫가에서 쉬는 시민들
▲취리히호. 취리히호는 기원전 8000년경 빙하기 때 알프스에서 내려온 산악빙하가 녹아 생긴 것으로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는 번화가를 거슬러 오르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짙은 청색의 트램이 끊임없이 오가는 길을 낯설게 바라보다가 한 번쯤 그걸 타 볼 기회가 없음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취리히호 호숫가에서 쉬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도 여유로 넘쳤다. 나는 그들의 여유를 은근히 부러워하면서 시기했다.

 

스위스는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과서에서 배운 이미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 시절 달력에서 지겹도록 만난, 비록 단편적인 이미지에 불과했지만, 눈 덮인 알프스나 그림 같은 마을 풍경으로 우리는 스위스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스쳐가면서 본 스위스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스위스와 달리 느껴지지는 않았다. 

 

스위스로 들어와 버스 차창 밖으로 지나는 풍경, 눈 덮인 알프스나, 초원에 장난감처럼 모여 있는 마을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맞아, 이게 스위스야. 우리가 옛날부터 배운 것과 다르지 않구먼, 하면서 말이다.

▲ 하얗게 눈 덮인 산과 그림 같은 집이 스위스를 분명하게 환기해준다.

나는 연신 감탄하는 아내에게 언젠가 스위스를 다시 찾자고 기약했지만,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다. 그게 그리 쉬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는 걸 말이다. 돌아와 확인해 보니 스위스 여행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경비가 비쌌는데, 그건 스위스의 물가 탓이라 했다.

 

그리고 벌써 6년이 흘렀다. 우리 내외는 2018년 아이들과 함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했고, 나는 2020년 1월에 두 번째 중국 임정 답사를 다녀왔다. 그리고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가 꽁꽁 묶였다. 지금 겨우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여전히 장거리 여행은 어렵다. 본격적인 노년기로 접어들면서 언제쯤 다시 나라 밖 여행을 할 수 있을지를 나는 남의 일처럼 가늠해 보곤 한다.

 

2022.7.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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