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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by 낮달2018 2021. 3. 20.

▲ 경기도 파주의 혁신학교 해솔중학교. 학생이 즐거워야 교사도 즐겁다. ⓒ <프레스 파주>

지난해 지방선거 결과 여섯 명의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진출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서울, 경기, 강원, 전북, 전남, 광주 등 이들 진보 교육감들이 반년 남짓 이룬 성과들도 알려질 만큼은 알려졌다. 일제고사와 시국선언 교사 징계 문제, 무상급식 등의 현안에 있어서 이들이 보여준 차별성은 지난 반세기 동안 난공불락이었던 교육계에 이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충격을 웅변한다.

 

경기도에서 서울에서 그리고 강원과 호남지역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루어내고 있는 교육적 변화를 지켜보면 영남, 그것도 골수 티케이(TK) 지역의 교사는 씁쓸함을 금치 못한다. 현재 지역과 무관하게 전개되고 있는 교육계의 변화는 대구·경북의 뿌리 깊은 후진적 특성의 결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6·2 지방선거 이후의 교육적 변화

 

같은 영남권이라도 피케이(PK)로 불리는 부산·경남은 훨씬 개방적인 고장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지난해 6·2 지방선거의 결과를 보면 이 점은 자명해 보인다. 무소속이긴 하지만 내용에서 ‘친민주당’인 김두관 후보를 당선시킨 곳이 경남이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을 재선의원으로 만들어 준 곳도 경남이다. 민주당 시장 후보 김정길이 44.6%를 얻은 곳은 부산이다.

 

부산·경남에 비기면 김범일 대구시장(72.9%)과 김관용 경북지사(75.4%)의 득표율은 가히 경이라 할 만하다. 마땅한 맞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 해도 ‘몰표’의 혐의는 벗을 길이 없다. 여당의 ‘텃밭’이라는 평가는 이 지역 생래의 보수성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정치 사회적 변화를 쉬 받아들이지 못하는 완고한 보수적 정서는 교육에서도 다르지 않다. TK 지역은 교육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이루어진 교육계의 변화에서도 무풍지대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러 가지 내용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교육 자치는 교육계의 지형을 조금씩 바꾸어내는 첫걸음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구에서는 그나마 일부 변화가 있었지만, 경북에서는 아무런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간접선거의 형식으로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뽑게 되면서 전교조를 포함한 진보 진영은 각 시도에서 교육위원 진출에 성공했지만 유일하게 경북만이 이에 실패한 것이다.

 

세 번에 걸쳐 후보를 냈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지역의 보수성을 탓할 일이 아니라 객관적 역량 부족 탓이라고 정리하긴 했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올해 교과부가 임용제청을 거부하면서 떠오른 평교사 출신 교장 임용도 다른 시도에서는 간헐적으로 있어 왔지만, 대구 경북에는 아직 전례가 없다.

 

같은 영남권이면서도 경남이 보여주는 변화에 비기면 대구·경북의 정체(停滯)는 더 두드러진다. 진보 교육감 체제가 아니면서도 경남은 무상급식에도 발 빠르게 대응, 유치원과 초·중학교의 무상급식 비율이 100%에 이르고 고등학교도 55.6%나 된다. 특히 공립으로 설립한 ‘대안학교’인 태봉고의 사례는 여느 시도에서도 보기 어려운 사례다.

 

변화의 무풍지대(?) 대구·경북

 

무상급식 시행 성적도 시원찮다. 대구에는 한 개 시군(달성군)의 초등학교만이 무상급식에 들어갔고, 경북은 유치원 100%, 초등 30.4%, 중학교 21.7%가 무상급식을 시행한다. 그나마 아예 시행하지 않는 대전, 울산지역도 있다는 걸 위안 삼아야 할는지.

 

그런 상황에서 진보 교육감은 ‘언감생심’이다. 각 지역의 진보 교육감들이 시행하는 ‘혁신학교’나, ‘학생인권조례’, ‘체벌 금지’ 같은 이야기도 강 건너 불구경일 뿐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온존해 온 관행과 질서를 그 일부에서나마 무너뜨리는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단지 그 변화가 자신과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인터뷰 기사(☞<프레시안> 기사)를 읽었다. 일부지만 학교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확인하는 기분은 각별하다. 어떤 변화도 용납하지 않을 듯한 이 완고한 교단에서 시나브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곧 ‘역사’일 터이기 때문이다.

 

김 교육감은 ‘혁신학교’의 시행과정에서 학교 변화와 혁신의 ‘가능성’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그 근거를 혁신학교의 교사들이 ‘교사들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로 인식하고 있는 걸로 들었다. 보통은 ‘학생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라고 하지 ‘교사가 즐겁고 행복한 학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교사가 즐겁고 본분을 다할 수 있어야 학생도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그는 깨달았다고 했다.

 

글쎄, 나는 ‘혁신학교’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경기도의 혁신학교는 ‘교사들과 관리자들의 마인드와 학부모의 참여 속에서 학교를 바꾸는 것을 원칙’이라고 했다. 민주적인 리더십과 목표 아래서 소속 교사들이 헌신성을 발휘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민주적 리더십과 구성원의 참여가 단위학교 운영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그 단순한 상식이 단위학교에서 실현되는 일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최소한 유능한 학교 관리자가 되는 일은 전체 교사들의 의견을 살피고 그들의 창발성을 끌어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이 단순한 ‘용인(用人)’과 ‘인간경영’을 실천하는 학교장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0여 년 전에 근무한 시골 학교에서의 몇 해를 내가 아주 따뜻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거기서 보낸 몇 해가 내 교직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면 소재지에 있던 그 학교는 조그만 중고 병설학교였다. 나는 학교 안에서는 연구와 교무부장 일을 번갈아 맡았고, 지역에서는 전교조 지회장으로 활동했다.

 

‘행복했던 학교’의 추억

 

교사들 가운데 조합원도 많았고, 합법화를 앞두고 전교조의 활동력이 매우 고양되어 있을 때였다. 우리는 거기서 민주적 리더십을 가진 학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교사들이 그리고 있는 학교의 모습에 대한 이해를 그와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흔치 않은 행운이었다.

 

그 전해부터 우리는 외부 강사를 초청한 강연을 특별 활동의 일부로 배치했다. ‘현대 종교의 이해’라 하여 신부, 목사, 스님을 불러서 종교의 존재 이유에 대한 강의를 들었고, 구성애 씨의 ‘성교육’이 호응을 얻고 있을 때는 그이 대신 대구의 여성단체에서 강사를 부르기도 했다.

 

그와 함께 한 교육활동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매년 이틀에 걸쳐 베푼 ‘학교 축제’였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아우르는 병설학교였고 여러 가지 여건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지만, 축제가 끝나면 교사들은 남다른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꼈다.

 

거기서 나는 지금도 안부를 나누는 제자들을 만났다. 인연이 있었던지 이태나 담임을 했는데, 이 녀석들은 졸업 후 10년 만에 나를 불러 성대한 동창회를 베풀어 주었다. 마음을 나누는 게 어떤 것인가를 새삼 다시 가르쳐 준 세월이었다. [관련 글 : 그 아이들과의 10년, 1998년에서 2008년까지]

 

그때만 해도 ‘컴퓨터 통신’ 시절이었다. 내가 천리안의 ‘참카페’에 올렸던 묵은 글 하나가 그 축제의 경위를 소개하고 있다. 1999년 가을이니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때의 동료들을 모두 흩어졌고, 예의 교장 선생은 몇 해 후 퇴임했다. 그 시절을 적은 옛글을 읽으면서 한갓진 감상에 젖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 교직 인생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던 시골 학교. ⓒ 두피디아

축제 이야기 셋

○○중고에서는 작년에 이어 이태째, 이틀간(11.2.~11.3.)의 학생 축제<○○제>를 베풀었습니다.

[…중략…] 남녀 교사 10여 명이 무대에 올라, 제대로 입도 맞추지 못한 상태에서 부른 ‘상록수’와 ‘내가 만일’은 상당히 의미 있는 순서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잔치에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무대에 섰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매우 흥미롭고 ‘보기 좋았다’는 생각을 하게 한 듯합니다.

[…중략…] 이번 축제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 셋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교육이 결코 인지적 영역이나, 지식의 일방적 공급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과, 전교조의 저변 확대가 학교의 관행과 제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이야기들입니다.

1. ‘갑돌이’의 커밍아웃

연극을 지도했던 최○○ 선생이 아이들과 만든 연극 ‘어머니께’는 G.O.D의 노래 ‘자장면’에서 힌트를 얻은 이야긴데, 한 문제아와 어머니의 관계를 다룬 소품입니다. 헌신적인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지자, 그제야 ‘이건 아니라’라고 울부짖는 문제아의, 어쩌면 뻔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연극이 가진 선동적 전달성은 공연히 저의 코허리도 시큰하게 만들 만큼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 연극의 주연으로 열연한 녀석이 바로 ‘갑돌이(가명)’입니다.

이 녀석은 중학교 3학년 들어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학교를 중도 작파하겠다고 덤비기까지 하는가 하면, 교사의 꾸중에 격분하여 봉걸레 자루로 유리창을 깨려는 ‘난동’(?)을 부리기도 한 녀석이어서 부모님은 물론 교사들의 속깨나 썩이는 놈이었지요.

이 녀석의 열연은 자기 이야기라는 생각 탓이었는지 아주 출중했는데, 이날 학교로 찾아온 그 어머니는 연극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몇몇 여학생도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습니다.

발표회가 끝나고 시작된 자유발언대에서 녀석은 다시 2층 창문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자신의 잘못을 줄줄이 고백하면서, ‘지켜봐 달라’, ‘분명히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절규(?)했습니다. 이른바 한 문제아의 ‘개과천선 선언’이었던 셈이죠. 자신을 모두들 앞에서 고백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인한다는 의미에선 요즘 유행하는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과 진배없는 고백이었습니다.

물론 녀석의 의지와 선언이 얼마만큼 실천된 것인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심심파적으로 시작한 특기 적성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이 때로는 아이들의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축제는 분명하게 시사해 주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2. 갑순이의 개안(開眼)과 통곡

갑순이(가명)는 중3이지만, 지금껏 읽고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이태나 국어를 가르쳤지만, 말하기 평가 시간마다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글씨를 쓴다고 쓰긴 하지만, 요령부득의 단순한 ‘기호’만을 그렸던 아이입니다.

이 아이, 역시 연극을 지도한 최 선생과 담임선생님이 매일 일과 후 불러서 ‘읽기’를 지도했습니다. 얼마 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날부터 갑순이는 예의 ‘기호’를 ‘문자’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아이들 동화책을 읽어내면서 ‘재미있다’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합니다.

그리고 이번 축제 자유발언대에 출연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무려 사흘 동안이나 애써 준비하여 드디어는 다른 출연자들이 원고를 읽는 데 반해, 암송한 원고를 또록또록한 목소리를 외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의 놀라움은 학생이나 교사가 다르지 않았을 터입니다.

그 아이는 자기가 읽을 수 없었는데 선생님께서 지도해 주셔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로 선생님에게 가장 큰 찬사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예 발언을 마치고는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답니다. 그 통곡 속에서 그 아이는 감사를 드려야 할 선생님이 많았는데, 그것을 다 말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토로했더랍니다.

어느 날, ‘문자’를 하나의 언어로 이해했을 때, 그 아이가 느낀 세계는 얼마나 달라 보였을지. 아마 그 아이는 비로소 그 세계에 친근하게 이야기를 붙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사랑을 느꼈을 터입니다. 모든 행사를 끝내고 저와 교장 선생님은 이 아이 하나만으로도 이번 축제는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3. 학생의 날과 ‘독재정권’

11월 3일, 예년처럼 기념식을 치렀습니다만, 올해는 작년보다 더 각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도에 이어 올해도 무슨 기념품을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선물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기념품은 학교에서 준비한다고 하여, 교사들이 추렴하여 빵을 하나씩 제공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를 학생들에게 알리던 학생(사회자)은 거기다 ‘우유’까지 보태고 학생들의 박수를 유도함으로써, 바보 같은 교사들은 꼼짝없이 우윳값까지 덮어쓰고 말았고, 이에 교장 선생님 가로되, ‘요새 아이들이 선생보단 머리가 좋다.’고 단정하시기도 했습니다.

학생 대표가 나와서 읽은 ‘학생의 날의 유래와 역사’는 물론, 교사들이 준비해 준 것이었습니다. 정작 낭랑한 목소리로 ‘그동안의 독재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서, 학생운동의 성장을 두려워한 나머지……학생의 날을 평가절하……’ 운운하는 구절을 들으면서,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습니다.

전교조의 성장이, 그리고 그 저변 확대가 결코 깨질 것 같지 않던 완강하고 보수적인 학교 운영의 제도와 관행들을 허물어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저는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자유발언대 심사에서 교사들은 모두가 흔쾌히 갑순이에게는 1등상을, 그리고 갑돌이에게는 2등상을 주자는데 동의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시행해낼 주체들, 즉 교원들의 헌신과 자발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개혁이나 혁신은 공염불일 뿐이다. 10년 전 한 시골 학교에서 이룬 작은 성공 사례는 개혁 주체의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하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듬해 나는 학교 만기로 인근 시군으로 전보되었다. 10년이 훌쩍 흐르면서 나는 세 학교를 옮겨 다녔지만, 그런 성취와 행복감을 다시 맛보지는 못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학교는 마치 변화의 전면에 몰린 형국이다. 전임 정부의 그림자를 지우기라도 하려는 듯 학교는 시방 강파르게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진보 교육감을 낸 시도 교육청에서는 ‘혁신학교’ 등의 학교 개혁이 시도되고 있지만, 경북도교육청이 내세운 구호는 ‘명품교육’이다. ‘교육이 무슨 가방인 줄 아나 봐’ 같은 비아냥거림이 아니더라도 ‘명품교육’은 그 이름부터 민망하다. ‘명품처럼 훌륭한 교육’이라는 뜻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그걸 담보할 구체적 방법론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새 학년도를 시작하면서 그게 단지 희망에 그칠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막연하게 그려본다. 학교 운영의 민주적 리더십, 학교 교육의 목표와 상(像)을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그런 학교를. 그리하여 교사도 아이들도 즐겁고 행복한 학교를.

 

2011. 3.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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