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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나는 매일 ‘건넌방’으로 출근한다

by 낮달2018 2022.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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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의 일상’을 견디는 법

▲ 처가 안마당 텃밭에 무꽃이 피었다 . 올 농사는 여기서 짓기로 했지만 .

처음으로,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지난 3월 1일, 지역 시민단체를 따라간 답사의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문득 내일 출근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나는 마주 앉은 후배 교사에게 으스댔다. 내일 출근해야지? 난 안 해도 된다네.

 

3월 한 달쯤은 그런 기분이 쏠쏠했다. 일요일에 무리하더라도 월요일 출근을 염려할 일이 없었고, 주중에 과음해도 다음 날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먼 길을 떠나면서도 시간을 다투지 않아도 되었다. 그게 ‘은퇴자의 여유’였던 것이다.

 

느슨해지는 ‘시간의 경계’

▲ 시간의 여유는 시간관념을 느슨하게 만들어준다. ⓒ pixabay

그런데 시간이 많다는 것과 시간을 제대로 쓸 줄 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시간 여유가 있다는 게 시간관념을 느슨하게 하는 건 분명하다. 전에는 알뜰하게 나누어 썼던 한정된 시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시간이 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나는 글쓰기가 더디다. 허두를 떼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그걸 제대로 전개해 마무리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서술보다는 일관되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시하다 보니 그렇다. 여러 차례 퇴고하는데도 불구하고 초고부터 공을 들이다 보니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번 초를 잡으면 그걸 매조지는 시간까지 다른 일은 제쳐두는 편이므로 쉬어도 다른 일을 시작하지 못하면서 시간만 까먹는 일이 잦다. 늘어지는 글쓰기 시간 때문에 계획적인 생활도 어그러진다. 엉거주춤하게 글 하나를 걸쳐놓고 집을 나서는 게 꺼려지니 도서관에 가는 일도 빼 먹고 넘어가기 일쑤다.

 

다음날 출근의 부담이 없으니 밤이 깊어도 무심하게 책상에 앉아 있을 때도 많아졌다. 10시만 넘으면 자리에 드는 습관이 무너졌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변하지 않으니 잠이 부족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오후에는 습관처럼 낮잠을 자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절대 짧지 않은 낮잠을 즐기다 보니 자연 밤잠을 설치게 된다. 한밤에 깨어나는 게 없었던 일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새벽에 깨어나면 새로 잠드는 게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다. 두어 시간 새벽잠을 설치고 나면 낮잠으로 그걸 벌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다시 낮잠 때문에 한밤에 숙면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얼마간 습관이 되어가고 있던 종이신문을 읽는 일도 들쑥날쑥해졌고 당장 필요한 책만 읽다 보니 책읽기도 온전치 않아 쌓이는 책이 한두 권이 아니다. 이래저래 꼬이고 어그러진 생활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물론 이는 단지 생활의 리듬이 잠시 엇박자를 내고 있을 뿐, 내 일상을 뒤흔들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그런 악순환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가능하면 낮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이 새 규칙은 얼마간 정착이 되어가고 있다. 낮에 졸음이 오면 간단히 조는 수준을 넘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 새삼, 시간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게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하나씩 상황을 복기해 보면서 일상을 바꾸어 가야 한다 싶으면서도 어차피 그게 삶이지 않은가 하는 맹랑한 생각이 똬리를 틀기도 한다.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하는 현직 때도 생각하지 못한 규칙적인 생활 따위가 무어 대수인가 하는 생각 말이다.

 

나는 건넌방으로 출근한다

 

일주일 가운데 외출하는 날이 얼마 되지 않으니 아내도 곤혹스러운 모양이었다. 하루 세끼 밥을 요구한다 해서 ‘삼식(三食)’이라고 불리는 은퇴자 얘기가 언뜻 떠올라 나 역시 좀 기분이 거시기하다. 그렇다고 해서 일없이 나가 공원에서 소일하거나 경로당을 드나들 나이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혼자서도 잘 노는’ 스타일이라는 건 진작 확인한 바 있지만, 내가 집 밖을 좋아하는 ‘활동형’이 아니라 집안에 처박혀도 답답해하지 않는 ‘은둔형’이란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어쩌다 집 밖을 나가려 하면 아내는 ‘답답하긴 하우?’ 하고 물을 정도다.

 

나는 원래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른 일이 없으면 쉬어도 집, 놀아도 집을 선호한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불편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데는 내 집이 제일이기 때문이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나는 안방에서 노트북이 있는 건넌방으로 출근(?)한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기서 종일 지낸다. 안방에서 건넌방은 거기서 거기지만 그것으로 나는 내 일상에 어떤 경계를 지우곤 한다.

▲아들 녀석이 사 보내준 기계식 키보드를 부지런히 두드려 대며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

탐탁지 않아 하던 아내도 그걸 받아들여 주었다. 아무 마련 없이 남편을 밖으로 내치는 게 다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주변에 은퇴한 친구가 따로 없으니 한낮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도서관을 찾거나 가벼운 산행을 하는 게 고작일 수밖에 없는데 날마다 그러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퇴직 두 달이 지나면서 달라진 환경에 얼추 우리는 맞추어가고 있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퇴직한 친구들은 안타깝지만 좀 멀리 있다. 이들과는 가끔 전화와 문자로 안부를 묻고 있는 수준이다.

 

봄도 어느덧 끝, 서둘러 여름이 오고 있다. 여름 지나면 가을, 그리고 이내 겨울이다. 한 해를 온전히 지내 봐야 연금으로 살아가는 은퇴자의 일상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을 듯싶다. 아내는 외출하고, 건넌방에서 아들 녀석이 사 보내준 ‘기계식 키보드’를 부지런히 두드려 대면서 나는 시방 매우 ‘열심히 살고 있다.’

 

 

2016. 5. 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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