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전교조 탈퇴’, 이제 ‘용기 내는 일’만 남았다?

by 낮달2018 2022. 5. 24.
728x90

‘교학연’이라는 요상한 단체에서 온 괴편지

▲ 오늘 내게 배달된 교학연 상임대표의 편지 .용기를 갖고 전교조를 탈퇴하란다 .

전교조 결성 22주년 기념일이 다가오는데, 아닌 ‘괴편지’가 학교로 날아들었다. 글쎄, ‘괴편지’라니까 은근히 가십의 냄새마저 묻어나는데, 기실은 가십거리도 못 된다. 사람들 사이의 전통적인 소통 수단인 ‘편지’ 앞에다 하필이면 ‘괴(怪)’자를 붙이는 까닭은 ‘낯선 사람, 낯선 단체로부터 온 편지’인데다가 그 내용이 또한 ‘완전(!) 황당’ 그 자체기 때문이다.

 

오늘 배달된 ‘괴편지’

 

아마 몇 해 전, 전교조 조합원 교사 명단 공개 때의 자료를 바탕으로 보낸 편지 같다. 편지를 받은 이는 이미 다른 학교로 이동한 교사를 포함,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이다. ‘스팸 이메일’은 들어봤는데 봉투에다 넣어서 보낸, 격식 갖춘 ‘스팸 편지’는 또 난생 처음이다.

 

편지의 제목은 ‘진정한 참교육을 원하시는 전교조 선생님께’다. 사연은 단순하다. 전교조에서 주장하는 참교육은 일부 집행부의 정치적 이념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불순하다. 전교조에는 북한 추종세력이 있고 본부의 자료에는 종북·친북적인 자료도 많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북한의 연방제 통일과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자료도 많다. 지금이라도 이들 정치적 목적을 가진 집단에 속지 말고 전교조를 탈퇴해 주기를 소망한다…….

 

발신인은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연합(교학연) 상임대표 김순희라는 사람이다. 교학연? 보수 학부모 단체로 ‘학사모(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는 귀에 익은데 ‘교학연’은 금시초문이다. 지회장은 문자 메시지는 통해 이들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한다.

▲ 교학연 누리집. 지금 여기는 교사들의 항의로 시끄럽다.

봉투에 적힌 주소대로 누리집(http://www.ghy.or.kr/)에 들렀다. 한산하다 못해 적적한 동네다. 단체 소개에 들어가 봐도 목적과 하는 일, 위원회를 안내하고 있을 뿐, 그 흔한 ‘연혁’조차 없다. 커뮤니티 게시판에 오른 글로 미루어 보면 누리집 개설은 2007년 1월이다. 그러나 연간 한두 건 정도의 글이 고작이더니 올해 5월에 갑자기 게시판이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상담실의 상황도 비슷하다.

 

교학연이 전교조 교사에게 보내는 ‘우국충정’?

 

웬일인가 했더니 이 단체의 ‘괴편지’를 받은 전교조 교사들이 올린 글이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충고와 고언, 항의를 담은 답신이다. 주변의 동료들과 마주 보며 실소하고 말았지만, 이 괴편지에 잔뜩 화가 난 교사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이들은 정중함을 잃지 않고 괴편지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 교학연 상담실에 오른 항의와 답신들

그러나 그게 다다. 물론 게시판에 오른 글에 답을 붙이는 경우야 잘 없긴 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예의 사무실에 그걸 감당할 인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경로로 개인정보를 수집했느냐고 따지니 ‘대표 개인이 한 일’이라서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는 글로 미루어 보건대 상임대표가 ‘고군분투’하는 조직임이 틀림없다.

 

내용이나 형식을 갖고 더 이상 따질 일도 없다. 근거 없는 확신이 더해진 조악한 논리는 무적(無敵)이다. 지역의 동료 한 분이 항의 전화를 했더니 대표라는 이는 ‘아주 조용하고 침착한 어조’로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수구 우익들의 논리는 모두 닮았다. 무모한 예단과 확신, 외눈박이 논리, 일도양단의 끔찍한 이분법, 무도(無道)와 몰염치, 이성이 아닌 감성에서 비롯한 임전무퇴의 저열한 패기, 육두문자를 불사하는 간단없는 공격, 동물적 감각에 대한 숭상 따위…….

 

이명박 정부가 공언한 대로 이 나라는 이제 제대로 ‘선진화’ 시대를 맞았다. 한때는 숨만 죽이고 있던 수구 우익이 천박한 자본과 권력의 이해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며 백주에 아스팔트 위를 주름잡고 있는 이 ‘우익의 전성시대’.

 

유럽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도 확성기를 틀고 밤낮으로 ‘애국’과 ‘국가’를 부르짖는 미시마 유끼오의 후예들의 발호가 예삿일이 된 시대다. 신흥 자본의 총아인 신자유주의 국가 대한민국에 그 말석을 차지함이 어찌 당연하지 않으랴! 새롭지(new)도, 우익(right)답지도 못하면서 그걸 전면에 내세운 단체들, 무슨 안보, 자유, 민주 따위를 오롯이 내세운 무슨 연맹·연합·본부·회의……, 등의 이름으로 칠갑을 한 ‘보수’ ‘시민’ 단체들은 좀 많은가!

 

우익, 수구 단체들의 시대착오는 이제 그만!

▲ 교학연 커뮤니티에 오른 괴편지에 대한 교사들의 대응

그러나 그들이 하는 말은, 주장은, 논리는 어찌 그리 하나같이 판박이인가! 이들은 국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곤 한다. 선량하지만 무지한 백성들이 ‘좌파’의 논리에 ‘세뇌’되었으므로 자신들의 ‘교화나 감화’가 필요하며 그것이 그들이 가진 ‘우국(憂國)’의 본질적 내용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이념의 확신을 주장하기 위하여 비평화적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행위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단체가 관의 지원을 받는 것을 끊임없이 폄하하고 비난하던 이들은 자신들이 받는 지원과 보조는 당연한 조치라 여긴다. 전형적인 이중 잣대인데 이는 그들의 허술한 논리를 떠받치는 전가의 보도다.

 

더 웃기는 건 이들 단체의 행사에는 정부 여당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빠지지 않고 얼굴을 내밀고 그걸 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유럽이나 일본의 우파들이 이런 극우파 단체들과 일정하게 선을 긋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들 정치인의 얼굴 부조는 이 조직의 힘과 행동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북한 특수군의 소행이라며 광주항쟁을 왜곡한 한 보수단체의 행사에 집권당의 간부들이 늠름하게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는’ 한 이 어이없는 시대착오는 쉽게 사라지기 어렵겠다. 이들의 메아리 없는 주먹질에 힘을 보태는 노추(老醜)들의 찬조 출연도 눈부시다. 한때는 민주화 인사로 군림했던 퇴물 정치인의 뜬금없는 ‘자살론’은 이 나라 민주주의 현주소를 부끄럽게 내보이고 있는 참이다.

 

교학연의 김 대표는 정말, 자신의 간곡한 호소가 전교조 조합원 교사의 미몽을 깨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그의 논리에는 철없는 교사들이 일부 ‘정치 집단’의 놀음에 포획되어 있는데, 자신의 우국충정이 그 착오 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는 철석같은 믿음으로 충만해 있다.

 

그의 희망과 호소에 따르면 이제 우리에게는 ‘용기를 갖고’ 전교조를 탈퇴하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친북·종북의 지도부를 거부하고 학교를 ‘경쟁의 공간’으로 만드는, ‘진정 우리 아이들과 교육’을 생각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어쩐다? 정작 전교조 소속이 아닌 교사들도 이 황당 편지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으니…….

 

 

2011. 5. 24.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