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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네들, ‘오지랖도 넓다?’

by 낮달2018 2022.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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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눈높이와 다른’ 사법부 판결들

▲ 대법원 대법정 출입구 위쪽의 '정의의 여신상'. 저울과 법전을 들고 있다.ⓒ 오마이뉴스 사진

요즘 판사님들은 심기가 불편하겠다. 워낙 개명한(?) 세상인지라 무지렁이 백성들도 지엄한 판사 영감님을 무람없이 씹어대니 말이다. 만인지상이라는 대통령도 씹히는 세상이라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다.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에게도 어릴 적 최고의 장래 희망이 ‘법관’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도 꽤 오래 장래 희망을 그렇게 적곤 했다. 그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게 선망의 직업이라는 걸 깨달은 결과였다.

 

‘판검사’로 일컬어지는 법관에 대한 선망이 높았던 것은 엄청난 공부를 해야 이를 수 있는 지위였지만 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하면 무지렁이 ‘시골 것’들에게도 불가능하지 않은 자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고향에선 중졸 학력으로 20여 년 가까이 사법시험을 파다가 마침내 최고령으로 합격한 이가 나오기도 했다.

 

시민들 ‘눈높이와 다른’ 사법부 판결들

 

당연히 그들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사법부가 ‘인권 최후의 보루’로 불리게 된 것은 대중들의 그러한 바람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보도로 알려진 판결의 면면들은 그러한 대중의 기대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많은 법관이 공정한 판결로 사법 정의를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부정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무지렁이의 눈에는 ‘그들의 공평하지 않은 판결’이 더 쉽게 눈에 들어오고 그걸로 분개해 마지않는다. 그것은 고매한 법의 이상과는 어긋날지 모르지만 민초들의 법 감정, 혹은 눈높이이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게 판사님 판결을 입길에 올린 것은 최근 ‘갑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미스터피자 회장의 1심 판결이 집행유예로 나오자 분개한 시민의 기사가 <오마이뉴스> 머리기사로 걸린 걸 읽고서다. [관련 기사 : 판사님, 가맹점주보다 갑질 회장이 더 안타깝나요?]

 

기사 제목대로 집행유예 판결이 나온 이유가 ‘판사님의 안타까움’ 덕분이다.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는 이 판결의 백미다.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관용구 ‘오지랖 넓다’를 쓰는 게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피고인이 법과 윤리를 준수하며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을 저버렸다. 그러나 토종 피자 기업을 살릴 마지막 기회를 빼앗는다면 피고인과 가맹점주에게 가혹한 피해를 초래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 아닌가. 회장이 징역형을 받는다고 해서 그 기업이 당장 망하는 것도 아닌데도 ‘마지막 기회’ 운운하는 것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다. 배임과 횡령 따위의 가볍지 않은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 선 기업인들이 결국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그림은 지금껏 수도 없이 봐온 것 아닌가.

 

기업인들에 대한 판결에 한결같이 등장하는 게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공’이다. 그러나 정작 그 기업에서 열심히 일했던 노동자들에게는 그러한 ‘공로’가 인정되는 꼴을 보지 못했다. 경제발전에 기업인 못지않게 거기서 땀 흘려 일한 노동자들의 공로 또한 적지 않다는 사실은 교과서에만 있는 것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국가범죄 배상금을 깎는 대법원

 

판사님들은 기업인의 범죄를 심리하면서 회사의 장래를 걱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부와 사법부의 부당한 기소와 판결로 이루어진 시민의 피해에 대한 국가 배상의 목숨값도 깎는다. 민간인 학살(문경 석달마을)과 간첩 사건, 인혁당 사법살인 등의 배상 판결에서 이미 지급된 배상금을 환수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는 대법원판결 앞에서 유족들은 절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판결의 근거는 무엇일까. 사법 피해자들에게 과도한 배상금을 물어내면서 줄어드는 국가재정을 염려한 것일까. 줬다 빼앗는 배상금 탓에 인혁당 유족들은 사는 집마저 압류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인권 최후의 보루’가 ‘뭐 하자는 수작이냐’라는 항변을 나무랄 수 없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한 개인이 당한 간첩 누명과 그에 따른 단죄로 목숨을 잃게 된 것은 단순히 배상금만으로 회복될 수 없는 끔찍한 피해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미 집행되어 버린 배상금을 깎음으로써 유족들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른 것이다.

 

대법원이 고려한 것은 국가로부터 입은 개인의 인격과 생명권 훼손이 아니라 국가가 물게 된 배상으로 말미암은 국가재정 상황이었다. 뒤늦게 인혁당 사건 등 과거사 배상 소송에서 국가 배상액을 대폭 깎은 판결이 대법관들의 `비공식적인 전원 합의‘를 토대로 해 작성된 것으로 밝혀진 것은 그런 혐의가 부당하지 않다는 걸 증빙한다.

 

<관련 기사>

· 민간인학살 희생자 목숨값 깎는 대법원

· 안기부는 간첩으로 몰더니 법원은 배상금 줬다 빼앗나

· 줬다 뺏는 배상금인혁당 유족 집마저 앗아가나요

· 과거사 배상 감액, 대법관 물밑서 전원 합의

 

한편, 판사님들은 자신이 내린 판결이 오심이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도 어떠한 반성과 사죄도 하지 않는다. 단순한 징역형이 아니라, 사형 판결로 피해자가 목숨을 잃게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현직에 있지 않더라도 그 과거의 오심에 관한 최소한의 성찰도 없는 것이다.

 

오판에 대한 ‘성찰도 없다’

2000년대 이후, 과거 독재정권 시대의 조작 간첩 사건 등으로 억울하게 죽거나 오랫동안 사회와 격리되었던 사람들이 재심으로 무죄가 확정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최소한 ‘유감’의 뜻이라도 표시한 사람은 손꼽을 정도에 그친다.

 

무고한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뒤, 뒤늦게 진범이 드러나자 권총으로 자살한 미국 판사 얘기, 죄책감으로 인해 판사를 그만두고 출가한 효봉 스님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최소한 드러난 진실 앞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최근 간첩 조작 사건 판결 질문에 “웃기고 있네”라는 막말로 여론의 질타를 받는 전 판사 여상규 의원의 사례는 그런 성찰하지 않는 법조인의 전형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오판으로 18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문제의 오판이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무고한 피고인을 고문한 경찰과 이를 그대로 기소한 검찰의 책임도 가볍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상규의 답변은 이들 고매한 판관들이 피고인을 ‘확정판결 전까지 무죄’는커녕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도 여전히 유죄’라고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담당 재판부의 재량권을 문제 삼자는 게 아님은 물론이다. 판사 재량으로 형량을 감경해주는 ‘작량감경’이 재판 일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것이 모든 피고인에게 공정·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명백한 범죄가 그런 ‘고무줄 재량’으로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일이 거듭되어 온 게 현실이다.

 

‘유전무죄’나 ‘무전유죄’가 이 나라 사법의 현실이라는 건 법관들도 익히 아는 일이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부정해도 부정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라면, 무엇보다 대중의 상식과 눈높이를 기억하여야 할 일이다. 그들이 자신을 ‘인권 최후의 보루’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말이다.

 

권력과 뒷거래까지?

 

최근에는 ‘양승태 대법원’이 판결을 빌미로 청와대와 뒷거래한 사실이 드러나기에 이르면서 사람들은 말은 안 하지만 ‘그럴 줄 알았다’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사법부(司法府)’가 아니라 ‘사법부(司法部)’라는 하태훈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질타를 새겨들을 때다.

 

“믿고 싶지 않지만, 청와대의 수석비서관과 통화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대법원장이 아니라 스스로 사법부 장관으로 처신한 것이다. 엄선된 엘리트들이 근무하는 법원행정처에서 법관은 관료적 위계질서 속에서 상관의 지시를 따르고 충성하는 사법행정 공무원이었다.

 

위법한 지시를 내린 상사나 그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인 이들은 스스로 법관이기를 포기한 직권남용의 공범자들이었다. 소위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조사보고서 속의 법원행정처는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행정부처와 같았다.” [기사 바로가기]

 

 

2018. 1.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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