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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로빈후드’가 아니다

by 낮달2018 2022.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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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종횡무진

▲한겨레 만평 ( 장봉군 , 1 월 25 일 )

요즘 인수위의 종횡무진을 보면 정말 ‘혁명’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새 정부 출범은 아직 한 달이 남았건만, 인수위나 대통령 당선인의 한마디가 가진 무게는 이미 현 정부의 그것보다 훨씬 무거운 데다 살벌하기까지 하다.

 

복지부동하다 못해 ‘신토불이’ 해 버린 ‘철밥통 공무원’에 대한 민간의 멸시와 증오는 이유 있다는 데 동의한다. 또 인수위가, 그간 현 정부에 면종복배하다 정권교체에 환호했던 그들에게 도로 칼을 겨누는 걸 보고 고소해하는 민심이 있다는 점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새 정권이 입성 전부터 공무원들을 ‘인원 감축’이나 ‘걸림돌론’으로 치받는 걸 바라보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다. 그들은 마치 국민에게 봉사해 온 현 정부의 공무원들을 마치 부역자처럼 여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정부 조직부터 성한 데 없이 골고루 칼을 들이댄 이들의 정책 준거는 마치 ‘과거의 것은 악이거나 오류’라는 전제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손사래를 치고, 말끝마다 ‘효율’과 ‘경쟁력’으로 포장하지만 적어도 일부 부서(통일부·인권위원회 등)의 통폐합 논거에는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지적(1월 24일, MBC ‘백분 토론’)대로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신과 거부가 똬리를 틀고 있다.

 

‘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을 구호로 내세웠던 새 정부의 교육정책은 혼돈과 갈등 속으로 급전직하하고 있다. 급간 경계에 걸려 등급제의 문제점을 외치던 이들에게는 점수제 환원이 복음이 될지 모르지만, 여전히 다수 학생에게 이 전광석화 같은 정책 전환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사고 확대 등 새 정부가 취할 정책은 그 서슬이 시퍼런 전환은 ‘쌈빡’하지만 그들의 구호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사교육 쪽에서 ‘대박의 기대’가 커지고 있고, 사교육 관련 업체의 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소식은 그 분명한 조짐으로밖에 볼 수 없다.

▲경향만평(김용민, 1월 25일)

영어교육과 관련한 새 정부의 정책도 눈부시다. 대선 과정에서 당선인의 발언 중에 ‘영어로 진행하는 국어와 국사 수업’ 얘기가 나왔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그걸 반쯤은 우스개로, 반쯤은 ‘밀어붙이겠다’라는 선언적 의미로 받아들인 듯하다.

 

지난 1월 초, 복직 교사 모임에서 만난 국어·국사 교사들이 ‘영어 수업 준비하고 있나?’, ‘아니, 퇴출을 준비하고 있지.’ 하는 정도로 농지거리를 주고받았던 까닭도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결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의 생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어저께 인수위는 2010학년도부터 모든 고등학교 영어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겠다, 영어 과목의 상시 평가 시스템 및 등급제, 영어 몰입수업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교육 주체들의 반발과 비판이 가열되고 있다. 물론 그 비판의 골자는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글쎄, 영어 수업이라면 내가 문제지, 우리 아이들은 그나마 알아듣지는 않겠나. 그러나 우리 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학교에서 실제 영어 수업을 한들 몇이나 알아들을까.” (수학 교사)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나는 어이가 없다.” (영어 교사)

“결국 정부 정책 따로, 학교 현장 따로 놀 가능성이 아주 크지 않을까…….” (국어 교사)

 

오늘 학교에서 동료 교사들과 나누었던 얘기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그게 현실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현실 적합성이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를 동원할 일은 없겠다. 영어로 수업하는 대학교수들의, ‘30분이면 끝날 강의가 한 시간을 넘어도 부족하다’라는 하나같은 푸념이 시사하는 것은 영어와 씨름하느라 떨어지고 말 수업의 질이다.

 

정말 궁금한 것은 인수위와 당선인은 자신들의 정책 변화가 사교육비 폭등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걸까 하는 점이다. 취임도 하기 전에 인수위의 정책 발표가 새로운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참교육학부모회의 지적대로 새 정부가 ‘수요자 중심의 교육정책을 펴겠다’라면서도 정작 학생들과 학부모의 의견은 정책 수립 과정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 로빈후드는 잉글랜드 민담에 등장하는 인물로 불의한 권력에 맞서고 부자들을 약탈하여 가난한 이를 돕는 의적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절차를 무시한 정책 결정과 발표가 거듭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인수위가 빠져 있는 기존 정책과 그 집행에 대한 불신이다. 그들은 자신을 마치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러 온 로빈후드로 자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날짜 <한겨레>와 <경향>의 만평은 각각 ‘영어 몰입교육’을 풍자하고 있다. 장봉군 화백은 여교사의 수학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교실을 불도저로 부수며 진입하는 당선인의 모습을 그렸고, 김용민 화백은 ‘훈민정음’을 영어 몰입교육으로 가르치고 있는 ‘어느 식민지국의 국어 시간’을 묘사하고 있다.

 

영어 몰입 교육 등 새 영어교육 정책에 관련된 비판을 중언부언할 일은 없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시이오 출신의 당선인이 경영하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이고, 그가 추구하거나 지켜야 할 가치는 효율만이 아니라 ‘공공의 선’이어야 한다는 것은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국어를 가르치고 있어 2010년에도 영어 몰입교육으로 내게 불똥이 튈 일은 없다. 그러나 전교조가 밝힌 것처럼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게 아니라, 온 나라를 입시 학원화하면서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학교를 선택하는 교육 양극화를 고착’시키는 쪽으로 진행되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재앙에 그치지 않고 이 나라의 미래를 송두리째 왜곡하는 일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

 

 

2008. 1. 2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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