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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제조사’도 ‘긴급출동 서비스’를 한다?

by 낮달2018 2022.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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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제조사의 ‘긴급출동 서비스’

▲ < 서울방송 (SBS)> 은 8시 뉴스에서 '자동차 긴급출동 서비스'를 다루었다 . ⓒ <SBS> 화면 갈무리

이른바 ‘마이카(my car) 시대’의 도래는 사람들의 삶의 패턴을 바꿔놓았다. ‘사람이라고 생긴 것들은 모두 다 차 한 대씩 끌고 다닌다’라고 했던 게 1990년대 중후반이니 집집이 차 한두 대는 기본이다. 갓 투표권을 갖게 된 아이들부터 7·80대 노인까지 운전은 아주 ‘기본 소양’이 되었다.

 

그러나 나날이 발전되어가는 성능 덕분에 고장 없이 차를 끌고 다닐 줄만 알지, 대부분 운전자는 아주 기본적인 응급처치도 할 줄 모른다. 연락만 하면 수분 안에 재깍 출동해서 입안의 혀처럼 살가운 도움을 주는 ‘자동차보험’이 있으니 말이다.

 

긴급출동 서비스, 보험사 ‘전용’ 아니다

 

그럭저럭 나도 운전을 하고 다닌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승합차로 운전을 시작해서 이후 세 종류의 승용차를 끌고 다녔지만, 막상 기초 정비의 능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잭(jack)을 비롯한 각종 공구를 갖추고 다니긴 하지만 나는 아직 타이어를 직접 갈아본 적이 없다. 펑크가 나면 어설픈 실력으로 차를 들어 올리기보다는 보험회사 사람을 부르는 게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나섰던 나들잇길이었다. 휴게소에 들러 차에서 내리려는데 갑자기 경적이 저 혼자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남의 차에서 나는 소린가 했더니 분명 내 차에서 난 변고다. 누른 적도 없는 경적이 저절로 터지니 웬 조홧속인가 갈피를 못 잡았다. 경적이 멎어서 열쇠를 꽂았더니 이번엔 시동도 걸리지 않는다. 이건 도대체 웬 재변인가!

 

불안해하는 가족들을 진정시켜 놓고 차량 설명서 뒤편에 실린 번호로 자동차 제조사에 전화를 걸었다. 저편에서 나타난 상담자는 ‘경보가 울린 것’ 같다면서 차분하게 처치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이내 시동이 걸렸다. 아마 자동차의 자동 경보 시스템이 작동된 모양이었다. 5만Km나 운행하고도 그거 하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게 오늘날 이른바 ‘오너 드라이버’들의 수준이다.

 

그러니 자동차보험 서비스 가운데 ‘긴급출동 서비스’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내 보험증권을 들여다보니 예의 서비스가 5회로 가입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그 서비스를 이용한 것은 20년 동안을 통틀어 다섯 번이 넘지 않는 것 같다.

▲무상 긴급출동 서비스는보증기간과 같다는 걸 대부분 운전자는 모르고 있다 . ⓒ <SBS> 화면 갈무리

자동차 문이 잠겼거나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때, 연료가 떨어지거나 사고가 일어나 견인할 필요가 있을 때 전화만 걸면 달려오는 이 서비스는 ‘할 줄 아는 게 운전뿐’인 오너 드라이버에겐 생광스럽기 짝이 없다. 아마 그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부분 운전자는 이른바 ‘멘붕’에 빠질지도 모른다.

 

사실을 알리지 않은 업체의 속내

 

그런데 운전 경력 20년이 넘은 나도 모르고 있었던 게 이 ‘긴급출동 서비스’가 보험사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에서도 무료로, 횟수 제한 없이 시행한다는 사실이다. 어젯밤(26일) ‘8시 뉴스’에서 보도한 내용이다. 뭐라고 할까, 당장 손해와는 무관한 일이긴 하지만, 어쩐지 멀쩡하게 눈을 뜨고 바보 취급을 받은 듯한 느낌이다. [<SBS> 8시 뉴스 다시 보기]

 

▲ 대부분 긴급출동은 보험으로 가입한다 .

제조사로부터 이 같은 서비스를 받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지만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은 건 자동차 회사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기 때문이란다. 차를 팔 때와 팔고 난 뒤가 다른 자동차 제조회사의 의뭉스러운 모습이야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차량 제조사들은 긴급출동 서비스를 무상보증 기간 동안, 그것도 무료로, 제한 없이 제공한다. 그런데도 작년 12월 보험사가 250만 번 출동한 사이 5개 제조사 다 합쳐 7만 6천 번 출동하는 데 그친 것은 제조사들이 홍보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란다.

 

차를 살 때 제조사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듣지 못했고 차량의 이용 설명서에도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요행히 이 사실을 안다고 해도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이 서비스는 질도 떨어진다고 한다. 게다가 출근 시간대엔 통화조차 쉽지 않으며, 출동 요청이 몰리면 보험사로 떠넘기기 일쑤라니 ‘빛 좋은 개살구’다.

 

애당초 보험에 들 때 받기로 한 이 서비스를 횟수만큼 이용할 일도 없으니, 굳이 제조사에 이런 요청을 할 필요도 없다. 이게 당장 화급을 다투는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보험사가 어디 ‘공짜’로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때문에 보험료를 필요 이상으로 더 내고 있을 수도 있겠다.

▲제조사 누리집에 나타난 관련 내용 .기아, 르노삼성,쌍용,한국 GM, 현대 순. ⓒ 누리집 갈무리

혹시 싶어서 인터넷에서 각 자동차 제조사의 누리집에 접속해 보았다. 회사별로 편차가 있긴 했지만, 누리집에서 이 ‘긴급출동 서비스’의 내용을 찾는 건 여간한 인내력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서비스가 제대로 홍보되기 위해선 내용이 누리집 메인 화면에 눈에 잘 띄게 놓여야 하지만 그런 경우는 없었다.

 

부실한 ‘긴급출동 서비스’ 안내

 

대체로 서비스 탭으로 들어가야만 긴급출동 서비스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도 회사별로 제각각이었다. ‘긴급출동 서비스’라 명시하고 있긴 해도 그 내용을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었다. 기아, 현대,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자동차 등 5개 사 누리집을 한 바퀴 돈 공통 소감이다.

 

- 누리집에서 ‘긴급출동 서비스’ 항목과 그 내용을 찾기 어려웠다.

- ‘긴급출동’을 명시하고 있어서도 그게 다른 부가서비스의 하나인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자사 정비를 조건으로 걸고 있기도 했다.

- 찾아도 그 내용이 ‘무상’인지 ‘유상’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무상’이라는 사실을 명시한 곳은 현대와 한국GM 정도였다.

- 무상 서비스의 ‘기간’을 명시한 회사는 한국GM뿐이었다.

 

운전자 대부분이 이 서비스의 내용을 모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이들은 천만 원 내외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차를 팔아놓고도 보증기간 내 제공해야 하는 ‘긴급출동 서비스’를 매우 소극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소극적’이라는 표현으론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단지 ‘범죄’가 아닐 뿐 이 상황에는 이른바 ‘미필적 고의’가 숨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지 모른다. “이렇게 알려선 소비자들이 긴급출동 서비스를 잘 모를 수도 있지. 그러나 그걸 몰라도 그건 우리 책임이 아니야.”로 말이다.

 

오늘 아침 차를 타고 나가면서 나는 설명서 뒤편의 긴급출동 서비스 전화번호를 내 휴대전화에다 입력했다. 그러나 아마 이 전화는 ‘긴급출동 서비스’‘’를 요청하기 위해 써먹을 일은 별로 없을 듯하다. 연락해서 보험회사처럼 재깍 나타나 준다면 몰라도 보도된 수준의 서비스 품질이라면 굳이 거기 전화를 걸 일이 없을 것이니 말이다.

 

 

2013. 1.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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