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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설 대목 풍경 2제

by 낮달2018 2022.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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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설 대목 풍경들

풍경1 ‘도둑 잡을 마음 없는 축산농’?

▲ 한 축산농이 텅 빈 가축우리를 돌아보고 있다.

설이 가까워지는데 ‘구제역’ 소식은 진정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날마다 경남 김해가 뚫렸고 또 어디가 위험하고 살처분한 가축이 300만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결국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 “한국에서 반세기 만에 세계 최악의 구제역이 발생했다”라며 경계령을 내렸다.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이 전대미문의 구제역 파동에 축산농들은 억장이 무너지는데 정작 이 파동의 책임을 져야 하는 주무 부처 장관은 그 원인을 과거 정부에 떠넘겨서 구설에 올랐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구제역 창궐 원인을 과거 정부가 만든 매뉴얼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은 구제역 피해 농민을 두고 ‘도둑 잡을 마음 없는 집주인’으로 비유하여 가뜩이나 낙담한 축산농의 분노를 사고 있다. 윤증현 장관이 지난 27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했다는 발언은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일부 기업형 축산농가의 경우, 보상비 수백억 원을 형제들이 나눠서 받는 경우도 있다. 무작정 시가 보상을 해주기 때문에 일부 농가에서 도덕적 해이가 문제가 되고 있다.”

“경찰이 백날 도둑을 지키면 뭐 하나. 집주인이 도둑을 잡을 마음이 없는데 제대로 되겠느냐.”

 

이 발언에는 구제역 파동의 책임을 축산 농가에게 돌리는 듯한 뉘앙스가 다분히 담겼다. 사태를 종식하고 이를 수습해야 할 책임이 정부에 있는데 정작 정부 각료가 이런 망언을 뱉었다는 것이 도리어 ‘도덕적 해이’라 해야 마땅하다.

 

오죽하면 축산농 단체의 장이 “정부 부처의 국무위원이라고 하는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면 정말 이 나라에서 살기 싫다”라며 분통을 터뜨렸겠는가. 그의 말대로 ‘일부 기업형 축산농’에게 비슷한 경우가 있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자식같이’ 기른 가축을 죽여 묻으며 피눈물을 흘렸던 축산농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있을 수 없는 발언이다.

 

성공한 인질 구출 작전을 기리는 데는 온갖 기사로 도배를 하면서도 정작 농민의 아픔을 제대로 전하는 언론은 드문 현실에서 농민과 농촌은 여전히 ‘변방’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마음은 참담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고 나라의 축산기반은 거덜 나고 있지만, 미국산 소·돼지고기의 가격과 수입 물량은 폭등·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명절은 때맞춰 돌아온다. 설 대목이지만 시장엔 찬바람만 돈다. 텅 빈 가축우리를 돌아보고 있는 축산농의 쓸쓸한 얼굴 앞에 한미 FTA가 가져다줄 장밋빛 미래를 역설하는 경제관료들의 신념에 찬 얼굴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풍경2 “북 지원 쌀과 비료는 뇌물”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일갈이다.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창설 30주년 전국 부의장·협의회장 합동회의’의 정부 보고에서다. 그의 발언에 담긴 열쇳말은 두 가지 같다. 하나는 ‘평화’고 하나는 ‘안보’다.

 

“김정일과 그 지도층에 의존하는, 쌀·비료 갖다 주고 사는 평화는 뇌물 갖다 주는 것을 중단하는 순간에 깨진다.”

“내일의 평화를 가불해서 평화를 누리고, 내일은 평화가 위태로워지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평화가 아니다.”

“확고한 안보가 뒷받침돼야 평화가 지속 가능하다.”

“70만 대군이 있고 좋은 무기가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필요할 때 무력을 사용할 줄 알아야 안보가 되는 것이다.”

 

▲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그가 한 발언의 함의는 꽤 심란하다. 그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추구한 평화가 ‘가불’한 것이며, 그 가불은 ‘쌀과 비료’라는 뇌물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논지를 따르면 지난 정부가 ‘가불’한 평화는 결국 현 정부에서 ‘깨진’ 셈이다. 다시 말하면 지난 정부가 뇌물로 ‘평화’를 누린 대신 그 결과로 현 정부는 평화가 ‘위태로워졌다’라고 보는 것이다.

 

글쎄, ‘외교’나 ‘안보’는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그 실체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으니 안보에 대한 의견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군 통수권자의 외교 안보수석 비서관이라는 그의 인식은 그리 상식적이지 않아 보인다.

 

‘햇볕정책’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전임 정부와 다를 수 있겠고, 그게 대북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접어줄 수 있겠다. 외교안보 비서관으로서 천영우 수석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대북 강경책’을 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면 그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전임 정부에서 실시한 ‘인도적 대북 지원’을 ‘북한에 대한 뇌물’로 규정한 건 좀 다른 문제가 아닌가. 복잡하게 이를 일이 하나도 없다. 인도적 관점에서, 굶주리고 있는 동포들에게 ‘쌀과 비료’를 지원한 일을 ‘뇌물’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극우적 선동’에 가까운‘억지’라는 얘기다.

 

그뿐이 아니다. 전임 정부가 베푼 정책을 ‘뇌물’로 묘사한 것도 정치 도의상으로 용납되기 어렵다. ‘뇌물(賂物)’을 수수하는 것은 불공정한 경쟁일 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기 위한 범죄행위기 때문이다. 천 수석의 논리대로라면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은 범죄행위였고 국민은 지난 10년간 그런 범죄행위를 용인해 온 셈이다.

 

현 정부의 ‘냉전 회귀적’ 대북정책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같은 소식을 들으면서 국민은 어떤 생각을 할까. 정부의 ‘연속성’은 정권의 ‘이해’ 앞에서는 무력한 것일까. 정권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안보와 평화’ 앞에서 국민은 자못 어리둥절할 뿐이다.

 

 

2011. 1.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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