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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그의 ‘가을’은 풍성하고 아름답다

by 낮달2018 2021.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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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미나리가 보내온 가을 수확

▲ 그의 ‘가을’은 풍성하고 아름답다. 그는 이 가을을 고스란히 보내주었다.

이웃 시군에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하나 있다. 내가 몇 살쯤 위기는 하나 그깟 나이야 무슨 상관인가.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더러 우의를 나누는 사이다. 나눈다고 했지만 사실은 내가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던 것 같다.

 

그는 지금 사는 데 집을 짓고 부근의 땅 마지기를 이루어 농사를 짓는데 올해도 감이며 밤 같은 과실을 보내주었다. 얼마 전에는 그간의 정성이 고마워서 책 몇 권을 보냈더니 이내 연락이 왔다. 잘못 보낸 거 아닙니까? 제대로 갔네. 읽을 만한 책 같아서 보낸 거니까…….

 

말보다 행동이 빠른 사람이다. 바로 쪽지 하나와 함께 우체국 택배가 날아왔다. 이건 또 뭐야, 했더니 그가 몸소 지은 가을걷이 일부다. 콩이 있고, 팥이 있고, 강냉이, 곶감에다가 수세미, 박 바가지도 있다. 콩도 갖가지다. 노란 콩, 작두콩에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푸른 콩도 있다. 거기다 마지막 고명은 작은 병에다 담은 ‘앵두주’다. 그의 가을은 풍성하고도 아름답다.

 

농부에게 ‘가을’은 그 삶의 전부다. 그것은 지난 시간을 거두는 일이며, 동시에 다음 해를 예비하는 일이다. 비록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주긴 하지만, 틈틈이 일구는 농사가 그의 전부가 아니라고는 못 한다. 하루바삐 전업 농부가 되기를 소망하지만 여의찮아 실행을 미루고 있을 뿐인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 수세미(위)도 바가지도 그가 지은 농사다.

(……) 제가 관리기로 로타리 치고, 골 만들고, 모종 부어 혼자 옮겨 심고, 또 어떤 것은 따서 톱으로 썰고, 삶아서 속은 파서 내고 껍질은 벗겨서 말린 것입니다. 또또 어떤 것은 따고 깎아서 볕과 바람에 일광욕시킨 것입니다.

 

저라고 어디 비닐 쓰고 싶은 마음 없겠습니까? 저라고 어디 비료 주고 싶은 마음 없었겠습니까? 저것들이 병에, 충에 괴로워하는데 어디 약 치고 싶은 생각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오직 이 세계의 환경을 생각해서, 이 땅과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밟아버렸습니다. 이런 마음 헤아려 기꺼이 받아주시고 드시어 주십시오.

 

엿 같은 역겨운 세상입니다. 매일 술로 쓸어내고 싶지만, 몸이 견뎌 주지 못하니 맘만 간절합니다. 어제 휴업하고 놈들 집으로 보내면서 월요일 살아서 만나자고 했는데, 저도 이 정권 망할 때까지 살아야겠습니다.(ㅠ.ㅠ)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그의 마지막 말에 나는 백번 공감한다. 좋아, 그러자고. 이 정권 망할 때까지, 마땅히 살아야지! 그것도 기죽지 말고 씩씩하고 용감하게. 가슴 속 가득 푸른 희망의 끝자락을 놓지 말고. 주말쯤엔 앵두주를 마시면서 나는 그 약속을 아내하고도 나눌까 한다.

 

 

2009.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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